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24 목요일 b ) 채계산 출렁다리와 연산마을 매화구경
영월사를 나와 다음 행선지는 순창 채계산 출렁다리이다. 채계산 출렁다리는 섬진강 상류 가까운 곳에 있는 채계산에 걸려 있는 도보 다리로서 최근에 건설되었다. 2주전 역시 이곳 순창에 있는 <용궐산 하늘길>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용궐산 하늘길 역시 섬진강 바로 옆에 있으며, 이곳보다는 더 상류에 위치하고 있다.
채계산 출렁다리가 언제 건설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는데, 인터넷 백과사전이나 한국관광공사 소개란에는 한결같이 “지난 3월”에 완공하였다고 나타나 있다. 지난 3월이 올해 3월인지 아니면 작년, 재작년 3월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소개 글을 올릴 때 좀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채계산(釵笄山)의 채(釵)나 계(笄) 자는 모두 처음 보는 한자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둘 다 비녀를 뜻하는 글자인데, 채(釵)와 계(笄)가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다. 보통 같은 뜻의 한자로서 이루어진 단어, 예를 들면 기린(麒麟)이나 봉황(鳳凰) 등의 경우 기(麒)와 봉(鳳)은 수컷, 린(麟)과 황(凰)은 암컷을 가리킨다. 버들을 가리키는 양류(楊柳)의 경우 양은 잎이 위로 뻗은 버들, 류는 잎이 아래로 처진 버들(수양버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비녀를 뜻하는 채와 계는 각각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채계산은 해발 350미터에 조금 못 미치는 산으로 높지는 않다. 그러나 매우 험한 산이어서 오르기는 상당히 힘들다고 한다. 이 산에 얼마 전 출렁다리를 만들어 순창의 새로운 명물이 되고 있다. 이 출렁다리는 국도를 가로질러 산 봉우리와 봉우리를 연결하고 있다.
영월사를 나와 한참을 달려 채계산 출렁다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아주 넓은 주차장이다. 그런데 차에서 내리니 어디로 가야 출렁다리가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출렁다리로 가는 길 안내판도 보이지 않는다.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출렁다리는 보이지 않는다. 마침 옆에 차를 세우고 내리는 사람에게 어디로 가야 출렁다리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저기 있잖아요” 하고 가리키는데,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도로 위로 두 봉우리 사이에 긴 다리가 걸려 있다. 좀 전에 사방을 다 둘러보았는데 왜 저렇게 금방 보이는 것을 못 찾았을까?
문득 이전에 읽었던 어떤 책의 내용이 생각난다. 사람이 무엇을 본다는 것은 눈이 보는 것이 아니라 뇌가 보는 것이다. 눈앞에 있는 물체에 대한 사전 정보가 뇌에 기억되어 있지 않다면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면 옛날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찾았을 때 원주민들은 앞바다에 큰 배가 떠있었지만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뇌에는 ‘큰 배’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 눈에 배가 보인 것은 아마 며칠 뒤였을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나도 출렁다리가 산 중턱에 걸려 있으리라 생각을 했지, 도로 위를 지난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출렁다리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채계산 주차장은 여러 개가 있는데 제일 먼 출렁다리에서 제일 먼 주차장에 주차를 하였다. 꽤 걸어서 채계산 입구로 갔다. 출렁다리로 가는 산길 입구에는 출렁다리에 대한 설명과 큰 화강암 벽에 월하미인(月下美人)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채계산의 모습이 마치 비녀를 꽂은 여인이 누워서 달을 보며 창을 하는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채계산 저쪽으로 흐르고 있는 강은 적성강(赤城江)이라 하는데, 이는 섬진강 상류를 일컫는 말이다.
출렁다리로 올라가는 길은 꽤 가파르다. 그렇지만 나무로 만든 도보 계단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큰 힘은 들지 않는다. 15분 남짓 걸어 올라갔을까, 출렁다리가 나온다. 출렁다리는 이쪽 산에서 국도를 가로질러 저쪽 산으로 걸쳐 있다. 다리를 받치는 기둥이 없는 현수교이기 때문에 다리 가운데가 처져 완만한 ‘U’ 자 형을 하고 있다. 다리 바닥은 다리 아래가 내려다 보이는 얼게로 된 부분과 아래가 보이지 않는 판으로 된 부분이 반반으로 섞여있다. 아래를 보고 무서움을 느끼는 사람은 판 위를 걸으면 되도록 되어있다.
다리 위를 걸었다. 다리 가운데로 오니 다리 양쪽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은 첩첩이 놓인 산들 사이로 도로가 뻗어있고, 오른쪽으로는 저 멀리 섬진강이 보인다. 아주 좋은 풍경이다. 봉우리를 연결하는 다리이기 때문에 양쪽이 탁 터져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준다. 다리의 길이는 300미터 조금 못 미치는데, 느낌 상으로는 거의 500미터는 되는 듯하다. 양쪽의 경치를 구경하다 보면 금방 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면 조그만 휴게 공간이 만들어져 지친 다리를 쉬게 해 준다. 그곳에 앉아 주위 경치를 바라보며 땀도 식히고는 다시 다리를 건너 돌아온다. 요즘 많이 만들어지는 출렁다리는 이름만 출렁다리이지 흔들리지 않는 곳이 많다. 그런데 이곳 출렁다리는 제법 흔들리는 편이다. 높은 곳에 걸린 다리가 흔들리기도 하니까 약간의 쓰릴도 느낀다.
이번 여행에서 꽃구경을 많이 하고 싶었다. 그런데 출발하기 전 인터넷으로 찾아보았지만 충남과 전북 지방에는 매화 명소가 별로 없었다. 며칠 전 서천의 마량리 동백숲을 가보았지만 그 이후로 꽃구경을 할 수 있는 곳을 거의 찾지 못하였다. 물론 지금까지 다녀온 곳 중에는 매화나무나 산수유, 목련 등이 몇 그루씩 서있는 곳은 있었지만, 마을 전체가 꽃 속에 묻힌 곳은 가보지 못하였다.
인터넷에서 순창 연산마을의 매화가 좋다는 글을 보고 그곳을 가기로 하였다. 연산마을은 채계산 출렁다리에서 차로 30분이 채 안 걸리는 곳에 있었다. 연산마을로 가는 길에 매화가 많이 눈에 뜨인다. 가로수로 매화나무를 심은 곳이 있는가 하면, 도로 옆의 야산에는 매화 농장이 드문드문 보인다. 이런 길을 한참 달려가니 연산마을이 나왔다. 연산마을은 도로에서 조금 들어가는 위치에 있는데, 완만한 야산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을로 들어가니 완만한 산비탈 이쪽저쪽이 모두 매화 천지이다. 인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매실농장으로 이용하는 것 같다.
시골 마을이라 주차할 곳이 보이지 않는다. 마을을 두어 바퀴 돌다가 어쩔 수 없이 길 가에 가급적 교통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적당히 주차를 하였다.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니 양쪽이 모두 매실농장이며, 매화가 활짝 피었다. 광양 매화마을의 경우 관광 목적을 겸한 매실농장이지만, 이곳은 관광수요보다는 작물로서의 매실 경작을 위한 농장인 것 같았다. 그래서 관광수요에 대한 배려는 그다지 없었다. 광양 매화마을의 경우 매실 농장은 물론 집집마다 매화나무를 심어 마을 전체가 매화꽃에 묻혀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곳은 민가와 농장이 분리되어 있는 느낌이다. 또 광양 매화마을의 경우 홍매화와 백매화가 섞여 절경을 이루지만, 이곳은 거의 백매화로만 이루어져 화려함이 덜하다.
농장 안에 있는 매화들은 잘 관리되어 나무들이 예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농장 밖에 있는 나무들은 관리가 전혀 안된 탓인지 키만 크고 잔가지가 많이 뻗어 나와 볼품이 없다. 마치 내 농장에 있는 매화를 보는 것 같다. 그래도 작년부터는 매화나무의 모습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 가지치기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쉽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