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는 서울의 카페들 - 11
2008년에 문을 연 몹시는 유명한 것에 비해서 조금 찾기 어려운 가게였다. 간판에 몹시라는 이름 대신 CHOCOLATE CAKE라고만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가게가 한 번 재정비되었을 때 간판도 비로소 MÖBSSIE로 바뀌었다. 푸른색 목재에 금색 글씨로 눈에 띄면서도 세련되게 꾸민 외관은 항상 그대로였다. 홍대의 다른 많은 가게들처럼 좁은 편이었지만, 그것마저도 마치 유럽 어딘가에 있는 오래된 가게 같은 느낌을 주었다.
CHOCOLATE CAKE는 사실 몹시에 잘 어울리는 간판이기는 했다. 초콜릿 케이크와 초콜릿 음료에 주력하는 초콜릿 전문 카페였기 때문이다. 메뉴에 적힌 이름들도 간판처럼 직설적이었다. 설탕에 절인 과일을 넣은 초콜릿 케이크는 말 그대로 ‘절인 과일 초콜릿 케이크’, 아포가또를 응용해서 커피 대신 핫 초콜릿을 끼얹은 아이스크림도 말 그대로 ‘아이스크림과 뜨거운 초콜릿’이었다. 먹어 보면 맛도 이름처럼 솔직담백하다고 할까, 진하면서도 지나치게 달지 않아서 부담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대표 상품은 ‘바로 구운 초콜릿 케이크’였다. 도톰한 컵에 담아 구워냈고, 숟가락으로 찌르면 뜨겁고 진득한 초콜릿이 흘러나왔다. 다른 가게들에서는 흔히 퐁당 쇼콜라라는 이름으로 파는 케이크였다. (이제야 검색해 보니 퐁당 쇼콜라는 프랑스어로 원래 ‘퐁당 오 쇼콜라fondant au chocolat’ 내지는 ‘쇼콜라 퐁당chocolat fondant’이라고 하는 초콜릿 케이크이고, 꼭 뜨거운 초콜릿이 흘러나와야만 할 필요는 없는 모양이다) 거의 모든 테이블에서 ‘바로 구운 초콜릿 케이크’를 하나씩은 꼭 주문했다.
초콜릿을 제외한 음료 메뉴는 초콜릿 케이크를 보조한다는 느낌이었다. 커피와 과일 음료가 조금 있는 정도였다. 흔한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도 있었지만 커피 메뉴의 맨 위에 있는 것은 ‘몹시 커피’였다. 프렌치 프레스로 조금 연하게 내린 커피였는데, 사발처럼 커다란 잔에 나오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초콜릿 케이크를 먹을 때 목이 메이지 않게 커피를 마음껏 마시라는 배려였나 보다. 많이 달지 않은 몹시의 초콜릿 케이크에 어울리는 부드럽고 향긋한 커피였다.
몹시는 아주 인기가 많았다. 주말에는 항상 만석이었고, 사람들이 가게 밖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당연한 수순처럼 몹시는 2호점을 열었다. 본점보다는 조금 외진 곳에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홍대 앞이었다.
특이한 점은 2호점이 본점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우선 메뉴가 거의 겹치지 않았다. 2호점에서 파는 것은 초콜릿 케이크가 아니라 치즈 케이크였다. 그리고 홍차와 와인 등 본점에는 없는 음료가 다양하게 갖춰져 있었다. 이런 차이를 시각적으로도 확실하게 표현하려는 듯, 간판을 본점의 푸른색과 대비되는 진한 붉은색으로 칠했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신선한 시도였다.
본점과의 재미있는 공통점들도 있었다. 간판에는 가게 이름 대신 CHEESE CAKE라고 금색으로 쓰여 있었다. 수많은 치즈케이크 중에서도 대표 상품은 프랑스제 스타우브 그릇에 담긴 ‘바로 구운 치즈 케이크’였다. 본점의 ‘바로 구운 초콜릿 케이크’와 마찬가지로 많이 달지 않았다. 수플레 스타일로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워서 내가 좋아하는 홍차와도 잘 어울렸다. 와인과 함께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와인도 괜찮은 조합이었을 것 같다.
2호점에도 손님이 꾸준히 있었지만 본점만큼 줄을 설 정도는 아니었다. 폭신폭신한 치즈케이크는 진득하고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케이크만큼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나 둘 중 먼저 없어진 것은 의외로 본점이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본점은 2017년, 2호점은 2019년쯤 문을 닫은 듯하다. 적어도 본점은 손님이 없어서 문을 닫았을 리는 없기 때문에 이유가 조금 궁금하다. 서울에서 10년 넘게 번창하는 소수의 카페들 중 하나가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완전히 다른 개성을 가졌던 본점과 2호점이 오랫동안 함께 홍대 앞을 지켰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