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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미 Jun 15. 2023

리비와 함께 지낸 날들

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31

미국에서는 노숙인이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일이 꽤 흔하다. 물론 무책임한 일이라는 비판이 존재한다. 그러나 노숙인과 반려동물이 함께 지내면 노숙인의 정신건강에 더 유익하고 노숙을 벗어날 동기부여가 될 뿐 아니라, 동물의 입장에서도 보호소에 기약 없이 갇혀 있는 것보다 사람과 애정을 주고받으며 지내는 것이 더 이롭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노숙인과 반려동물의 공존을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도 여럿 있다.


전 국민의 70%가 동물을 기르는 나라이기 때문에 반려동물이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라는 인식도 있다. 반려동물이라고 해도 동물은 실외에서 자유를 많이 누릴수록 좋고, 실내에 지나치게 오래 머물게 하는 것이 오히려 학대라는 인식도 있는 듯하다(그래서 자동차나 야생동물이 많은 지역을 제외하고는 고양이도 자유롭게 외출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과 크게 문화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스트레이도 노숙하는 동안 잠깐 강아지를 기른 적이 있다. 개를 좋아하지만 직접 개를 기른 적은 평생 동안 그때 한 번밖에 없었다.


수동 운전을 배워서 플로리다에 갈 준비를 하던 2009년 말, 스트레이는 강아지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수소문한 끝에 플로리다에서 강아지를 주겠다는 사람을 찾았다. 투견 사육장에서 구조한 순종 핏불이었다. 암컷이었고 아직 품에 쏙 들어올 만큼 작았다. 태어난 지 7주밖에 되지 않았다.


투견의 운명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온 강아지에게 스트레이는 리베라시온Liberació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스페인어로 해방이라는 뜻이었다. 긴 이름이었기 때문에 줄여서 리비Libby라고 불렀다.


미국에서 핏불은 사나운 견종으로 알려져 있고 투견으로 많이 이용된다. 그러나 스트레이는 어릴 때부터 개 중에서 핏불을 가장 좋아했다. 슬럼가에서 자랐기 때문에 핏불을 친숙하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슬럼가에서 키우는 개는 모두 핏불이라고 한다. 다만 스트레이가 핏불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납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스트레이는 핏불들이 귀엽고 착하다고 자주 말한다.


리비는 온순했고 사람을 잘 따랐다. 채 이틀이 지나기 전에 자신의 이름을 알아들었고 스트레이를 졸졸 따라다녔다. 스트레이가 시야에서 없어지면 낑낑거리면서 찾았다. 귀여운 고집도 부렸다. 목줄을 한 채로 같이 걸으려고 하면 움직이지 않고 버티다가, 스트레이가 목줄을 놓고 혼자 걸어가면 마치 자신을 두고 가지 말라는 듯 얼른 달려왔다. 페이스북을 보면 스트레이는 리비가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 몰랐던 듯하다.


한국인인 내게는 노숙인이 반려동물을 기른다는 이야기가 낯설었다. 그러나 노숙할 때 개를, 노숙을 그만두고 정착한 후 고양이를 길러 본 스트레이는 노숙인이 오히려 반려동물을 더 잘 기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직업이 있으면 동물을 혼자 집에 남겨두고 매일 출근해야 하지만 노숙인은 하루 종일 동물과 함께 지내면서 관심을 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트레이는 나중에 그 이유로 고양이를 동생에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관심을 좋아하는 고양이었는데, 스트레이가 같이 살던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로 고양이가 낮 시간 내내 혼자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또 스트레이가 본 노숙인들은 모두 반려동물을 잘 먹였다고 한다. 스트레이도 마찬가지로 자신은 굶어도 리비는 반드시 배불리 먹였다. 아코디언을 연주해서 돈을 벌던 때였고, 그 돈의 가장 중요한 용도 중 하나는 개 사료를 사는 것이 되었다. 


반려동물은 동물병원에도 데려가고 목욕도 시켜야 하는데 그 일들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나는 물었다. 스트레이는 미국에는 동물 복지 서비스가 있어서 반려동물이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목욕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바다나 호수, 또는 강에서 했다고 한다. 플로리다는 겨울에도 그렇게 할 수 있을 만큼 따뜻했다. 리비를 처음 바다에 데려갔을 때는 짖어대면서 파도와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지만, 스트레이가 안고 물에 들어가자마자 물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물가에서 목줄을 풀어주면 스트레이를 내버려두고 혼자서 물에 뛰어들 정도였다.


스트레이는 매일 밤 리비와 한 침낭 안에서 잤다. 리비는 스트레이의 발이나 배 부근에 자리를 잡았다. 짧은 시간 동안에도 리비는 무럭무럭 자라서 덩치가 커졌고 특히 머리가 아주 컸다. 다행히 침낭에 같이 들어가지 못할 만큼은 아니었다. 만약 그러지 못할 정도로 커졌다면 리비를 침낭에서 재우고 자신이 밖에서 잤을 것이라고 스트레이는 말했다.


리비와 함께 있을 때도 스트레이는 화물열차에 숨어 타고 이동했다.


- 개를 데리고 화물열차에 타는 게 불편하지는 않았어?

-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었어. 빠르게 달리는 열차에 올라탈 수 없었던 것만 빼면.


리비와는 한 달 정도밖에 같이 지내지 못했다. 스트레이가 빈집에 머물다가 무단침입으로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스트레이가 석방될 때까지 일행이 리비와 소지품을 맡아 줘야 했는데, 문제는 일행 중에서 스트레이와 친한 사람이 한 명뿐이었다는 것이다. 그 친구가 리비를 데리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석방되었을 때 그 친구를 다시 찾을 수 없었고, 몇 달 후 그 친구가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리비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방법은 전혀 없었다.


결국 노숙인과 반려동물의 공존을 지지하는 측의 주장보다는 우려하는 측의 주장에 더 힘을 실어 줄 사례가 되고 만 것이다. 리비는 아직 어리고 귀여웠으니 새로운 주인을 쉽게 찾았기를 바랄 뿐이다.


스트레이는 아직도 리비를 그리워한다. 지금은 사진이 딱 두 장 남아 있을 뿐이다.


2009년 12월, 리비를 데려온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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