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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미 Jun 22. 2023

노숙 중의 멕시코 여행

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32

스트레이가 살면서 미국을 벗어난 것은 두 번이었는데, 모두 노숙할 때였다. 화물열차를 타고 캐나다에 가 봤고, 히치하이킹과 도보로 멕시코에 가 봤다.


스트레이는 어떻게 멕시코에 갔고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기억하지만 몇 년도인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만으로 스무 살 때쯤이었다고 말할 때도 있고, 노숙 생활을 끝내기 직전이었다고 말할 때도 있다. 다행히 페이스북 덕분에 정확한 시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2010년 3월이다. 스물한 살이었으니 스무 살 때쯤이었다는 말은 맞다. 시카고에 임시로 정착했던 것이 2010년 가을이었으니 노숙 생활을 일시적으로 끝내기 몇 달 전이었던 것도 맞다.


친구 두 명과 함께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서 간 여행이었다. 이 친구들과 함께 멕시코를 향해 내려가다가 LA에서 마리화나 재배업자의 집에 같이 머무른 것이었다. 세 사람은 샌디에이고에서 히치하이킹을 해서 국경지대로 갔다. 그리고 걸어서 국경을 넘어 티후아나로 갔다. 코스타 도라다에도 갔고,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또 한 곳에도 갔다.


멕시코 국경지대는 매우 위험한 곳이다. 티후아나에도 어디를 가나 총을 들고 복면을 쓴 군인들이 있었다. 군인들은 길을 지나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아 검문했다. 운이 나쁘면 특별한 잘못 없이 감옥에 갇힐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뇌물을 줘야 풀려날 수 있는데, 자신은 돈이 없었기 때문에 기약 없이 감옥에서 썩었을 수도 있다고 스트레이는 말했다.


그러나 스트레이는 멕시코에서 불안을 느낀 적이 없다고 한다. 스트레이는 어떤 면에서는 평화로운 상황보다는 위기 상황에 더 강한 사람인 것 같다. 아니면 단순히 슬럼가에서 태어나 총소리를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위험에는 무감각한지도 모른다.


스트레이와 친구들은 티후아나에서 즐기기 위해 미국에서 돈을 모아 왔다. 100달러 정도밖에 되지 않는 돈이었지만 물가가 싼 멕시코에서는 충분했다. 스트레이는 맥주를 물처럼 마시고 처방받지 않은 처방약에 마음껏 취했다. 그 탓에 멕시코에서 보낸 시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기억나는 일은 많지 않아도 스트레이는 멕시코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던 모양이다. 스페인어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언어 때문에 특별히 불편한 일을 겪지는 않았다.


멕시코에서 스트레이는 타코와 부리또만 먹었다.


- 계속 그렇게만 먹어도 안 질렸어?

- 너도 김치 매일 먹잖아? 김치가 질린 적 있어?

- 아니. 하하.


두 친구 중 한 명과는 멕시코에서 헤어지게 됐다. 스트레이가 친구들과 함께 바에 있을 때 멕시코 갱 한 명이 접근했다. 그리고 코요테가 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코요테는 멕시코인이 불법으로 미국 국경을 넘도록 돕는 브로커다. 스트레이와 한 친구는 거절했지만 나머지 한 친구는 수락했다. 그 친구는 세 명이서 함께 멕시코에 더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돈을 벌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 후로 며칠 동안 그 친구는 소식이 없다가, 어느 날 옷을 잘 차려입고 스트레이와 다른 한 친구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둘을 어느 호텔방으로 데려갔다. 방에는 술, 담배, 약이 가득했다.


그렇게 한 턱 크게 낸 친구는 그날 후 다시 사라져 버렸다. 스트레이는 친구가 돈을 벌어오면 티후아나에 아파트를 구해 함께 지낼 생각까지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친구는 코요테 일 때문에 금세 멕시코에서 체포되고 말았고,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석방된 후 직접 연락이 닿기까지는 4년이 더 걸렸다. 그나마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미국 땅에서 체포되었으면 징역 1년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스트레이는 추측한다.


돈을 벌어오려던 친구가 붙잡혔으니 티후아나에 방을 얻을 수도 없었다. 스트레이와 다른 한 친구는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국경으로 향했다. 처음으로 문제가 생긴 것은 그 때였다. 미국에서 멕시코 국경을 넘는 일은 아주 쉬웠다. 아무도 스트레이 일행에게 여권을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 국경순찰대 앞을 통과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멕시코에서 미국 국경을 넘을 때는 완전히 달랐다. 정해진 출구들만이 열려 있었고, 출구는 모두 국경순찰대가 지키고 있었다.


스트레이는 여권이 없었다. 그래서 미국에 돌아오지 못할 위기에 놓였다. 미국에서 멕시코로 올 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부분이었다. 스트레이는 그 점에서 자신이 아주 어리석었다고 인정한다.


스트레이는 출생증명서나 사회보장 카드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신분증(ID)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한이 말소되었고, 운전면허증 기한만이 말소되지 않았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한 스트레이의 기억은 아주 정확하지는 않다. 어떤 때는 면허증이 아니라 신분증 기한이 말소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하고, 둘 다 말소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차피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신분증이든 면허증이든 여권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스트레이는 멕시코가 마음에 들었지만 영원히 머물 생각은 없었다. 스트레이는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국경 순찰요원과 말싸움을 하면서 지갑을 털어 보여줬다. 지갑에는 시카고와 샌프란시스코 공립도서관의 회원증, 열다섯 살 때쯤 직장에서 만든 출입증이 있었다. 그리고 스트레이의 영어는 누가 듣더라도 미국에서 자란 사람의 영어였다. 스트레이의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났다.


마침내 순찰요원은 스트레이를 보내주면서 다시는 이곳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다. 그때 미국에 돌아올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고 스트레이는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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