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29
스트레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가난해지거나 노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 번 말했다. 그러나 노숙은 평범한 생활 속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경험들을 가져다 줬다. 그리고 마치 긴 무전여행과 같았던 스트레이의 떠돌이 생활에는 즐거운 순간들도 분명히 있었다.
집과 일자리가 없는 처지의 유일한 장점은 얽매인 곳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스트레이는 그 유일한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서, 미국에서 육로로 갈 수 있는 주 중 대부분에 가 봤다. 하나의 주가 마치 하나의 나라와 같은 드넓은 미국에서 대부분의 미국인이 평생 하지 못하는 일이다.
화물열차에 숨어 타는 것은 위험했지만 스트레이는 그 일을 즐겼다. 평생 동안 불면증이 있었는데, 시끄럽고 추운 화물열차에서는 오히려 잘 잤다. 히치하이킹도 즐겼던 모양이다. 한 주에서 열차에 탄 후 잠들면 다른 주에서 눈뜨는 생활, 길가에서 엄지손가락을 내밀고 있으면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차에 태워서 멀리 데려가 주는 생활에 가끔 향수마저 느낀다고 한다. 스트레이의 친구들 중에도 그런 자유로운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5일 밤낮에 걸쳐 화물열차를 타고 서부 해안을 따라 올라가던 일에 대해서 스트레이는 아직도 가끔 이야기한다. 캘리포니아 주의 베이 에어리어에서 오리건 주의 포틀랜드로 몇 번 그렇게 이동했다고 한다. 날씨도 좋고 경치도 아주 아름다웠다.
다만 사람을 태우기 위해서 만든 기차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불편했고, 며칠 동안 계속 타고 있기에는 더욱 불편했다. 5일 동안 먹고 마실 음식과 물을 배낭 가득 짊어지고 타야 했다. 주로 통조림과 생라면을 먹었다. ‘특별한 것’이 먹고 싶을 때는 통조림 콩과 통조림 옥수수를 또띠야에 올려서 부리또를 만들어 먹었다. 벽도 없고 지붕도 없었기 때문에 먼지가 쉴 새 없이 날아왔다. 기차에서 내렸을 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만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좋은 추억인 모양이다.
사람의 손이 거의 닿지 않은 자연 속에서 지낼 기회도 여러 번 있었다. 2009년에 찾아간 몬태나 주 북서부의 산악 지역이 특히 아름다웠다. 글레이셔 국립공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스트레이는 이곳의 경치가 미국 전체에서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부자라면 여름 별장을 두고 싶을 정도라고 한다. 지붕이 없는 화물열차로 이동한 덕분에 경치를 더욱 만끽할 수 있었다.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오는 곳이지만 스트레이가 머물렀던 여름에는 날씨가 좋고 따뜻했다. 스트레이는 거의 매일 호수에서 속옷만 입은 채 수영을 했다. 밤에는 숲에서 침낭에 들어가 잤다. 음식은 근처의 작지만 유명한 관광지 마을 화이트피쉬에서 구했다. 나뭇가지에 낚싯바늘을 매달아서 낚아 올린 물고기를 먹기도 했다. 올 때는 혼자였지만 곧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젊은 노숙인들과 합류해서 캠프를 꾸리게 됐다. 인원은 들쭉날쭉했는데, 가장 많았던 때에는 열 명을 넘었다.
유일한 단점은 모기가 많다는 것이었다. 모기에 물리지 않는 체질인 스트레이도 여기서는 모기에 물렸을 정도였다. 야생동물도 많았던 모양이다. 스트레이와 친구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화물열차를 물색하고 있었을 때, 한 열차에 15미터 정도 거리까지 다가가서 보니 커다란 곰이 먼저 기어올라서 화물로 실린 곡식을 먹고 있었다. 다들 곰의 주의를 끌지 않도록 조용히, 그러면서도 빠르게 걸어서 도망쳤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말이 잘 통해서 친구가 되는 것도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스트레이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는 항상 가장 가까운 대학도시를 찾았다.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한편으로 평화로운 분위기, 소탈하고 책과 음악을 즐길 줄 아는 대학생들, 높지 않은 물가가 모두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2010년 캔자스 주에 갔을 때에도 대학도시 로렌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다리 밑에서 잤다. 그러다 모르는 사람들이 스트레이에게 말을 걸었고 스트레이는 그 사람들의 집에서 지내게 됐다. 아마 스트레이 또래의 대학생들이었을 것이다. 스트레이는 그 집에서 지내며 자신과 마찬가지로 펑크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사귀었고, 새 친구들은 스트레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며 술을 사 줬다. 스트레이는 캔자스의 다른 지역은 모두 싫어했지만 로렌스만은 좋아했다. 그곳에서 만난 한 여대생이 로렌스를 ‘문화의 황무지 캔자스 주의 오아시스’라고 표현했는데, 스트레이는 그 말이 매우 인상적이라고 느껴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콜로라도 주 덴버는 특히 좋아하는 도시들 중 하나였기 때문에 여러 번 갔다. 한 번은 덴버에서 펑크 콘서트에 갔다가 젊은 여자 세 명을 만났다. 여자들은 모두 한 집에 사는 룸메이트들이었고, 마치 유기된 동물을 주워가듯 스트레이를 집에 데려갔다. 그리고 한동안 스트레이를 머물게 해 주면서 사달라는 것들을 전부 사 줬다. 스트레이는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저 싸구려 위스키를 원 없이 마셨고, 여자들과 함께 여러 식당과 바에 갔다. 덴버에는 좋은 식당과 바가 많다고 한다.
반대로 한 명의 집주인이 스트레이와 친구 두 명을 머물게 해 준 적도 있다. 멕시코 국경을 향해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LA를 지나던 때였다. 두 친구 중 한 명이 롱비치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였다. 남자는 마리화나 재배업자였고 덕분에 스트레이는 그 집에 머무는 동안 마리화나를 실컷 피웠다.
뉴올리언스도 덴버처럼 모든 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두 번 찾아갔다. 몇 년 전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입은 피해가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음에도 멋진 도시였다. 다만 2009년에 첫 번째로 갔을 때는 너무 더웠다. 2010년에 두 번째로 갔을 때는 덥지 않은 2월이었고 마침 관광 성수기였다.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날인 참회의 화요일mardi gras 축제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구슬을 던지고, 술에 취해 길에 드러눕고, 여자들이 아무에게나 젖가슴을 보여줬다.
뉴올리언스에는 바가 아주 많고 그 바들이 모두 북적거렸다. 외부 음료를 반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한 바에서 테이크아웃해서 마시던 술을 길에 내려놓고 다른 바로 들어갔다. 그래서 스트레이는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술을 마음껏 마실 수 있었다.
뉴올리언스에 있을 때는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카지노에도 가 봤다. 목적은 도박이 아니라 술이었다. 카지노에서는 게임을 하는 동안 음료를 무료로 마실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단돈 1센트만 넣으면 되는 슬롯머신이 있었기 때문에, 스트레이는 1센트 동전을 산더미같이 가져가서 슬롯머신에 넣으며 술을 마셨다. 돈을 따지는 못한 모양이지만 그래도 주량이 엄청난 스트레이에게는 큰 이득이었을 것이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