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ve 2. 여름의 타워
벌써 일주일째 비가 오지 않았다.
맴, 매앰 매앰 맴, 매앰 맴맴. 유봄은 이제 매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환청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방이 바다인 이곳에 매미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는데 말이다.
‘이게 다 갈증 때문이야.’
계절이 여름에 접어들자 허기보다도 갈증이 몇 배는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페트병에 모아둔 빗물은 마지막 한 방울마저 다 떨어져 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빈 페트병을 좀 더 많이 챙겨놓는 건데…. 그나마 지붕이 있어 그늘이라도 있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파도를 따라 넘실거리는 여름의 오리배 위에서 유봄의 몸도 녹아버린 아이스크림마냥 흐느적거렸다. 왠지 살바도르 달리가 어떤 마음으로 녹아내리는 시계를 그렸는지 알 것만 같았다. 어쩌면 달리도 모든 것이 녹아내릴 것만 같은 한여름에 그 그림을 그린 게 아닐까?
유봄은 오리배를 타고 바다로 변한 도시 위에서 식량과 생필품을 찾아 헤매는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래도 요즘 같은 세상에서 오리배는 누구나 탐낼 만한 사치스러운 장비에 속하는 편이었다. 유봄의 사정은 그나마 다른 이들보다 조금 낫다고 할 수 있었다.
유봄은 여름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을 크게 세 가지 부류로 정의했다.
첫째, 유봄처럼 배를 타고 바다를 표류하는 해양 유목민들이 있었다.
유봄은 이들을 ‘노마드(nomad)’라 불렀다. 이 새로운 바다의 노마드족(族)은 먹을 것이나 유용한 물건을 찾아 이 섬 저 섬을 떠돌아다녔다. 가끔 바다에서 마주치는 배가 있으면 간단히 주변의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스쳐 지나갈 뿐 서로 깊이 교류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서로를 믿지 못했다. 노마드들은 대부분 생존을 위해서라면 물건을 훔치거나 약탈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개중 일부 세력은 무기를 들고 진짜 해적 행세를 하기도 했기 때문에 모르는 배가 접근할 때는 항상 주의가 필요했다. 소문으로 듣기에는 노골적으로 해골 모양의 해적 깃발을 꽂은 해적선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유봄은 아직 해적을 본 적이 없었지만 앞으로도 결코 마주치고 싶지는 않았다.
둘째, 지금은 섬으로 변한 산지에 자리를 잡은 정착민들이 있었다.
정착민들은 마치 원시 시대로 돌아간 것처럼 수렵과 채집, 어로 생활을 하며 살았다. 최근에 이들은 힘이 센 자를 중심으로 산 속에 토성이나 요새를 짓고 자기들만의 부족 공동체를 결성하는 데 전념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되기까지 부족 간의 전쟁과 굶주림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야만 했다. 모두 한때는 도시 생활에만 익숙하던 서울 사람들이었을 텐데 이렇게 드라마틱한 삶의 반전이 또 어디에 있을까. 이들은 새로이 섬에 진입하려는 외부인들을 침입자로 간주해 잔혹하게 공격하는 호전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그 때문에 노마드들은 이들을 가리켜 ‘산적’이라 불렀다. 유봄이 떠나온 아차산도 이제는 강력한 ‘산적’ 집단이 장악한 곳 중 하나였다. 듣자 하니 육지에 가까이 접근하기도 전에 화살부터 날아온다고 한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도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가끔 한 번씩 이 야만적인 세상에서 어린 개나리는 무사히 지내고 있을까 걱정되기는 했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문명을 잃지 않은 강력하고 부유한 자들이 있었다.
이른바 ‘부동산(不動山)’ 세력들이었다. 이들은 편서풍과 제트류의 흐름이 붕괴되며 이리저리 요동치는 파도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인공산, 즉 서울의 고층 건물과 타워들을 장악하고 있었다. 자연의 진짜 산과 달리 부동산에는 여전히 문명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사망선고를 받은 인류가 남겨둔 최후의 유산 같은 문명이었지만, 한 줌밖에 되지 않는 극소수의 인간들이 인류에게 남겨진 기술과 장비를 모두 독점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해일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기도 했다. 특히 남산타워, 롯데타워처럼 주변을 조망하는 요새로 삼을 수 있는 큰 건물들은 가장 힘 있는 자들이 차지했다. 부동산 세력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이 시대의 권력자들이었다.
해적에 산적에 부동산이라니! 이것이 21세기 중반을 화려하게 장악할 3대 세력이 되리라고는 그 어떤 미래학자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어느 세력을 만나든 유봄처럼 힘없고 약한 이들은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유봄은 대부분의 시간을 오리배에서 바다를 표류하며 보내곤 했다.
이제 오리배는 유봄의 집이자 방이 되었다.
나름 친환경 무동력의 이동식 원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유봄은 무기나 도구로 쓸 수 있는 물건들을 가방에 담아 오리배에 보관했다. 며칠 전 어느 빈 아파트에서 구한 담요를 뒷좌석에 깔았더니 훌륭한 침대까지 완성되었다. 작고 예쁜 화분도 하나 만들어 오리배의 운전석 옆 자리에 두었다. 화분에는 유봄이 야산에서 조심스레 옮겨 심은 이름 모를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유봄은 그 나무에 ‘봄순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지난 봄, 가지마다 파릇파릇 돋아난 새 순을 보고 지은 이름이었다. 이름을 지어주자 봄순이에 대한 책임감이 생겼다.
‘봄순이는 내가 화분에 옮겨 심었으니, 내가 지켜줘야 해.’
그렇게 봄순이가 시들지 않도록 지켜주며 유봄도 덩달아 생존의지를 다졌다. 페트병에 받은 빗물도 봄순이와 나눠 마셨고 맑은 날이면 오리배 위로 함께 올라가 따사로운 햇볕을 즐기기도 했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에도 봄순이와 함께였다. 거친 파도에 화분이 행여나 바다로 떨어질까 품에 꼭 안고서 오리배가 뒤집히지 않도록 균형을 잡으며 밤을 지새웠다. 봄순이에 대한 책임감이 유봄을 살게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애정과 추억도 지독한 가뭄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봄순이에게 도저히 양보할 수 없었던 마지막 물 한 모금까지 다 마시고 나니 봄순이는 눈에 띄게 시들어갔다. 처음에는 푸르고 생생한 이파리를 자랑하던 봄순이도 이제는 유봄과 함께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유봄은 노랗게 변해서 하나씩 떨어져 가는 봄순이의 잎을 보며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이야기를 생각했다.
‘저 잎이 다 떨어지면 나도 죽는 건가.’
하지만 아쉽게도 유봄에게는 마지막 잎새를 멋지게 그려줄 화가가 없었다. 유봄이 간간이 식량을 구하던 폐건물과 언덕들마저 모두 새로운 부동산 세력과 산적들이 장악해 버렸고 그들 중 누구도 한정된 식량을 유봄과 나누고 싶어 하지 않았다. 비굴하게 구걸도 해보고 밤 중에 몰래 숨어들어 보기도 했지만 몇 번이나 도망치듯 쫓겨난 끝에 기어코 물과 식량이 다 떨어졌다. 급기야 오늘 아침에는 바닷물을 마실 정도로 유봄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위태로운 상태였다. 결국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이 닥쳐버렸다.
‘모험을 할 수밖에 없어.’
유봄은 멀리서도 또렷이 보이는 거대하고 위압적인 부동산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서울 시내의 다른 모든 고층건물을 압도하는 잠실의 롯데타워였다. 그 앞에서 작은 점처럼 보이는 검은 오리 한 마리가 어서 오라고 손짓하듯 유봄을 향해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검은 오리?’
유봄은 드디어 자신이 미쳐서 헛것을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했다. 아니면 혹시 저것이 그 말로만 듣던 저승사자라는 존재인가? 유봄이 오리배를 타고 있어서 사람의 형상 대신 오리를 보내신 걸까?
‘그럴 리가 없잖아!’
유봄은 두 눈을 힘껏 비비고 나서 다시 오리를 쳐다보았다. 자세히 보니 오리 모양의 형체는 조금씩 커지면서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거리가 좀 더 가까워지자 비로소 오리처럼 보였던 물체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건 작은 카누 보트였다. 기껏해야 1~2인승 정도로 보이는 그 보트에 사람이 하나 타고 있었다. 밀짚모자를 쓴 채 양손으로 노를 젓고 있는 모습이 멀리서 볼 때 오리가 날개를 퍼덕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노마드일까?’
주변에 아무도 없이 혼자서 오고 있는 것으로 봐서 유봄과 비슷한 신세의 노마드처럼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마침내 교차점이 다가오자 그쪽도 여기를 경계하는 것처럼 속도를 서서히 늦추며 거리를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그 모습이 유봄을 안심하게 했다. 호기심과 경계심 사이의 어딘가에서 배회하는 전형적인 노마드의 태도였다. 그 사람이 카누에서 노를 들더니 롯데타워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에 가려고?”
당돌한 톤의 여자 목소리가 들려 깜짝 놀랐다. 밀짚모자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향하자 그 아래에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까무잡잡한 여성의 얼굴이 있었다. 헐렁한 티셔츠 아래로 여름햇살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가 빛났다. 노마드 중에 여성을 마주친 것은 처음이라 내심 반가웠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유봄은 고개를 끄덕였다.
“글쎄. 나라면 별로 추천하지는 않겠는데?”
“왜요?”
“저기에는 군대가, 아니 정확히는 과거 대한민국 군인이었던 세력이 장악하고 있거든. 다른 곳이랑 무장의 수준 자체가 달라.”
“가보셨어요?”
“아니, 근처까지 갔다가 다짜고짜 총을 쏘길래 도망쳐 오는 길이야. 그리고 어차피 난 강북 체질이거든. 그래도 가든지 말든지는 알아서 잘 판단하고, 그럼 난 이만 간다.”
한강이 온통 바다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강북(江北)’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정말 오랜만에 경험하는 친근한 대화에 힘입어 유봄은 용기를 내보았다.
“저기, 혹시 물 한 모금만 얻을 수 있을까요?”
떠날 채비를 하던 여성이 잠시 동안 유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역시 너무 무리한 요청이었나? 하지만 죽을 것 같다고요. 유봄의 표정 변화를 지켜보던 여성이 무심하게 물었다.
“넌 뭘 줄 수 있는데?”
느닷없는 물물교환 분위기에 당황한 유봄이 황급히 가방을 뒤지다가 손에 잡힌 선크림을 내밀어 보였다. 스스로도 황당했지만 사실 유봄이 지금 가진 물건 중에 생존에 큰 도움이 되거나 교환가치가 있는 물건은 없었다.
“이거라도 드릴까요?”
“던져 봐.”
유봄은 선크림을 던져 카누로 전달했다. 선크림을 받아 든 여성은 깔깔거리며 웃더니,
“그래. 내가 좀 많이 타긴 탔지?”
하며 투명한 페트병을 하나 꺼내 오리배로 던졌다. 페트병에는 물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유봄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서서 온몸으로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성은 손사래를 치고는 미소를 띤 채로 다시 노를 젓기 시작했다. 카누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서로에게 깊이 개입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상대의 절박함을 외면하지도 않는 더도 덜도 없는 노마드의 삶.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그랬나?’
아쉬움에 뒤를 돌아보았지만 여성은 이미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없었다.
‘엄청 빠르시네. 역시 사람은 물을 잘 마셔야 해.’
유봄은 페트병을 열어 물을 마셨다. 그야말로 생명수가 따로 없었다. 인체의 75%가 물이라는데 그 동안 그 물이 없었으니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로 살아왔던 것인가. 마침내 공급된 물에 나머지 25%의 인체가 열렬히 환호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벌컥벌컥 마시고 싶었지만 당분간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기에 한 모금에 만족했다. 그래도 급한 갈증이 해소되니 한결 머리가 맑아지고 심리가 안정되었다. 늦었지만 봄순이에게도 한 모금을 양보했다.
“너도 많이 목말랐지?”
유봄은 이제 다시 롯데타워를 바라보았다. 그래, 저곳에 군인들이 있다고? 무섭기는 했지만 유봄은 오히려 그 말에 희망 한 조각을 걸어보기로 했다. 군인들이 결코 선량한 시민들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아차산에서 라디오를 통해 확인했었다. 그래도 한 나라의 군대였던 사람들이다. 오직 살아남겠다는 본능밖에 남지 않은 해적이나 산적들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말이 통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대로라면 어차피 유봄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죽더라도 모험을 하다 죽는 편이 낫다. 결심이 선 유봄은 다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어느덧 해가 서쪽으로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여름의 길고도 따가운 햇살이 물결에 부딪치며 찬란하게 반사되고 있었다. 유봄은 두 시간 정도를 꼬박 달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과거 한강이라 불리던 깊은 해역을 건널 수 있었다. 바다 아래 완전히 잠긴 오래된 아파트들과 수면 위에 고층부를 노출하고 있는 새로 지은 아파트들 사이를 지나며 유봄은 마침내 자신이 잠실에 접어들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주변이 고요했다. 삐걱대는 오리배의 페달 소리가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 경험상 고층 건물에는 대개 무장한 세력들이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유봄은 오리배의 방향을 언제라도 전환할 수 있도록 조종간을 꼭 붙잡았다. 분명 저 건물 어딘가에서 유봄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때 물속에서 무언가 검은 물체가 오리배 아래를 쓱 하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