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저빔 Jun 21. 2023

콩콩팥팥 국어시간

콩 심은 데 정말 콩이 날까요

  교사라면 예외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속담이 하나 있는데 바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기 마련이라는 뜻이 있기도 하지만, 부모를 닮은 아이를 표현할 때 참 잘 어울리는 말이기도 하지요. 처음에는 선입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다양한 아이들과 학부모님을 대해오면서 그 속담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외모가 비슷한 건 유전적으로 당연한 일이지만 삶의 태도나 가치관까지 그대로 닮은 걸 볼 때마다 어른들이 보여주는 말과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되곤 합니다. 아이들을 달라지게 하는 육아 솔루션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겉으로는 아이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인 듯 보이지만 그 실마리는 언제나 양육자의 태도와 행동 변화였다는 걸 깨달았던 적이 많았거든요.


  평소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이 아이의 부모님은 어떤 분이실까를 상상하는 일이 많습니다. 소박한 배려가 몸에 밴 아이를 보면서는 ‘집에서 어떻게 모범을 보이면 아이가 저렇게 멋진 말을 할까?’ 궁금했고,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보면서는 ‘양육 방식이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 건 아닐까?’ 추측하기도 했습니다. 교사이기 이전에 두 아이의 학부모로서 늘 고민하던 부분이었지요.


  부모의 말과 태도가 비에 젖은 옷처럼 아이들에게 깊숙이 스며있단 걸 깨닫고부터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되기도 했지만, 고민도 함께 깊어졌습니다. 만약 아이를 젖게 하는 비가 따뜻하고 촉촉한 봄비라면 그 안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두면 그만이지만, 비바람 몰아치는 태풍이라면, 우산이라도 씌워주는 게 교사의 역할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국어책에서 ‘당나귀를 팔러 간 아버지와 아이’라는 글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수업을 한 적이 있어요. 그 수업이 유난히 강렬하게 남았던 이유는 아이들의 의견을 들으며 보이지 않는 부모의 말과 습관까지 자연스럽게 떠올랐던 이유에서였습니다.     


  시장에 당나귀를 팔러 가던 아버지와 아들이 몇 명의 행인들을 만나고 서로 다른 조언을 받게 됩니다. 당나귀를 타고 가라는 말, 아버지가 타야 한다는 말, 아들이 타야 한다는 말, 부자가 함께 당나귀를 메고 가라는 말 등 조언은 다양했어요. 사람들의 조언을 분별없이 듣고 따랐던 아버지와 아들은 결국 당나귀를 강에 빠뜨려 잃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이 상황에서 자신이라면 어떻게 했을지 선택하고 그 판단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저 같으면요, 당나귀에 아이를 태우고 갈 것 같아요. 왜냐면 누가 뭐래도 자기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잖아요.”

  이렇게 말한 민준이의 어머니는 아이의 사소한 일상과 이야깃거리에도 늘 관심을 가지는 분이었어요. 아이에게 세심한 관심과 정성을 쏟는 민준이 어머니의 모습에서 자녀를 향한 애정을 느꼈던 적이 많았거든요. 자신을 제일 귀한 존재로 여겨주는 부모님의 보살핌 아래 자란 아이다운 대답이었지요.   

  

  재원이의 어머니는 아이의 자율성을 믿고 존중해 주시는 분이었어요. 교우관계나 학교생활 문제로 연락을 드리면 적극적인 개입보다는 재원이가 스스로 판단하여 해결할 수 있도록 돕기를 원하셨지요.

  “아이들끼리 놀다 보면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을 거예요. 그러면서 배워가고 커가는 거겠지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고서야 제가 일일이 신경 쓰지 않으려고요. 재원이가 스스로 판단하고 해결해보다가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자율적으로 판단하여 행동하는 걸 장려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재원이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보다는 일단 자기 생각대로 먼저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때 어떤지 봐서 몸이 더 힘든 사람이 있으면 당나귀를 타고 가고, 괜찮은 사람은 그냥 걸어가고요. 자기 생각대로 행동할 줄도 알아야지요. 언제까지나 남한테 물어볼 수도 없잖아요.”     


  승우의 부모님은 안타깝게도 아이의 생활지도에 크게 관심이 없는 분이었어요. 승우가 다른 친구에게 손찌검을 한 일로 연락드린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 애들끼리 장난치면서 놀다 보면 서로 때릴 때도 있고 뭐 그렇지요. 남자애들은 원래 그러면서 크잖아요. 너무 예민한 애들하고는 같이 못 놀게 떨어뜨려 놔 주세요.”

  이렇게 저를 놀라게 하셨거든요. 승우의 대답은 다른 사람의 불편이나 시선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부모님의 태도를 그대로 닮아 있었습니다.

  “저는요, 다른 사람의 말은 무시하고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래요. 어차피 그 사람들이 당나귀를 대신 팔아줄 것도 아니잖아요. 남의 일에 신경 쓰는 사람들이 더 이상할 수도 있어요.”     


  가희 어머니는 희생적인 분이었어요. 맞벌이로 바쁜 와중에도 아이에게 늘 신경 쓰셨고 아이가 원하는 것이라면 넘치게 챙기셨지요. 자신을 항상 우선순위로 여기는 어머니를 보면서 가희는 엄마가 희생하더라도 아이가 먼저라는 걸 배우지 않았을까요.

  “만약 저라면요, 어른은 걸어가고 어린 아들을 당나귀에 태우고 갈 것 같아요. 어른들은 그래도 힘든 걸 참을 수 있지만 아이들은 아니니까요.”     


  다은이는 경제 관념이 뚜렷했습니다. 용돈도 계획적으로 소비했고 돈을 헤프게 쓰는 친구를 보면 그래서는 안 된다고 조언을 해주는 주관도 있었어요. 아이에게 일찍부터 경제 교육을 하신 부모님 덕분에 아껴 쓰거나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것에 익숙한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 들어보세요. 여기서 중요한 건 당나귀를 좋은 값에 팔아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시장에 도착할 때까지는 당나귀 컨디션을 최고로 유지하는 게 중요하겠죠? 그러려면 그냥 목에 줄을 걸어 데리고 가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요. 걸어가다가 정말 힘이 들 때는 조금씩 타고 가고요.”   

  

  도영이의 부모님은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융통성 있게 필요한 일에는 최선을 다하고, 그렇지 않은 일은 과감히 포기하여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셨지요. 평소 도영이에게서도 그런 부분이 묻어나는 걸 느꼈던 적이 많았습니다.

  “일단 걸어가다가요, 아버지와 아들이 힘이 들 때만 조금씩 번갈아 가면서 타고 가면 어때요? 당나귀도 너무 힘들면 상태가 안 좋아지고 그러면 잘 안 팔릴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고 끌고만 가기에는 사람도 너무 힘드니까요.”

  그야말로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이렇게나 다양한 대답을 들을 수 있던 것도 놀라웠지만 나중에는 학부모님을 떠올리며 아이들이 어떻게 대답할지 예상까지 하게 되니 슬그머니 웃음이 났습니다. 추측했던 대답을 들었을 때는 점쟁이이라도 된 듯 속으로 무릎을 치기도 했지요. 


  교실에 앉아있던 건 아이들 뿐이었지만, 사실은 아이들의 학부모님과도 만나고 있었던 셈이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아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을 먼저 알아야 하는 이유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아이들에게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특별하게 잘한 날에는 집에 가서 어떤 칭찬을 받았는지, 친구와 다툼이 있던 날에는 부모님께서 무슨 이야기를 해주셨는지, 망친 시험지를 들고 간 날이면 어떻게 반응하셨는지 그런 아주 사소한 것들이요.


  학부모 상담을 하다 보면, 가정의 치부라 여겨지는 부분은 의도적으로 숨기고 좋은 모습만 보이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른들의 체면 탓이겠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여과 없이 모든 이야기를 해주기 때문에, 오히려 더 믿을 만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이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때도 많거든요. 때로는 아이들의 눈이 어른들의 시선보다 더 솔직하고 신뢰가 갈 때가 있는데 부모님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말에서 그런 걸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부모는 아이들의 거울이라고도 하고, 첫 스승이라고도 합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어른이기도 하고 가장 많이 의지하는 존재이기 때문이겠지요. 부모로서의 무게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될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무게를 느끼는 사람이 어디 부모님뿐일까요. 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아이들은 집에서보다 학교나 학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때로는 선생님을 엄마만큼 의지하기도 하고,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미처 메우지 못했던 정서적 간극을 교실에서 채우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물론 교사의 무게를 부모님의 그것과 견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교사가 하는 말과 행동이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가랑비가 옷을 젖게 하듯이 어른들의 말과 행동은 아이들에게 매일 조금씩 조금씩 스며들 테니까요. 교사는 비를 맞는 아이의 옷을 더 젖게 할 수도 있고 우산이 되어줄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모습을 보고 닮으며 자랍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놓치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중요한 가치는, 결국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아이들에게는 아주 멀리서 지혜의 아우라를 뿜어내는 크고 대단한 존재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그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손 뻗으면 닿을 곳에서, 매일 보고 대화하는 어른들이야말로 아이가 보고 닮으며 자라나게 도와주는 존재입니다.


  국어 시간 아이들의 대답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아봅니다. 나는 빗속으로 아이를 더 내몰 수도 있고 우산을 받쳐줄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요. 어른의 역할이 무엇인지, 교사의 역할이 무엇인지 자꾸자꾸 떠올려야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소시지 반찬과 독서의 관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