(2022-03-22 화요일) 부여 무량사와 전주 한옥마을
오서산 자연휴양림에서 2박 3일을 지내고 오늘은 휴양림을 떠나는 날이다. 자연휴양림은 매주 화요일이 휴장일이라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숙박업소 신세를 져야 한다. 전주에 있는 작은 호텔을 하나 예약해두었다. 자연휴양림을 떠나는 날 아침은 늘 바쁘다. 아침을 먹고 어질러 놓았던 짐을 싸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자연휴양림을 나왔다. 아들과 딸에게 전화를 해보았더니 다행히 아들과 사위 모두가 증상이 심하지는 않다고 한다. 오늘 목적지인 전주를 가는 향해 가는 길에 부여 무량사를 들렀다.
무량사는 통일 신라 시대에 창건된 사찰로서 만수산(萬壽山)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사찰인데, 역사도 오래되고 상당히 큰 절이다. 절 입구에 매표소가 있다. 나는 당연히 경로우대로 무료입장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입장료를 내란다. 경로 무료입장이 70세 이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전국 모든 문화재에 들어갈 때 공짜로 들어갔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 어쩔 수 없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알고 보니 얼마 전부터 경로 무료입장이 65세 이상에서 70세로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1년만 있으면 경로우대 무료입장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집사람이 실망이 대단하다. 나는 또 2년을 기다려야 무료입장이 되려나. 그때가 되면 여행이나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만수산 무량사(萬壽山 無量寺)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을 지나 조금 걸어 들어가니 금강문이 나오고 이를 통과하니 넓은 절 마당과 대웅전이 나온다. 상당히 크고 넓은 절이다. 무량사는 만수산 밑자락 넓은 터에 자리 잡고 있다. 절 마당에는 5층 석탑이 있고, 그 뒤로 극락전이 자리 잡고 있다. 5층 석탑 바로 옆에는 석등이 있는데, 석탑과 석등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극락전의 모습이 상당히 특이하다. 극락전은 보물로 제356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2층으로 되어있다. 여러 곳의 사찰을 가보았지만 2층으로 된 대웅전이나 극락전은 처음 보는 것 같다.
극락전의 지붕이 아주 크다. 지붕이 크기 때문에 기둥 밖으로 지붕이 많이 돌출되어 있다. 그래서 지붕의 안전을 위해서 지붕을 떠받치는 지주가 4개의 모서리에 세워져 있다. 2층도 마찬가지로 4개의 지주가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이렇게 극락전이 2층으로 된 데다가 지붕이 아주 커서 건물이 무척 화려하게 보인다.
이곳은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과 인연이 깊은 절이다. 김시습은 오랫동안 이 절에서 머물렀으며, 이 절에서 생을 마쳤다고 한다. 관광객은 우리밖에 없다. 승려들도 보이지 않는다. 넓은 절이 텅 비어 있는 느낌이다. 절 마당 한쪽에는 느티나무인 듯한 큰 나무가 세 그루 서있다. 괴목이라고 까지 할 수는 없고 하나하나의 나무는 평범한 듯 보이지만 세 그루가 함께 서있어 보기 좋은 모습을 하고 있다. 절 마당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 부속 전각들도 정갈한 모습으로 서있다. 절 전체가 아주 균형 잡힌 모습이다. 집사람은 극락전에 들어가 불공을 드리고 나는 이곳저곳 전각을 둘러보며 구경을 한다.
무량사를 나와 한 시간 좀 넘게 달리니 전주 한옥마을에 도착한다. 한옥마을에는 몇 년 전에도 한번 와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휴일이어서 사람이 너무 많아 다니기 불편했는데, 오늘은 평일 낮이라 느긋이 거리를 둘러볼 수 있을 것 같다. 한옥마을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한옥마을로 들어갔다.
한옥마을 입구에는 한복 대여 집이 여러 채 있어 화려한 한복을 전시해두고 있다. 거의가 현대식 디자인의 개량 한복으로서 아주 화려하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전통 한복보다 개량 한복 쪽이 보기 훨씬 좋다. 개량 한복은 요즘 제작되는 사극 영화에서 기생들이 입는 한복과 비슷하게 보인다. 한복 대여점 앞을 지나니까 상인들이 한복을 대여해 가라고 권유한다. 어울리기만 한다면야 빌리고 싶지만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가 않다.
오늘은 날씨는 무척 좋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기온도 따뜻하다 못해 더울 지경이다. 사람들이 많진 않지만 그래도 꽤 있는 편이다. 우리같이 나이 든 사람도 있지만 젊은이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여자 아이들은 화려한 한복을 입고 재잘거리며 즐거운 듯이 거리를 다닌다. 연인들끼리 온 경우는 여자 쪽은 화려한 한복을 입고 신이 난 것 같은데, 사내 녀석들은 한복은 빌려 입었지만 좀 뻘쭘한 느낌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과거에 비해 체형이 많이 달라졌다. 키도 커지고 날씬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한복을 입으니 아주 잘 어울린다. 특히 여자 아이들은 한복을 입고 있으니 미인이 아닌 사람이 없다. 양장보다 훨씬 아름답다.
현대적 스타일을 가미한 한옥들이 즐비하게 서있다. 대부분이 영업집들이지만 그 가운데는 전시관이나 기념관들도 드문드문 섞여 있다. 영업집들이라고 해도 모두 멋을 잔뜩 낸 한옥들이라 볼만하다. 대부분의 한옥들이 전통 한옥이라 할 수는 없으며, 현대식 디자인을 가미한 스타일인데, 이 쪽이 전통 한옥보다는 훨씬 화려한 느낌을 준다.
길 가에 있는 작은 도랑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도랑 옆으로 서있는 가로수에는 꽃이 활짝 피었다. 하얀 목련이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노란 산수유와 하얀 매화도 활짝 피었다. 목련은 청초한 느낌을 주는 꽃인데, 따뜻한 날씨에 꽃이 만개하다 보니 청초하기보다는 화려한 느낌이 든다. 한옥마을을 걷다 보면 군데군데 정자가 마련되어 있다. 마을 거리를 돌아다니다 다리가 아프면 정자 아래서 쉰다. 이렇게 두어 시간 동안 한옥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니까 다리도 아프고 더 이상 볼 것도 없다. 숙소로 들어가 쉬어야겠다.
오늘 숙소로 예약한 한옥 호텔을 찾아갔다. 한옥 스타일의 호텔이라 생각했는데, 한옥 호텔이란 단순한 상호에 불과하고 보통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모텔이다. 이곳은 전주시의 모텔촌인 것 같다. 온 동네가 모텔이다. 방에 들어가니 깨끗이 정리되어 있고, 특이한 것은 PC가 2대 놓여있다.
전주의 먹거리로는 전주비빔밥이 유명하지만, 나는 이전에 전주 막걸리 골목에 대해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었다. 막걸리 한 주전자를 시키면 많은 안주가 딸려 나오는 술집들이 밀집해있는 지역이다. 통영에 있는 ‘다치’와 비슷한 스타일의 집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막걸리 골목에 어떤 집들이 좋은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더니 손님들이 많이 찾는 몇몇 집이 소개되어 있었다.
막걸리 골목까지 거리를 확인해보니 숙소에서 택시비가 만원이 넘는 거리이다. 밤이 되어 추운데 이렇게 멀리까지 가기도 망설여진다. 다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막걸리 골목에 있는 옛촌이라는 이름의 유명 막걸리집과 같은 상호의 막걸리집이 근처에 있다. 메뉴와 가격을 비교해보니 거의 같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라 가까운 곳으로 가기로 했다. 20분 정도 걸어서 <옛촌 막걸리>라는 곳으로 갔다.
들어가서 막걸리를 주문한 후 서빙을 하는 사장에게 막걸리 골목의 옛촌과 이 집이 같은 집이냐고 물어보았다. 사장의 말로는 이 집이 원조이며, 막걸리 골목에 있는 집은 스핀 오프 해서 지인이 운영하는 가게라 한다. 이곳에는 두 종류의 막걸리를 팔고 있는데 하나는 보통 우리가 볼 수 있는 탁한 막걸리이며, 다른 하나는 아주 맑은 색의 막걸리이다. 어느 쪽이 좋으냐고 물으니 맑은 막걸리를 많이 찾는다고 하여 맑은 막걸리를 주문하였다. 막걸리 한 주전자에 3만 원짜리 코스이다. 주문한 막걸리가 나왔다. 막걸리는 큰 주전자에 담겨 있다.
막걸리가 나온 후 곧 안주들이 따라 나온다. 도토리 묵을 시작으로 김치찜, 수육, 족발 등 여러 안주들이 계속 나오는데, 대략 5-6가지가 되는 것 같다. 막걸리 코스는 여러 가격대가 있어서 가장 싼 것이 2만 원짜리 코스이며, 가격이 점점 올라가 7만 원짜리 코스도 있는 것 같다. 이런 코스는 사람이 많을 때 주문하는 것이다. 안주 접시마다 양이 좀 많다. 양을 줄이는 대신 좀 더 다양한 안주가 나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야기처럼 그렇게 환상적인 술집은 아니었다. 그저 3만 원 정도에 적당한 술집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텔에 돌아와 샤워를 하자니 휴양림에 칫솔을 두고 온 것 같다. 칫솔이 없나 찾아보니 화장대 앞에 복주머니처럼 생긴 주머니가 두 개 있다. 맙소사! 풀어보니 온갖 것이 다 들어있다. 칫솔과 치약을 포함하여 샴푸, 린스, 비스킷, 믹스 커피 거기다가 모텔을 찾는 사람들이 찾는 여러 가지 물건 등 거의 열 가지는 되는 것 같다. 이래서야 모텔이 손님을 받아 봐야 별로 남는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