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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수많은 카페가 사라졌다

지금은 없는 서울의 카페들 - 15

by 이정미

단골이라고 할 만큼 자주 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는 카페가 여러 곳 있다.


파티세리 비. 경희궁의 아침 단지 내에 있었다. 느긋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카페보다는 이름 그대로 파티세리(케이크 가게) 겸 빵집에 테이블 몇 개를 놓은 것에 더 가까웠다. 그래도 예쁘고 맛있는 케이크를 제대로 우린 홍차와 함께 먹을 수 있어서 좋아했던 곳이다. 홍차는 프랑스풍의 디저트에 어울리는 마리아쥬 프레르였고, 아담한 공간에 어울리는 귀여운 노리다케의 찻잔과 티팟에 서빙되었다. 나가는 길에 다음 날 아침 먹을 크루아상을 살 수 있던 것도 파티세리 비의 장점이었다. 아마 2018년이나 2019년쯤 없어진 듯하다.

번외편1_5.JPG 제대로 우려 보기 좋게 서빙하던 아이스티와 핫티. 파티세리답게 케이크도 다양하고 맛있었다.


패이야드. 공식적인 표기는 ‘패이야드’였는데 ‘페이야드’라고 쓰는 사람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뉴욕의 유명한 디저트 가게이고 조선호텔을 통해서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강남점에 입점했다고 한다. 쇼핑도 잘 하지 않고 돈도 없는 내가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들락거린 유일한 이유가 바로 패이야드였다. 호텔을 통해 백화점에 입점한 가게인 만큼 가격이 비쌌지만 케이크가 가격만큼 맛있었다. 다만 홍차를 주문하면 머그컵에 티백을 담가 주는 것은 좀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매장에 앉을 때보다는 케이크만 테이크아웃할 때가 더 많았다. 그렇게 비쌌는데도 비용 대비 수익이 적다는 이유로 2016년에 없어진 모양이다.

번외편1_3.JPG 화이트와인에 통째로 조린 사과와 에끌레어. 가격만큼 맛있었다.


사자. 아프리카를 주제로 삼은 독특한 카페 겸 바였다. 2008년에서 2017년까지 영업하다가 아깝게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고 한다. 홍대 앞에서 현대백화점 쪽으로 넘어가며 카페들이 점점 드문드문해지다가 사라지는 지점에 호젓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위치로 이전하기 전, 공간이 더 넓었을 때는 가게 안에 고양이 두 마리가 있었다는데 그때 가 보지 못해서 아쉽다. 아프리카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사자 인형과 얼룩말 인형으로 장식한 이곳에서 아프리카풍 양고기 스튜를 먹고 아마룰라 칵테일을 마시는 것은 충분히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번외편1_8.JPG 쿠스쿠스를 곁들인 아프리카풍 양고기 스튜와 아마룰라 칵테일.


오스피어. 친숙한 재료를 새로운 형태와 식감으로 변화시키는 분자요리 전문 카페였다. 카페들의 격전지 홍대 앞이었기에 가능했던 이색적인 시도인지 모른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던 상품은 사실 분자요리보다는 한천으로 만든 물방울 인절미였던 것 같다. 일본의 미즈신겐모찌가 부산에 물방울떡이라는 이름으로 상륙하고, 그것이 다시 오스피어를 통해서 서울에 물방울 인절미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 자체로는 별 맛이 없기 때문에 콩가루와 시럽을 곁들여 먹지만, 투명해서 신기한 생김새와 탱글탱글한 식감이 특색이다. 오스피어는 오래 가지 못했다. 서울에서 미즈신겐모찌를 파는 카페가 한 군데 더 있었던 모양인데 이제 그곳도 없어졌다.

번외편1_9.JPG 투명하고 탱글탱글한 물방울 인절미.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카페들도 있다. 홍대의 어느 건물 반지하에 있던 카페. 퐁당쇼콜라 속의 진득한 초콜릿에 과일과 마시멜로를 퐁듀처럼 찍어 먹는 디저트를 팔았다. 그 가게에서 붙인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퐁듀쇼콜라나 퐁당퐁듀라고 부르고 싶은 귀여운 조합이었다. 퐁당쇼콜라의 ‘퐁당’은 사실 프랑스어의 ‘fondant’이지만 들을 때마다 무언가를 퐁당 빠뜨리는 의성어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이 디저트를 개발한 사람도 나처럼 생각했는지 모른다.

번외편1_1.JPG 퐁당쇼콜라에 과일과 마시멜로를 퐁당.


마찬가지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광화문의 작은 2층 건물에 있던 카페. 대학생 때 교보문고에서 책을 구경하거나 씨네큐브에서 영화를 보고 나서 자주 갔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기 때문에 사진은 찍어 놓지 못했지만 편안한 다락방 같아서 정이 가는 공간이었다. 가격대도 학생인 내게도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 시절 나는 커피를 못 마셨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항상 핫초콜릿만 시켰는데 꽤 맛있었다. 어느 늦은 저녁 이 카페의 2층에서 핫초콜릿에 과감하게 초콜릿 케이크까지 곁들여 놓고 창문 너머의 달을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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