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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저빔 Jun 21. 2023

마음의 시계

마음이 흘러가는 속도는 모두 달라요

  새 학년이 되고 한 달이 지났을 때도 시윤이는 제게 여전히 한마디도 걸지 않고 있었습니다. 제가 먼저 질문을 하면 ‘네’, ‘아니오’로 대답하기는 했어요. 어떨 때는 그보다 조금 더 길게 대답할 때도 있고요.


  하지만 그게 끝이었어요. 더 이상의 긴 대회가 진행되기는 힘들었습니다. 언어능력이 좀 부족한가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국어 성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쉬는 시간에 한두 명의 친구들과 간간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서 큰 걱정은 하지 않았어요. 그래, 원래 말이 많이 없는 아이들도 있으니까. 괜찮아지겠지.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지만, 한편으로 벽을 허물고 얼른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그런 시윤이를 퇴근길에 학교 근처에서 우연히 만났어요. 큰 도로에서 보이는 골목길 사이로 시윤이가 자주 입던 회색 점퍼에 검은색 가방이 보였어요. 가방에 매달린 노란색 이름표도 분명히 시윤이의 것이었어요. 반가운 마음에 급하게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린 뒤, 50m 정도의 거리에 있는 시윤이를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시윤아!”


  다행히 제 목소리를 들은 시윤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렸어요. 그리고 이내 차에서 자신을 부르는 나를 발견했지요. 제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시나리오대로라면, 시윤이가 ‘네, 선생님!’ 하며 이쪽으로 반갑게 달려오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대답 소리는커녕 시윤이는 그 자리에 얼음이 되어 서 있었어요. 누군가 이 상황을 목격했다면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았을 게 틀림없을 거예요. 저는 시윤이가 손이라도 흔들어주면 반갑게 인사하고는 ‘내일 보자’ 하고 떠날 심산이었는데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제가 기다리고 있다는 표시로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하니 그제야 시윤이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어요.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인 듯했어요. 골목길 적당한 곳에 주차하고 시윤이와 시간을 보낼 참이었습니다. 토끼 눈을 하고 저를 쳐다보는 도윤이는 어딘지 불안해 보였어요. 제가 꼭 혼내려고 부르기라도 한 것처럼요.


  “시윤아, 너 어디 가는 길이야?”

  “집…이요.”

  “이제 학원 다 끝난 거야?”

  “네…”

  “그럼 이제 더 가야 하는 곳은 없어?”

  “네…”

  “잘됐다, 시윤이 혹시 떡볶이 좋아해?”


  이 질문에서는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어요. 떡볶이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가 그렇게 시간을 들여 고민할 만큼 어려운 질문이었던가요. 고심하던 시윤이는 모기만 한 소리로 대답했어요.

  “네…”


  휴, 다행이었습니다. 시윤이가 아니라고 대답할까 봐 가슴이 조금은 조마조마했거든요.

  “좋아, 그럼 됐다. 선생님이랑 떡볶이 먹으러 가자.” 


  엄마에게 전화해서 허락을 구해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지요. 네가 집으로 돌아와야 할 시간을 넘겨버리면 걱정하실 수도 있으니 꼭 말씀드려야 한다고 알려주면서 ‘출필고 반필면’도 교육했습니다. 이럴 때는 학교 밖에서도 어쩔 수 없는 선생님인 것이 가끔 우습기도 합니다.


  “선생님, 그… 잠깐… 저기 가서 전화 좀 하고 올게요.”

  무슨 비밀스러운 이야기라도 하려는지, 아니면 뭐가 그렇게도 부끄러운지 엄마한테 떡볶이 먹으러 가도 되냐는 전화도 멀찍이 떨어져서 해야 하는 시윤이었어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떡볶이라고 믿어왔고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냥 떡볶이도 아니고 학교 앞 떡볶이면 말 다했지요. 저도 그 추억을 먹고 어른으로 자랐으니까요. 이런 생각을 하며 기다리는데 다행히 시윤이 어머니께서 허락하신 거 같았어요. 휴, 두 번째로 다행입니다.


  일은 제 계획대로 진행되었어요. 교문 바로 앞에 떡볶이집이 있어서 우리는 사이좋게 떡볶이 한 컵씩을 나눠 받았어요. 내친김에 슬러시까지 샀습니다. 떡볶이를 먹으면서도 저는 계속 질문하고 시윤이는 대답하는 대화가 이어졌어요. 물론 대부분의 대답은 단답형이었습니다. 학교생활은 어떤지, 친구들이랑 노는 건 괜찮은지, 혹시 수업 시간에 따라오기 힘들지는 않은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떡볶이를 맛있게 먹고(적어도 제 생각에는요) 헤어졌습니다.


  다음 날,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부터 도윤이의 세 줄 쓰기 공책을 펼쳤어요. 원래는 오후에 여유 있게 해야 하는 검사를 제가 아침부터 확인한다는 걸 도윤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신경 쓰면서요. 도윤이가 혹시나 어제의 일을 썼을지, 만약 그랬다면 뭐라고 썼을지 궁금했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이 떡볶이를 사주셨다. 맛있었다. 선생님은 참 좋으신 분인 것 같다.’

  적어도 제가 생각한 내용은 이런 것이었어요. 떡볶이에 대해 안 썼으면 모를까, 썼다면 당연히 좋은 내용일 거라고요. 하지만 시윤이의 공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이 떡볶이를 사주셨다. 좀 부담스러웠다.”

  아마 제가 말을 하고 있었다면 당황해서 말문이 막히지 않았을까요. 예상치 못했던 글 내용에 솔직히 충격을 좀 받았습니다. 허탈한 웃음까지 나더군요. 퇴근 시간까지 늦춰가며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려 노력했는데. 시윤이가 저를 어렵게 생각하는 거 같아 더 친해지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에요.


  약간의 불편한 상황에 대한 아이들의 표현은 보통 ‘싫었다, 불편했다, 짜증이 났다.’ 정도로 통일되기 때문에 4학년 아이가 부담스럽다는 표현을 썼다는 것에 일단은 놀랐습니다. 아이들이 하교한 오후, 마음을 가다듬고 글을 곱씹어보았어요.


  처음에는 서운하게만 들렸던 시윤이의 표현이, 제 호의를 완곡하게 거절하는 어른의 말처럼 느껴지더군요. 잘 생각해보면 제가 속상해하고 황당해할 일만은 아니었더라고요. 시윤이는 자기만의 입장이 있는데 제가 헤아리지 못했던 셈이니까요. 오히려 제가 눈치채지 못했던 부분을 알려준 시윤이에게 고마워해야 할 판이었지요.


  시윤이의 글은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어요. 선생님이 조금만 더 천천히 다가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요. 그걸 글로 표현하지 않았다면 저는 계속 시윤이의 마음도 모르고 혼자 만족해했겠지요. 난 역시 참 따뜻한 선생님이야, 하면서요. 내 기준에서 베푸는 호의를 상대는 무조건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오만함도 의식하지 못한 채로 말입니다.


  시윤이는 그런 제게 교훈을 던져주고 있었어요. 아이들의 마음을 제멋대로 생각해 버리는 일을 반복하는 저 자신을 탓했습니다. 오늘 일만 해도 시윤이한테 섭섭할 게 아니라 오히려 미안해야 할 일이었으니까요.


  시윤이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아이였습니다. 상대와 자신과의 거리를 먼저 가늠한 뒤, 그 사람에 대해 충분히 탐색할 시간을 가지고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면 그제야 마음의 문을 서서히 여는 것이지요. 그런 과정을 위해 시윤이에게는 최소한 몇 달이 필요했어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될 일인데 그걸 참지 못해, 성급하게 굴었던 실수였습니다. 저는 시윤이에게 ‘선생님이 인내심이 부족해서 기다리기 힘드니 네가 마음의 문을 억지로라도 빨리 열어야 해.’라는 메시지를 준 셈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마음속에 저마다의 시계를 가지고 있어요. 그 시계가 흘러가는 속도는 모두 달라서 어떤 아이는 만난 지 단 며칠 만에 ‘선생님, 사랑해요.’라는 말이 거리낌 없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또 몇 달 동안 선생님과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걸 두고 어떤 아이는 성격이 좋고, 또 다른 아이는 그렇지 못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거예요.


  사실은 저도 옆 반 하율이가 예상치 못한 시점에 저를 격하게 반겨주었을 때, 시윤이가 표현한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적이 있어요.

  “선생님, 너무 예뻐요! 사랑해요! 우리 반에 자주 놀러 오세요.”


  물론 생글생글 웃으며 애교 넘치는 얼굴로 그 얘기를 했을 때 기분이 나빴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에요. 오히려 기쁘고 고마웠어요. 애가 둘이나 있는 아줌마가 어디 가서 ‘너무 예쁘다.’라는 칭찬을 그렇게 쉽게 들을 수 있을까요(그런데 학교에서는 그런 말을 정말 자주 들을 수 있거든요. 갑자기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솟아오릅니다).


  다만 우리가 아직 그 정도의 대화를 주고받을 만큼 가까운 사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고도 없이 훅 들어온 하율이의 마음에 놀란 것뿐이지요. 하율이는 아마도 마음의 시계가 아주 빨리 흘러가는 아이였을 거예요.


  다행히도 아이들을 오래 만나오면서 저도 그런 상황에 어느 정도는 익숙해져 있었어요. 부담스러운 마음을 표시 내지 않고 기쁘게 웃으면서 대답해주는 여유를 늘 장착하고 다닙니다.

  “하율아, 너도 진짜 예뻐! 고마워!”


  남들보다 더디게 흘러가는 시윤이의 시계를 빨리 돌리려고 손을 대는 순간 그 시계는 더 느려지거나, 혹은 고장이 나 버릴지도 모릅니다. 저는 다행히도 시윤이의 시계에 더는 손을 대지 않고 뒤로 물러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다른 모습의 시윤이는 얼마든지 있을 거예요. 그 아이의 시계를 건드리지 말고 우리 어른들의 시계를 뒤로 돌려 그 속도에 맞추는 법을 익혀보면 어떨까요. 지금보다 천천히, 더 천천히요.


  다음에 또 다른 시윤이를 만난다면 그땐 아마 저도 지금보다 더 잘해 낼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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