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금도 있는 카페들의 예전 모습

지금은 없는 서울의 카페들 - 번외편 1

by 이정미

지금도 건재해서 기쁘지만 예전 모습이 유달리 기억에 남는 카페들이 있다.


2003년부터 신촌을 지켜 온 클로리스. 동화책에 나오는 예쁘고 아늑한 집 같은 카페다. 내가 대학교에 다닐 때 본점과 많이 비슷한 2호점이 생겼고 두 곳 모두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내가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클로리스 티 캐디’라는 3호점이 문을 열었다. 본점이나 2호점보다 더 탁 트인 공간이었고 인테리어도 화려해서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내 관심을 사로잡은 부분은, 본점과 2호점에도 홍차가 여러 종류 있었지만 3호점은 그보다 훨씬 본격적인 홍차 전문점이라는 것이었다.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는 것까지 포함해서 수많은 브랜드의 홍차를 무려 300종류가 넘게 갖춰 놓았을 뿐 아니라, 벽에 빼곡하게 진열된 홍차 캔을 직접 열어서 향을 맡아본 후 주문할 수 있었다. 찻잔도 로얄알버트나 노리다케 같은 유명 브랜드의 예쁜 제품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티팟을 두 개 준다는 것이었다. 하나는 차를 우리는 용도, 다른 하나는 다 우러난 차를 걸러서 담는 용도. 찻잎이 티팟 안에서 계속 우러나면 쓰고 떫어져서 마시기 힘들고, 주방에서 찻잎을 걸러서 내오면 재탕을 할 수 없어서 불만을 가지는 손님들이 있는데(원래 홍차는 재탕하는 차가 아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으므로) 두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방법이었다.


그보다 조금 후에는 홍대점도 생겼다. 홍대점은 분위기가 또 달라서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느낌이 조금 났다. 메뉴도 꽤 달랐다. 따뜻한 차 메뉴는 조금 간소화한 대신에 다양한 재료로 만든 화려한 아이스 음료를 전면에 내세웠다. 홍대점 메뉴에만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브런치였다. ‘브런치 카페’라고 홍보하는 가게들도 정작 브런치를 주문해 보면 실망스러운 경우가 적지 않은데, 클로리스 홍대점은 브런치가 중심인 가게가 아니었는데도 꽤 제대로 된 브런치를 내놓았다. 내가 특히 좋아했던 것은 수란을 딱 알맞게 익힌 에그 베네딕트였다. 아쉽게도 브런치 메뉴는 오래 가지 못했고, 클로리스가 강남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논현점으로 옮겨갔다가 그곳에서도 사라진 듯하다. 음료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었을까.


3호점은 어느 날 갑자기 파스타 가게가 되었다. 가게가 넘어간 것은 아니고, 카페 브랜드였던 클로리스가 새로운 시도를 위해 3호점을 음식점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없어진 것으로 기억한다. 홍대점은 몇 년 동안 성업했지만 지금은 문을 닫았다. 지금 클로리스는 서울에 매장이 여섯 개 있을 뿐 아니라 청주점과 제주점도 있고, 직접 블렌딩한 차도 판매하는 꽤 큰 브랜드가 되었다. 신촌 명물에서 그치지 않고 이렇게 크게 성장했다는 것이 신기하고, 가정집을 개조한 신촌 본점이 옛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남아 있어서 좋다. 그래도 가끔 3호점의 다양한 홍차와 홍대점의 에그 베네딕트가 생각난다.


3호점 클로리스 티 캐디. 노리다케 찻잔에 담긴 홍차와 파운드 케이크.


번외편1_02.JPG 클로리스 홍대점에서 잠시 팔았던 에그 베네딕트. 웬만한 '브런치 카페'보다 맛있었다.


조각케이크로 유명한 신사동 가로수길의 듀자미. 케이크가 맛있는 것은 기본이고 다양한데다 독창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웨지우드와 빌레로이 앤 보흐 등 유명한 브랜드의 예쁜 접시, 한 테이블 건너 하나씩 놓인 생화 꽃병에도 반해서 한때 자주 갔다. 2014년에는 반갑게도 내가 사는 곳에서 더 가까운 삼청동에 2호점이 문을 열었다. 아쉽게도 접시는 흰색 바탕에 듀자미 로고를 인쇄한 제품으로 통일되었지만 케이크와 생화는 본점과 똑같았다.


그 후 본점은 2층으로 확장했다. 장사가 잘 돼서 확장했다는 사실 자체는 기뻤지만 가게의 모습이 그전과 여러모로 달라졌다. 비용 절감과 도난 방지를 위해서인지 접시를 삼청점과 마찬가지로 흰색 바탕에 듀자미 로고를 새긴 제품으로 통일했다. 음료수를 매장에서 마시는 경우에도 테이크아웃과 마찬가지로 종이컵이나 플라스틱 컵에 담아줬다. 2층이 되어 공간 자체는 많이 넓어졌지만 테이블 간격이 좁고 소리가 울려서 예전처럼 차분하게 쉬다 갈 만한 곳은 되지 못했다. 생화도 물론 사라졌다. 본점이 달라지기 전까지는 가까운 삼청점을 놔두고 일부러 본점을 찾아갈 정도였는데, 본점이 달라진 후로는 굳이 그럴 이유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2019년에 삼청점이 없어지고 본점만 남았기 때문에 그것도 이제 예전 이야기다. 케이크가 변함없이 맛있으니 그 외의 부분은 크게 상관없고, 더 많은 손님을 더 효율적으로 받는 방향으로 가게를 바꾸는 것도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접시가 예쁜 가게로 한 손에 꼽을 만했던 시절이 가끔 그리울 뿐이다.


번외편1_07.JPG 우연히 접시와 생화가 모두 해바라기였던 날. 그리고 대표 상품인 딸기 생크림 케이크.


번외편1_08.JPG 예쁜 사진이 너무 많아서 고르기 힘들었기 때문에 한 장 더.


눈이 오던 날 삼청점. 눈처럼 폭신폭신했던 얼그레이 쉬폰 케이크.


재일교포가 세운 일본 브랜드 몽슈슈. 촉촉한 롤케이크 시트 속에 담백한 생크림을 꽉 채운 도지마롤로 유명하다. 2013년 백화점을 통해 한국에서 도지마롤을 팔기 시작했고 2014년에는 가로수길에 살롱 드 몽슈슈라는 카페를 열었다. 브랜드 홍보를 위해 신경을 많이 썼는지 시선을 확 끄는 매장이었다. 유럽 문화를 일본식으로 해석할 때 특유의, 로코코 양식 같기도 하고 디즈니 만화영화 같기도 한 가벼운 화려함이 있었는데 그게 또 이국적이어서 좋았다. 접시와 찻잔은 금테를 둘러서 반짝거렸다. 도지마롤 외에도 여러 디저트가 있었고 다들 먹기가 아까울 만큼 예뻤다. 홀린 듯 쳐다보다가 입에 넣으면 일본식 디저트 특유의 폭신폭신한 감촉과 부드러운 단맛을 입안에 남기고 사르르 녹았다. 일본에서 온 가게답게 홍차도 잘 갖춰져 있어서 나를 더욱 유혹했다.


개점 후 한동안은 평일 낮에도 자리가 없어서 앉지 못할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 초기의 폭발적인 인기가 사그라진 후에도 꾸준히 손님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가로수길에서 1층에 매장을 두고 여러 명의 직원을 유지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전략을 바꾼 것일까. 몇 년 후 다른 건물의 3층으로 자리를 옮겼고 전체적으로 더 캐주얼해졌다. 직원 수가 줄어들어서 손님이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고 음식을 직접 들고 오게 되었다. 디저트도 더 이상 알록달록하게 장식해 주지 않았다. 원목 테이블과 푹신한 소파도 사라졌다. 그러다가 2020년쯤 문을 닫았다.


직영점이었던 살롱 드 몽슈슈는 그렇게 없어졌지만, 대신 그보다 더 간소한 가맹점 형태의 카페 드 몽슈슈가 수도권에 여러 곳 생겼다. 몽슈슈라는 브랜드 자체도 많이 성장해서 전국 스무 곳이 넘는 백화점의 식품관에 입점했고, 도지마롤은 심지어 새벽배송으로 주문할 수도 있게 되었다. 현실을 잠시 떠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호화롭고 예뻤던 살롱 드 몽슈슈가 이제 없다는 사실이 아쉽다. 그래도 당시 강남에만 가야 살 수 있던 도지마롤이 그때보다 훨씬 흔해진 것은 좋다. 대중화에 초점을 두고 브랜드의 규모를 키운 덕분일 것이다.


번외편1_10.jpg 미니 도지마롤과 푸딩이 올라간 과일 파르페. 예뻐서 먹기가 아까웠다.


반짝반짝한 3단 접시에 담긴 화려한 애프터눈 티세트.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