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는 서울의 카페들 - 14
<지금은 없는 서울의 카페들> 시리즈를 처음 계획할 때, 문을 닫은 카페들을 머릿속으로 하나하나 헤아려 보았다. 어느 하나 아쉽지 않은 카페가 없었다. 그래도 대부분 문을 닫은 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정리가 된 대상이었다. 사무치게 그립다기보다는 달콤쌉싸름한 추억이었다.
시리즈를 쓰기 시작하고 나서 홍대 앞 비스윗온(Be Sweet on)이 폐업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때는 충격과 상실감을 정통으로 느꼈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이별이 찾아온 것이다. 개인적인 이유와 팬데믹이 겹쳐서 카페를 예전만큼 잘 다니지 않게 되었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한 번이라도 더 다녀올걸, 아쉬움과 심지어 죄책감마저 느꼈다.
비스윗온은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디저트 카페였다. 마치 비싼 요리처럼, 정성스럽게 만들어서 예쁘게 담은 디저트는 고급스럽게 맛있었다. 디저트계의 파인다이닝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음료의 종류도 다양했다. 내가 좋아하는 홍차도 브랜드별로 여러 가지가 있었고, 제대로 우린 후 찻잎을 걸러서 티팟에 서빙했다. 접시, 찻잔, 티팟은 색색의 디저트가 돋보이도록 흰색 위주이면서도 서로 조금씩 달랐는데, 무려 웨지우드와 레녹스가 끼어 있었다. 밝은 색 원목으로 꾸민 실내는 아늑하면서도 깔끔했다. 널찍한 테라스가 가게의 한쪽 면 전체를 이루어서 탁 트인 분위기였다. 벽을 꽉 채운 책장에는 다양한 책이 꽂혀 있어서 책을 읽을 겸 가기도 했다.
세련되면서도 진중한 사장님을 보고 한 친구가 마치 일본인 같은 분위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듣고 보니 정말로 일본 영화에 나오는 카페나 음식점의 프로페셔널한 사장님 캐릭터 같기도 했다. 가게 앞에 내거는 디저트 사진에도 영어 또는 프랑스어와 함께 일본어가 작게 쓰여 있었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 중에도 일본어 책이 여러 권 있었다. 지금 검색해 보니 역시, 사장님이 동경제과학교 출신이라고 한다. 하지만 비스윗온 자체는 특별히 일본풍의 가게는 아니었다. 디저트도 말차 빙수를 제외하고는 프랑스 느낌이 강했는데, 그래서 더 희소성이 있었다.
대표 메뉴는 타르트 타탄과 말차 빙수였다. 패스트리에 커스터드 크림, 달게 조린 사과, 아이스크림을 더한 타르트 타탄은 주문을 받은 후 구워내서 따뜻하고 바삭했다. 녹차의 풍미가 진하면서도 지나치게 달지 않아서 깔끔한 말차 빙수는 여름마다 손님을 엄청나게 끌어 모았다. 작은 녹차 롤케이크가 따라 나왔는데 왜 따로 팔지 않는지 궁금할 만큼 그 자체로 훌륭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디저트는 오렌지 무스를 밀전병처럼 얇은 팬케이크로 감싸고 상큼한 과일 시럽과 작은 마카롱을 곁들인 크레이프 수제트였다. 캐러멜 크림에 작은 슈 여러 개를 쌓은 생토노레, 겨울과 봄에 계절 한정으로 팔던 딸기 밀푀유도 여러 번 먹었다.
완벽한 디저트 카페라는 생각은 나 혼자만 했던 것이 아닌 모양이다. 주말 오후에 가면 거의 항상 사람이 꽉 차 있어서 대기 명단에 전화번호를 남겨 놓고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대기 명단마저 이미 너무 길어서 포기하고 나와야 했다. 그래도 용케 그곳에서 데이트도 많이 하고 친구도 많이 만났다. 한산한 평일에 혼자 가서 책꽂이의 책을 꺼내 읽으며 앉아 있었던 적은 더 많았다.
어느 날은 비스윗온에 가서 메뉴판을 펼쳤더니 가로수길에 2호점을 냈다는 알림이 끼워져 있었다. 이름은 프랑스어로 사과라는 뜻의 라 뽐므(La Pomme). 찻길 바로 뒤 카페가 많은 골목에 있었고 비스윗온의 이름도 창틀에 작게 쓰여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눈에 잘 띄는 편이었다. 내부는 직접 들어가서 볼 기회는 없었고 사진만 봤는데, 인테리어는 비스윗온과 좀 달랐지만 메뉴는 거의 똑같았다. 비스윗온이 장사가 그렇게 잘 되니 2호점을 내는 것도, 그 위치가 가로수길인 것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가로수길의 괜찮은 카페라면 대부분 그렇겠지만 주말에는 항상 만석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라 뽐므는 비스윗온보다도 이른 2018년에 폐업했다.
비스윗온은 그보다 2년 후인 2020년 여름쯤 없어졌다. 팬데믹 때문에 경영이 어려워져서 문을 닫은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소 달라진 모습이라도 좋으니 언제 어디선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대로 세월 속으로 사라지기에는 너무 아까운 가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