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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미 Apr 27. 2023

미국 노숙인의 의식주 - 주

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24

의식주 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당연히 주였다. 주거가 없거나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노숙인인 것이다.


한 장소에 일주일 넘게 머무르는 일이 드물었던 스트레이에게 잘 곳을 구하는 일은 항상 큰 문제였다. 스트레이는 침낭을 가지고 다녔고 육교 아래, 옥상, 폐건물에서 많이 잤다. 텐트는 가지고 다니지 않았지만 다른 노숙인들이 형성한 텐트촌에 머무른 적은 있었다.


영어에는 노숙인들이 지내는 폐건물이나 빈집을 뜻하는 스쾃squat이라는 속어가 있다. 폐건물에서 지내는 행위 자체도 스쾃이라고 부른다. 스트레이는 길에서 만난 다른 젊은 노숙인들과 함께 여러 번 스쾃을 꾸렸다.


온갖 종류의 건물이 버려져 있었다. 2009년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서는 버려진 12층짜리 빌딩에서 지냈다. 시카고에 있을 때도 어느 버려진 빌딩에서 지냈는데, 시카고로 돌아올 때마다 그 빌딩으로 돌아가 친구 노숙인들과 함께 지냈다. 바로 옆의 대형 수퍼마켓이 유통기한도 지나지 않은 음식을 매일 폐기한 덕분에 그 음식을 주워 먹기만 해도 굶을 걱정이 없었다. 노숙을 그만둔 후에는 우연히도 그곳에서 1마일 거리에 있던 집을 얻어 정착했다. 빌딩은 비교적 최근에 철거되어 사라졌다.


무슨 사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끔은 그럴싸한 집이 가구와 함께 방치되어 있기도 했다. 전에 살던 사람이 이사를 나갈 때 가구를 옮기기를 포기했을 수도 있다. 또는 가구를 갖춰 놓은 형태의 셋집인데 세입자가 오랫동안 없었을 수도 있다. 뉴욕 주 버팔로에서는 창문으로 아름다운 강변이 보이는데다가 퀸 사이즈 침대까지 있는 침실에서 잘 수 있었다.


- 미국에는 노숙하는 사람 수보다 빈집 수가 더 많아.


노숙을 그만둔 지 오래된 지금까지도, 미국의 주거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스트레이는 분개하며 말한다. 직접 목격한 현상이기도 하고 실제 통계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이라면 꺼림칙하게 여길 만한 곳에서도 머물렀다. 버려진 교회에서도 지내 봤고(재미있게도 서양에는 교회나 성당에 유령이 나온다는 괴담이 적지 않다) 버려진 장례식장에서도 지내 봤다. 뉴올리언스에 갔을 때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휩쓸린 후 제대로 복구되지 않은 빈민가에서 지냈다. 스트레이가 친구들과 함께 머물렀던 빈집의 문에는 스프레이로 X 표시가 돼 있었다. 카트리나 때 시신이 발견된 집이라는 뜻이었다. 스트레이와 친구들은 개의치 않았다. 집안에서 열쇠를 찾아냈고, 외출할 때는 마치 자기 집처럼 문을 잠그고 다녔다.


폐건물에서 귀신을 본 적은 없느냐고 내가 농담 반으로 묻자, 스트레이는 자신은 전혀 그런 적이 없지만 다른 노숙인들 중에는 귀신을 봤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노숙인들은 하루하루 살아남느라 바쁘기 때문에 귀신에 대한 걱정을 할 여유는 없다고 한다.


스트레이는 노숙인 쉼터에는 전혀 가지 않았다. 미국의 노숙인 쉼터는 대부분 기독교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배에 참석해야만 머물 수 있는 쉼터도 많았다. 스트레이는 투철한 무신론자이고 종교적인 분위기를 싫어한다. 쉼터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싫은 것을 참고 머물 만큼 아늑한 곳도 아니었을 것이다. 상한 음식이 나오거나 침대에 빈대가 들끓는 등 도저히 지낼 만한 환경이 못 되는 쉼터들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야외나 폐건물에서 지낸 것은 아니었다. 스트레이는 특히 생일을 전후로 시카고에 여러 번 돌아와서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 때 친구들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그대로 자고 가는 경우가 흔했던 듯하다. 시카고가 아닌 곳에서도 새로 사귄 친구들이 스트레이를 곧잘 재워 줬다.


콜로라도 주 포트콜린스에 있을 때는 길에서 만난 무정부주의자들이 스트레이를 코뮌(생활 공동체)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스트레이는 그곳에서 몇 주간 머물렀다.


- 그 사람들이 너랑 이야기를 해 보고 너도 무정부주의자라는 걸 알게 돼서 데려간 거야?

- 이야기를 해볼 필요도 없었어. 원래 젊은 떠돌이들은 대부분 무정부주의자니까.


한국의 노숙인들은 돈이 생기면 고시원에 머물기도 하지만 미국에는 고시원과 같은 주거 형태는 없다. 가난해서 집세를 감당하기 어려울 때 흔한 선택지는 한 집에 여러 명이 룸메이트가 되어 살면서 집세를 나눠 내는 것이다.


2010년 가을 스트레이는 고향 시카고에 임시로 정착했다. 시카고에서 함께 노숙을 하던 새로운 친구들과 뜻이 맞았다. 스트레이는 일자리를 구했고, 자신의 이름으로 방 두 개짜리 아파트를 빌려서 친구 네 명과 집세를 분담하며 같이 살기 시작했다. 다섯 명이 방 두 개짜리 집에서 생활했으니, 한 사람 당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의 넓이는 고시원과 비슷했을 것이다.


썩 안락하지는 않았지만 스트레이는 그렇게 겨울을 지내보기로 했고, 어쩌면 그대로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스트레이가 시카고에 올 때마다 재워 주던 오랜 친구는, 이제 처지를 서로 바꿔서 자신이 스트레이의 소파에서 자도 되느냐고 농담을 했다.


그러나 스트레이는 사실 진지하게 정착하려는 의욕은 없었다. 몇 달이나마 고향에 눌러앉게 된 가장 큰 동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노숙 중에 얻은 헤로인 중독이었다. 중독은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고치기보다 유지하기가 더 쉬웠다. 고통스러운 금단증상을 피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헤로인을 살 수 있어야 했고, 그러려면 직업이 필요했다.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주거 공간이 필요했다. 같이 살던 친구들의 속사정도 스트레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스트레이는 집을 잃고 차에서 생활할 때 소지품 상당수를 처분했지만, 자전거와 데스크탑 컴퓨터는 친구에게 맡겨놓았다. 이제 좁기는 해도 집이 생긴 스트레이는 데스크탑을 되찾아와서 프로그래밍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열심히 개인용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포트폴리오도 올려놓았다. 그러다가 시카고의 길고 우울한 겨울에 지친 이듬해 2월, 캘리포니아로 훌쩍 떠났다. 그곳에서 잠시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스트레이는 결국 노숙 생활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 시절에 대해 내가 질문하면 스트레이는 대개, 여러 장소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살았다고 뭉뚱그려서 대답할 뿐이다.


스트레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가장 신기하게 느꼈던 점 중 하나는 스트레이가 처음 만난 사람의 집에 머문 일이 많다는 것이다. 히치하이킹을 할 때 태워준 운전자가, 또는 처음으로 찾아간 지역에서 대화를 나누게 된 또래가, 자신의 집에 며칠에서 심지어는 몇 주까지도 묵게 해 주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가끔씩 옛날이야기에서 나그네가 낯선 사람의 집에 묵어가는 장면을 연상하기도 했다. 지금 한국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런 일이 가능했던 첫째 이유는, 미국에서는 삶의 형태가 더 다양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한국에서는 ‘성실한 삶을 사는 평범한 사람’과 ‘사회에서 낙오한 노숙자’라는 이분법이 있지만, 미국에서는 둘 사이의 경계가 여러 의미로 덜 선명한 것 같다.


당시의 스트레이처럼 화물열차에 숨어 타고 떠돌며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호보hobo라는 단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했을 정도다. 돈이 꼭 필요할 때만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일거리를 찾아 일하지만 집이 없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게다가 현재 젊은 호보들의 생활 방식은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치적인 신념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순수하게 경제력의 문제만은 아니다.


호보가 아니라 비교적 안정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조차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차나 텐트에서 생활하기도 한다. 버스킹을 하던 노숙인들이 음악으로 성공해서 음반을 내고 외국으로 투어를 다니는 경우도 있다. 특이한 경우이기는 해도 키아누 리브스 같은 유명인이 노숙을 하기도 한다.


낯선 사람과도 쉽게 말문을 트는 문화, 잘 모르는 사람과 룸메이트가 되어 생활공간을 공유하는 문화도 원인일지 모른다. 스트레이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생각한 점인데, 미국에는 노숙인을 경계하지 않고 잘 대해 주는 사람이 한국보다 많은 것 같다(다만 한국보다 더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당시의 스트레이와 마찬가지로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의 젊다 못해 어린 노숙인들이 많은 것도 하나의 원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노숙인이라고 해도 나이가 어리면 더 딱해 보이고 경계심도 덜 들지 않을까. 호기심 많은 또래들이 먼저 말을 걸기도 한다.


노숙하는 동안 스트레이는 노숙인 친구도 많이 사귀었지만 노숙인이 아닌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파티에도 수없이 초대되어 갔다. 미국에서는 파티라고 해서 대단한 것은 아니고, 서로 아는 사람들과 모르는 사람들이 뒤섞여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일 뿐이다. 스트레이는 더러운 옷을 입은 채로 파티에서 공짜로 먹고 마셨다. 그리고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 친구들 중 일부와는 아직까지도 연락한다. 한국에서도 그런 일이 가능할지 내게는 의문이다.


시카고 외곽에 호보들이 모여들어 텐트를 친 소위 '호보 캠프'에서 찍은 사진.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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