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는 서울의 카페들 - 13
홍대와 신촌 사이에 있던 에따야는 특이하게도 러시아풍의 카페였다. ‘에따야’라는 이름도 러시아어로 ‘나예요’ 라는 뜻이었다. 사장님 부부가 러시아와 그 주변 나라들에서 살다 왔다고 한다. 아담하고 깔끔한 가게 내부도, 자세히 보면 마트료시카를 포함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소품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메뉴도 인테리어와 비슷했다. 얼핏 보기에는 간결하고 무난했지만, 자세히 보면 러시아풍으로 보드카 라떼와 미도빅이 끼어 있었다. 꿀 케이크인 미도빅은 내가 에따야의 단골이 된 이유였다. 사장님이 러시아에서 배운 레시피를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덜 달게 수정했다고 한다. 러시아는 홍차를 많이 소비하는 나라라고 들었는데 에따야에도 역시 홍차가 있었다. 담백하고 쌉싸름해서 미도빅과 잘 어울리는 아쌈과 잉글리쉬 브렉퍼스트였다.
2013년 초쯤 문을 열었던 에따야는 아쉽게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홍대와 신촌 사이의 애매한 지점,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위치에 있었던 탓이 클 것이다. 간판에 러시아어와 한글이 함께 쓰여 있었는데 러시아어가 더 커서 가게를 찾기 힘들었다는 손님들도 있었다.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음식점에서 미도빅을 후식으로 파는 것은 본 적이 있지만, 미도빅을 파는 카페는 에따야 이후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가끔 생각이 난다.
2011년 문을 연 중국차 전문점 인야는 그보다 유동인구가 많은 연대 앞에 있었다. 신촌 자체는 카페가 많은 곳이지만, 인야는 복작거리는 호프집 골목 틈새의 2층에 있었기 때문에 신선하게 느껴졌다. 내가 인야를 발견한 것은 개업 후 몇 년이 지났을 때였다. 블로그와 저서를 통한 입소문 마케팅이 성공해서 가게가 자리를 잘 잡은 상태였다. 금요일 오후쯤에 가면 빈자리가 없어서 발걸음을 돌려야 할 정도였다.
인야YinYa라는 이름은 사장님의 이름 ‘은아’를 중국식으로 읽은 발음이기도 했고, ‘우아함을 마시다飮雅’라는 중국어이기도 했다. 사장님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영향으로 다양한 차를 섭렵하면서 자연스럽게 찻집을 여는 꿈을 가졌다고 한다. 그 꿈을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외국어대학교에 진학해 중국어를 공부했고, 중국에서 국가 공인 다예사와 차 감별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인야를 열었다.
사장님의 색다른 이력처럼 인야도 특색 있는 장소였다. 일단 자사호나 개완에 직접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중국차를 마실 수 있다는 점에서부터 흔치 않은 찻집이었다. 차의 종류에 따라서 사용하는 다구도 달랐고, 우리는 방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항상 들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가게의 분위기는 전통 찻집보다는 대학가의 깔끔하고 편안한 카페에 훨씬 가까웠다. 차도 꼭 다구를 갖춰서 마셔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고 간편하게 잔으로 주문할 수도 있었다. 차를 제대로 즐기고 싶은 손님과 간단하게 즐기고 싶은 손님을 모두 만족시킨 것이, 아마 중국차 전문점이라는 틈새시장에서 성공한 비결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인야에서 파는 티푸드는 주로 현대적이면서도 중국차에 어울리는 광둥식 디저트였다. 산뜻한 망고 팬케이크인 빤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단 것을 좋아하는 나도 인야에서는 디저트를 주문하지 않고 차의 풍미에 집중할 때가 더 많았다. 특히 아무런 첨가물이 없는데도 꽃처럼 향기롭고 과일처럼 새콤달콤한 봉황단총을 제일 좋아했다. 봉황단총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하는데, 중국차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그 중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모른다.
이후 신촌에서 홍대로 자리를 옮기고 을지로에 분점도 냈던 인야는, 2019년 가을 사장님의 개인 사정으로 문을 닫았다.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인야 블로그의 맨 마지막 글은 폐업 인사다. 조만간 차 분야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오겠다는 말로 끝맺고 있어서 어떤 새로운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꼭 찻집이 아니더라도, 중국차를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열려 있던 인야 같은 무언가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