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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미 May 04. 2023

마치 멸망한 세상에서 살아남듯

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25

스트레이에게는 캐나다 서부의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온 친구가 있었다. 정규교육을 별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글도 잘 읽지 못했다. 어머니가 경찰에게 목숨을 잃었고, 십대 때부터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화물열차를 타고 미국에 불법 입국한 후 달리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몇 년 동안 미국을 방랑하고 있었다.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다른 떠돌이들과 마찬가지로 가명을 썼고, 가명은 스톰프Stomp였다. 스트레이와 스톰프는 캔자스에 있을 때 우연히 같은 다리 밑에서 노숙을 하게 되어 처음 만났다. 둘은 서로 본명을 물어본 적이 없다. 그래도 스톰프는 스트레이를 친동생처럼 대했고, 남들에게도 스트레이를 자신의 동생이라고 소개했다. 스트레이도 스톰프를 친형처럼 대했다.


그러나 떠돌이 생활에서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언젠가는 서로 다른 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 스트레이가 떠돌기를 그만두고 정착한 후로 두 사람이 걷는 길은 더욱 달라졌다.


그 뒤로 몇 년이 더 지난 2015년 여름, 스톰프는 죽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화물열차에 타고 있다가 떨어졌다. 무언가 갈등이 생겨서 일행들이 스톰프를 기차에서 내던져 버렸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이 많다. 스톰프는 양팔과 다리 하나를 잃고, 척추가 절단되고, 두개골이 부서진 채로 몇 주 동안 생명유지 장치를 달고 있었다. 그 후 병원 측에서 연명치료를 중단했다. 스트레이는 그 일을 이야기할 때면 괴로워한다.


스트레이는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가끔씩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좀비 드라마 <워킹데드>였다. 스톰프가 어떻게 죽었는지 설명하면서, 노숙 생활은 거기에 나오는 약탈자 집단의 생활과 비슷하다고 스트레이는 말했다.


<워킹데드>도 포함해서 픽션에 흔히 등장하는 인류 문명이 멸망한 후의 세상, 포스트 아포칼립스. 스트레이는 노숙을 하던 시절의 삶이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아주 비슷했다고 말한다. 세상이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끝까지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고도 한다.


한 번은 누군가가 반론했다. 노숙이랑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많이 다를 거야. 사냥할 줄 알아? 나도 궁금한 부분이었다. 문명이 멸망한 세상에서는 식당이 폐기하는 멀쩡한 음식을 주워 먹지 못할 것이다. 돈을 벌거나 구걸해서 음식을 사기도 어려울 것이다.


스트레이는 생존을 위해 사냥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본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외딴 곳에 텐트를 치고 생활하면서 엽총이나 덫으로 사냥을 하는 사람들을, 노숙하면서 많이 만나 봤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미국처럼 큰 나라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스트레이는 다른 사람들이 사냥해 모닥불에서 요리한 미국너구리와 청설모를 먹어봤다. 미국너구리는 캔자스에서, 청설모는 몬태나와 사우스다코타에서 먹었다. 작고 꼬리가 흰 사슴인 키 사슴key deer도 먹어봤다. 여자인 친구 한 명은 미국너구리의 털가죽을 벗겨서 자신의 후드 티셔츠에 꿰맸다고 한다. 스트레이는 채식주의자였지만,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기 위한 채식이었기 때문에 공장식 축산으로 생산되지 않은 고기에는 거부감이 그다지 없었던 모양이다. 도시나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기 때문에 사냥감 외에는 달리 먹을 것도 없었다.


콜로라도 주의 포트콜린스에서는 무정부 원시주의자들과 함께 지낸 적도 있다. 스트레이를 코뮌으로 데려간 그 사람들이었는데, 사냥한 동물의 고기를 식량으로 삼고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 생활을 했다. 다만 사냥은 원시적인 도구가 아닌 총으로 했다. 심지어 총이 아주 많았다. 총은 모두 한 방에 보관했고 관리자를 한 명 정해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스트레이는 사냥이나 옷 만들기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다. 당시 자신은 항상 취해 있었기 때문에 참여하려고 해도 신뢰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곳 사람들 중 다수는 술이나 약을 하지 않았다. 일부는 가정을 이뤄서 아이들을 낳고 그 아이들을 홈스쿨링으로 가르쳤다. 만 세 살짜리 아이가 엠마 골드만(20세기 초 미국의 무정부주의자)의 글을 외워서 말하고 있었다고 한다.


스트레이는 낚시로 끼니를 해결한 적도 있었다. 2009년 몬태나의 호숫가에 머물 때였다. 벌레를 잡아서 낚싯바늘에 꿰고, 그 낚싯바늘을 바느질할 때 쓰는 실에 연결하고, 실을 나뭇가지에 묶었다. 마치 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원시적인 낚싯대였다. 그럼에도 어렵지 않게 물고기를 잡았다. 어릴 때 대부가 주말마다 낚시에 데려간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문명이 멸망한 세상에서 확실히 유용할 듯한 기술이다.


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깨끗한 물은 어떻게 구할 것인지 물었다. 스트레이는 물을 만드는 일은 쉬운 편이라고 했다. 사냥꾼들과 함께 지낼 때 해 본 것일까? 노숙하던 시절 스트레이는 물의 중요성을 잘 알았다. 물을 1갤런(약 3.8리터)씩 배낭에 넣어 다녔다.


물뿐만이 아니라 침낭, 재킷, 깨끗한 양말, 손톱깎이도 필수품이었다. 대학교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넷북, 요금을 내지 못해서 끊길 때가 더 많은 휴대전화도 있었다. 거기다 책도 여러 권 가지고 다녔다. 손에 READ MORE라는 문신을 한 후에는 특히 사람들이 너도나도 책을 줬다. 스트레이는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다 읽고, 그 후에는 다른 젊은 노숙인들에게 줬다. 그 중 최소한 몇 명은 자신이 준 책을 읽었기를 바란다고 한다.


이런 물건들로 이루어진 스트레이의 짐은 항상 아주 크고 무거웠다. 게다가 스트레이는 몸집이 작기 때문에 짐의 크기는 스트레이의 몸뚱이만 했다. 무게도 몸무게의 절반은 나갔을 것이라고 한다.


- 군장을 하고 행군하는 군인 같았겠네.

- 나중엔 정말 군용 배낭을 샀어. 베트남산.


노숙을 그만둔 지 오래된 지금까지도 스트레이는 그 배낭을 보관하고 있다.


스트레이는 다른 노숙인들에게 여러 번 짐을 도둑맞았다. 짐을 되찾은 적도 있고, 일부조차 되찾지 못한 적도 있다. 스트레이의 삶을 기록한 공책들이 그렇게 사라졌다는 사실은 언제 생각해도 아쉽다. 재미있는 점은 스트레이가 노숙을 시작하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모자가 있는데, 그 모자는 스트레이와 함께 전국을 여행한 후 시카고에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이다. 짐을 전혀 되찾지 못한 적이 있는데도 그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스트레이 자신도 기억하지 못한다. 한때 녹색이었던 모자는 빛이 완전히 바래서 이제 탁한 노란색이다.


스트레이는 가게, 특히 월마트에서 좀도둑질을 많이 했다. 어릴 때부터 옷을 살 돈이 없어서 훔쳐 입었으니 크게 새로운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노숙인의 물건을 훔친 적은 한 번도 없다. 히치하이킹을 할 때 태워준 사람들, 집에서 재워준 사람들, 파티에서 만난 사람들의 경우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큰 곤경에 처했을 때에도 가게가 아닌 개인에게서는 아무것도 훔친 적이 없다. 내가 보기에 스트레이는 멸망한 세상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만큼 냉혹하거나 뻔뻔한 사람은 못 되는 것 같다.


2010년 6월, 자신의 커다란 배낭 위에 앉아 있는 스트레이. 손에 든 것은 비닐봉지에 담아 파는 싸구려 와인이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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