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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미 May 25. 2023

헤로인이라는 악몽

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28

스트레이는 노숙하기 전에도 마약을 했다. 슬럼가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었다. 피자 배달 일을 할 때 손님들이 팁으로 돈 대신 마약을 주는 일이 자주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스트레이는 노숙을 시작하기 전까지 마약 중독으로 고생한 적은 없었다. 마약 사용과 마약 중독은 서로 같지 않다. 중독은 아무리 애를 써도 약물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고 스스로의 의지만으로는 사용을 조절하지 못하는 뇌 질환이다.


미국에서는 집과 직장이 있던 사람이 약물에 중독되어 폐인이 되면 노숙인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인식이 흔하다. 하지만 스트레이는 현실은 그 반대라고 단언한다. 가난 때문에 집을 잃고 노숙을 시작한 후 약물에 중독되는 일이 훨씬 흔하다는 것이다. 진행의 순서가 어떻든 약물중독은 미국에 만연한 문제다. 미국의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5%에 지나지 않는데, 전 세계의 불법 약물 중 40%는 미국에서 소비된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중독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오랫동안 꾸준히 치료하고 관리해야 하는 만성 질환이라는 것이다. 몸이 아플 때, 낫고 싶다는 의지가 있으면 물론 좋지만 실제로 낫기 위해서는 의지보다도 치료와 휴식이 더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의지가 있는 것은 좋지만 오로지 그 의지만으로 중독을 끝낼 수는 없다. 다른 여건들도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집도 없고 안정된 수입도 없는 상태라면 어려운 일이다. 살기 힘들어서 중독의 입구가 활짝 열릴 뿐 아니라 살기 힘들기 때문에 출구도 막혀 버리는 것이다.


술과 담배를 제외하고 스트레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중독된 약물, 스트레이에게 가장 큰 괴로움을 준 약물은 헤로인이었다. 헤로인은 아편유사제(오피오이드)라는 범주에 속하고, 이 범주에는 헤로인 외에도 다양한 약물이 있다. 코데인이나 히드로코돈과 같은 진통제를 예로 들 수 있다. 스트레이가 처음으로 아편유사제를 접한 것은 노숙을 시작하기 훨씬 전이었다. 그러나 아편유사제 중에서도 특히 폐해가 큰 헤로인에 손을 댄 것은 노숙을 시작한 후였다. 처음에는 다른 아편유사제보다 값싸고 구하기 쉬우면서도 효과가 더 강하다는 이유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아편유사제를 사용할 때와는 달리 중독이 시작되었고,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게 되었다. 함께 노숙을 하던 친구들 사이에서도 헤로인 중독이 흔했다.


미국에서 헤로인은 값이 싸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힘든 현실을 잊기 위해 널리 사용한다. 내성이 없는 사람의 경우 10달러어치를 사서 주사하면 24시간 동안 행복감이 지속된다고 한다. 그러나 중독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몇 번 사용하다 보면 어느 새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게 된다.


처음에는 현실의 모든 문제를 잊고 순수하게 행복해지는 느낌이 좋아서 헤로인을 찾을 수 있지만, 중독이 시작되고 나면 몸과 마음이 모두 헤로인에 질질 끌려 다니게 되고 순식간에 생활과 건강을 망치게 된다. 심지어는 바늘에 대한 공포가 있어서 스스로 주사를 놓지 못하는데도 헤로인에 중독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계기로 남이 몇 번 대신 주사를 놓아줘서 중독되고, 그 후로는 계속 남들에게 주사를 놓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내성이 생기고 나면 그전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사용해야만 효과가 있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담도 커진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부작용으로 숨을 쉬지 못해서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스트레이는 헤로인 남용 때문에 호흡이 정지된 친구들에게 응급처치를 해야 했던 일이 많았고,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항상 무서웠다. 주변에 응급처치를 해 줄 사람이 없었던 친구들은 그대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스트레이에게는 그렇게 떠나간 친구가 적지 않다.


스트레이도 똑같은 이유로 호흡이 정지된 적이 몇 번 있다. 그러나 스트레이는 치료제인 날록손naloxone을 항상 가지고 다녔고, 친구들이 곧바로 날록손을 주사했기 때문에 크게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한다. 날록손은 뇌의 수용체에 결합한 헤로인을 떼어내서 호흡을 회복시킨다.


다만 날록손을 사용할 때 문제는 몸속에 있던 헤로인의 영향이 모두 없어져 버리기 때문에 곧바로 금단증상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날록손을 사용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 헤로인의 약효가 떨어지고 나면 금단증상이 시작된다. 헤로인의 금단증상은 아주 고통스럽다고 한다. 온몸의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서 극도의 근육통과 함께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구토, 설사, 식은땀도 계속된다. 중독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면, 헤로인에 취하는 것이 기분 좋아서가 아니라 그저 금단증상을 피하기 위해 계속해서 헤로인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스트레이는 말했다.


헤로인은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부작용을 동반하는 훌륭한 항우울제와도 같았다. 정신과 의사들이 처방하는 항우울제는 스트레이에게 별로 효과가 없었지만 헤로인은 즉시 우울증을 잊게 해 줬다. 행복한 기분이 들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무력감이 사라지고 진정으로 살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은 살 만한 곳이고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약효가 떨어지고 나면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중독이라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또 우울증의 증상 중에는 자기혐오와 죄책감이 있는데, 자신이 중독자라는 사실은 이 두 가지 감정을 더욱 악화시켰다. 우울증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헤로인을 사용하지만, 헤로인을 사용한다는 사실 때문에 더 우울해지는 악순환이었다.


스트레이는 헤로인을 끊기 위해 오랫동안 안간힘을 썼다. 노숙하는 동안 재활원에 들어간 적도 있다. 스트레이는 재활원에 언제 어떤 계기로 가게 됐는지, 그곳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페이스북의 글이 오랫동안 끊겨 있던 2012년에 다녀온 것이 아닌지 나는 혼자 추측할 뿐이다. 어쩌면 다른 일로 구속되었다가 법원의 명령으로 다녀왔는지도 모른다.


무료 재활원이었고 효과가 전혀 없었다는 이야기만 스트레이에게 한두 번 들은 적이 있다. 미국에서 재활원의 가격대는 다양하고 개중에는 하루에 수천 달러를 받는 곳까지 있다. 그 점을 생각하면 무료 재활원의 시설과 치료는 그다지 좋지 않았을 것이다. 더 나쁜 부분은 그 재활원이 아주 종교적인 곳이었다는 점이다. 철저한 무신론자인 스트레이에게는 전혀 맞지 않았다. 약물을 끊는 데에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노숙 생활에서 벗어난 후 스트레이는 재활원에 가지 않고도 모든 약물을 끊었다. 노숙에서 벗어나 정착한 이유 중 하나도 약물을 끊기 위해서였다. 또 정착 생활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약물을 끊기 위한 동기가 되어서 선순환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아직까지 끊지 못한 것은 담배뿐이다.


마리화나는 특별히 끊기로 마음을 먹은 것도 아닌데, 그저 피우고 싶은 생각이 점점 사라져서 피우지 않게 됐다. 엑스터시도 중독성이 그다지 없기 때문에 끊는 데에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헤로인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오랫동안 클리닉에 다니면서 천천히 끊었지만, 그래도 스트레이는 금단증상 때문에 아주 힘든 시간을 보냈다. 모든 금단증상을 다 겪었고, 정도도 심했다고 한다.


헤로인 중독을 치료하는 방법은 메타돈methadone이라는 아편유사제 중독 치료제를 복용하는 것이다. 메타돈 자체도 아편유사제의 일종이다. 체내에 헤로인이 없으면 금단증상이 일어나는데, 그 빈자리에 같은 범주의 더 약한 약물인 메타돈을 대신 채워 넣으면 금단증상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도 많이 완화할 수 있다. 메타돈은 다른 아편유사제처럼 행복감을 유발하지 않기 때문에 정신적인 의존도 완화할 수 있다. 헤로인을 메타돈으로 완전히 대체한 후, 메타돈도 점점 줄여나가다가 끊으면 치료가 끝난다. 원리는 쉽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처음에 스트레이는 매일 클리닉에 직접 가서 메타돈을 복용했다. 공교롭게도 직장에서 먼 곳에 살았던 시기여서, 메타돈을 복용한 후 제시간에 출근하기 위해 매일 새벽 세 시에 일어나야 했다. 헤로인보다는 훨씬 낫지만 메타돈에도 금단증상이 있기 때문에, 사정이 있거나 주말에 늦잠을 자서 클리닉에 제때 가지 못하면 금단증상으로 몸이 아팠다. 클리닉에서는 환자가 메타돈 외의 다른 아편유사제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지 혈액검사로 확인했다. 일정한 기간 동안 혈액검사를 통과하면 그때부터는 클리닉에 매일 가지 않아도 되고, 한 번에 2주치의 메타돈을 받아와서 집에서 복용할 수 있었다.


그 후 스트레이는 클리닉에서 정한 속도보다 더 빠르게 메타돈의 복용량을 줄여 나가다가 완전히 멈췄다. 물론 몇 번의 실패와 재발이 있었다. 상태가 아주 나빴을 때는 집에서 헤로인을 물에 녹여 주사기 여러 개에 담고, 그 주사기들을 가방에 숨겨 출근한 후 회사 화장실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침내 헤로인과 메타돈을 모두 끊는 날은 찾아왔고 스트레이는 지금도 그 날짜를 기억하고 있다. 끊기 전과 끊은 후 모두, 한 순간도 쉬운 적이 없었던 시간이었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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