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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닝리 Nov 17. 2021

파도의 모서리 6. 아쿠아리움

Wave 2. 여름의 타워



 그때 물속에서 무언가 검은 물체가 오리배 아래를 쓱 하고 지나갔다.


 ‘잠수부인가?’


 처음에 유봄은 그렇게 생각했다. 부동산 세력 중 일부는 잠수장비를 활용해 물에 잠긴 도시에서 필요한 도구나 자원을 건져내고 있다고 들었다. 그들은 그것을 ‘채굴’이라 불렀다. 따지고 보면 과거의 인류가 남겨놓은 해저자원인 셈이었다. 특히 인구가 밀집되어 있던 서울 도심은 그야말로 자원의 보고였다.


 하지만 아무리 어마어마한 자원을 캐낸다 한들 인류는 확실히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다. 살아남은 인류 중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집단조차 농사를 짓지도 공장을 짓지도 못했다. 고작 과거에 만들어놓은 자원을 ‘채굴’하며 소모하는 것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과거를 파서 현재를 연명할 뿐 미래는 없었다. 언젠가는 지구상의 모든 자원이 다 떨어지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었다.


 유봄은 페달을 멈추고 한동안 물 아래를 주시했다. 잠시 후 유봄은 전혀 예상치 못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그건 바로 물고기 떼였다. 어림잡아 수백 마리는 되어 보이는 한 무리의 물고기들이 오리배 아래를 헤엄쳐 지나가고 있었다. 유봄은 눈을 비볐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서울 시내의 물고기들은 다 잠실에 몰려왔나?’


 강북에서는 보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규모의 물고기 떼들이 여기에 있었다. 그것도 한두 무리가 아니었다. 위에서 아래로 가로지르는 물고기 떼를 눈으로 좇고 있노라면 잠시 후에는 좌에서 우로 또 다른 물고기 떼가 지나갔다. 섬에서 살아가는 정착민들 중에는 어로 생활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도 제법 많이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낚시를 할 수 있는 도구 비슷한 것만 가지고 있어도 너도나도 어부를 자처하고 있었다. 그만큼 바다 행성이 된 지구에서 물고기는 훌륭한 식량 자원이자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 역할을 했다. 그들에게 이렇게 풍요로운 낚시 포인트가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 알려주기만 한다면 지금 보이는 저 물고기 떼들처럼 다들 정신없이 이곳으로 몰려올 것이다.


 심지어 수면 가까이 헤엄치는 물고기들은 손으로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잡아두면 구워 먹든 삶아 먹든 날 것으로 회를 쳐 먹든 어떻게든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일주일간 굶주린 인간이 못 먹을 게 어디 있으랴. 유봄은 정신없이 오리배 뒷좌석의 수집품들을 뒤져 잠자리채를 꺼냈다. 그러고는 이곳이 적진 한가운데일 수도 있다는 사실마저 잠시 망각한 채 물고기잡이에 집중했다.


 일렁이는 파도 속에 슬그머니 잠자리채를 넣고 기회를 기다렸다. 물고기 떼가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처럼 살랑거리더니 이쪽으로 몰려오는 게 보였다. 타이밍을 계산했다. 셋, 둘, 하나. 유봄은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해 물속으로 잠자리채를 힘차게 밀어 넣었다.


 “잡았다!”


 유봄이 기쁨의 소리를 지른 것도 잠시, 거대한 무언가가 아래에서 올라와 유봄이 잡은 물고기를 잠자리채와 함께 통째로 휙 낚아챘다. 그 충격에 유봄의 몸도 균형을 잃고서 휘청거렸다. 어어어 하며 손을 뻗어 오리배의 창틀을 붙잡아 보려 했지만 머리로는 이미 늦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숨을 참으며 물에 빠지는 것에 대비하던 찰나의 순간 유봄의 물고기를 낚아챈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무려 상어였다.


 그리고 풍덩! 그간 몇 번이나 바닷물에 들어갔지만 이렇게 오싹한 적은 처음이었다. 물에 빠진 유봄은 이곳 롯데월드에 원래 아쿠아리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코엑스에도 아쿠아리움이 있었다. 그게 강남 물고기떼의 비밀이었군!


 아까 물 아래를 지나간 검은 물체도 상어였을 것이다. 물론 식인 상어일 리는 없었다. 대한민국 아쿠아리움에 백상아리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아마도 그동안 바다를 떠다녔던 무수한 시체들의 맛을 봤을 상어가 유감스럽게도 자신의 새로운 식사 취향을 깨닫고 유봄을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얼른 물 밖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의지와 달리 몸이 당황했는지 허우적허우적 발길질만 해댔다. 어릴 적 봤던 해양생물 도감에서 상어와 마주치면 첨벙대지 말라는 경고를 했던 게 생각났지만 자꾸만 몸이 물 속으로 가라앉아 본능적으로 첨벙댈 수밖에 없었다. 물고기들이 바쁘게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들도 상어를 피해 달아나느라 무척이나 다급했다.


 아쿠아리움의 두꺼운 유리벽 바깥에서 감상하던 상어는 아름다웠지만 그 유리벽 안쪽에 던져진 먹이의 입장이 된 지금의 유봄에게는 그런 아름다움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른 유봄은 숨을 한 번 크게 삼킨 후 팔을 서너 번 저어 단번에 오리배의 몸체를 붙잡았다.


 ‘됐다!’


 이제 상체를 끌어당겨 다시 오리배 위로 올라가기만 하면 되건만 아까 놓친 잠자리채가 물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게 보였다. 잠깐의 망설임, 하지만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다.


 ‘에잇!’


 작심하고 손을 내미는데 거짓말처럼 기가 막힌 타이밍에 또다시 상어가 아래에서 솟구쳤다. 상어는 유봄의 손가락을 스치며 물고기를 물고 다시 내려갔다.


 ‘무시무시하군. 나 지금 설마 손가락이 날아갈 뻔한 거야?’


 평소에도 함부로 수영조차 못할 곳이었다. 거듭되는 상어의 습격에 산산이 흩어지는 물고기들을 보며 유봄은 황급히 오리배 위에 올랐다. 심장이 쫄깃쫄깃해진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싶었다. 유봄은 오리배 위에서 좌우를 살피며 잠자리채의 위치를 찾았다. 멀리 흘러가지는 않았다. 또다시 손을 뻗으면 닿을 수도 있는 거리였다. 유봄은 다리를 오리배 창틀에 반쯤 걸친 채 몸을 잽싸게 내밀어 잠자리채를 낚아챘다. 성공이었다! 내친김에 잠자리채로 물고기까지 건져 올릴 생각으로 손목을 비틀어 힘을 가하던 순간이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상어가 나타나 유봄의 잠자리채를 난폭하게 물어 뜯었다. 이쯤 되면 대체 아쿠아리움에서 무슨 훈련이라도 시킨 건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아, 혹시 평소 이런 뜰채로 먹이를 줬던 걸까?’


 하지만 이번에는 유봄도 잠자리채를 놓치지 않았다. 급기야 상어는 잠자리채를 물고 유봄과 오리배를 끌고 가려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상어와 유봄의 말도 안 되는 사투가 시작됐다. 유봄도 이제는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파멸할 수는 있을지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마침 생각난 ‘노인과 바다’의 명대사를 머릿속으로 내뱉으며 유봄은 소설 속 노인이 된 심정으로 상어와 사투를 벌였다. 언젠가 엄마가 자기 고향에서는 제사 음식으로 상어 고기를 올렸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심지어 엄마의 고향은 경상도에서도 내륙 지방이었는데 대관절 육지에서 상어 고기를 먹는다는 전통이 웬 말이냐며 함께 깔깔 웃었던 기억이 났다.


 ‘오냐, 그래! 오늘 엄마 고향식으로 상어 고기 한 번 먹어보자!’


 이미 잠자리채의 그물은 상어 이빨에 난도질당해 건져 올린다고 해도 낚시용으로 쓰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러니까 상어에 맞서는 건 순전히 오기였다. 유봄은 이제 잠자리채가 상어를 잡는 작살이라도 되는 것처럼 쿡쿡 찔러대기 시작했다. 상어도 그물에 이빨이 엉켰는지 쉽사리 빠져나가지 못하고 머리를 좌우로 휘젓고 있었다. 유봄은 오리배의 난간을 지렛대 삼아 온몸의 몸무게를 실으며 상어의 힘을 버텨냈다.


 “내가 뜻하지 않게 다이어트를 하는 바람에! 예전 몸무게였으면 넌 벌써 죽었어!”


 이를 악물고 아무 소리나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지르며 버티던 중 갑자기 뚝, 하고 잠자리채가 부러지며 유봄의 몸도 내동댕이쳐졌다. 유봄이 벌떡 일어나 바다를 살폈지만 이미 상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부러져서 자루만 남은 잠자리채를 허망하게 바라보며 유봄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유난히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만 어쩌면 내일이 오기 전 이대로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엉엉 울고 싶어졌다.





 두다다다다다.

 그때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인공적인 엔진 소리가 온 사방에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동력 보트 하나가 매캐한 온실가스를 내뿜으며 무서운 속도로 유봄의 오리배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화석연료로 움직이는 물체를 본 게 얼마만일까? 보트가 굉음과 함께 출렁이는 파도를 밀어내자 오리배도 그에 따라서 넘실거렸다.


 동력 보트는 마치 급브레이크라도 잡는 것처럼 90도로 깔끔하게 급선회하더니 유봄과 약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물 위에서 저런 움직임이 가능하다니! 유봄이 순수하게 감탄하며 얼빠진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을 때 확성기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손 들어. 움직이면 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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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리움의 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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