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밤꽃은 비린내로 오지 않는다

by 재해석

열두 살, 우리 집은 금 간 유리창 같았다.

겉으로는 멀쩡한 집 같았지만, 그 안에서는 누구도 다치지 않고 살아낼 수 없었다. 술만 마시면 아빠는 짐승이 되었고, 엄마는 그 폭력에 조금씩 깎여 나갔다. 그릇 깨지는 소리, 방문이 부서질 듯 닫히는 소리, 고성과 울음이 뒤엉킨 밤. 네 자매는 숨을 죽인 채 방바닥에 웅크려 벽지의 무늬를 세며 밤을 버텼다. 누가 먼저 울면 들킬까 봐, 누구도 먼저 울지 못했다.


엄마는 화장품 가방을 메고 방문판매를 다녔다.

낮에는 남의 집 문턱에서 웃었고, 밤에는 멍든 팔을 긴 소매 안으로 감췄다. 금이 간 집을 두 손으로 붙들고 있는 사람 같았다. 쏟아지는 것을 막으려고 자기 몸을 먼저 대는 사람. 그러나 어떤 집은, 무너질 시간을 조금 늦추는 것밖에는 할 수 없다는 걸, 너무 일찍 배웠다.


그날도 엄마는 늦었다.

버스정류장 의자 끝에 앉아 차창을 훑으며 엄마 얼굴을 찾았다. 혼자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아빠가 술에 취해 있을 가능성이 컸고, 그런 밤의 집은 거리보다 무서웠다.


그때 자전거를 탄 사내가 멈춰 섰다.


엄마를 기다리느냐고, 늦었으니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목소리는 다정한 척 했고, 열두 살의 믿음은 가벼웠다. 빨리 엄마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 혼자 돌아가기 싫다는 마음, 어른이 하는 말은 대체로 맞을 거라는 믿음. 아이를 위험으로 끌고 가기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플라타너스 잎들이 밤바람에 몸을 비비며 마른 소리를 냈다.

자전거는 아는 길을 벗어났다. 불 꺼진 공장들, 길게 이어진 담벼락, 쇠 냄새와 먼지 섞인 공단 골목. 공단 담벼락 아래 앉혀 졌을 때 비로소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열두 살의 몸은 도망치는 법보다 얼어붙는 법을 먼저 배운다.


구역질이 났다.


비위가 약해 침조차 삼키지 못하던 아이의 입안으로 역한 비린 냄새와 함께 견딜 수 없는 모욕이 밀려들었다. 밀어내려 했지만 힘이 없었다. 손끝은 차가워졌고, 귀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만 났다. 세상이 멀어졌다. 너무 끔찍한 순간 앞에서는, 비명조차 몸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입가의 하얀 버짐 위에 엉겨 붙은 것을 닦지도 못한 채 다시 버스정류장에 내려졌다.

사내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자전거 바퀴 소리만 잠깐 남았다가 끊겼다. 정류장 의자 끝에 앉아 다리를 모으고 손을 꽉 쥐었다. 울면 더러운 것이 밖으로 쏟아질 것 같아 울지도 못했다.


그 밤에 신은 없었다.


집에 돌아가도 밤은 끝나지 않았다.

아빠는 이미 술에 취해 있었고, 엄마에게 재떨이를 던졌다. 엄마 얼굴은 피로 범벅이 되었다. 문틈에 서서 그 장면을 봤다. 내 비밀에는 피가 없는데 엄마는 피를 흘렸다. 피가 나지 않으면 상처가 아닌 걸까. 말할 수 없으면 없는 일이 되는 걸까. 그날 이후 오래도록, 내 안에 묻힌 일이 정말 일어난 일이 맞는지 스스로를 의심하며 살았다.


설명할 언어조차 갖고 있지 못한 밤이었다.

그 밤은 내가 배운 ‘남자’의 첫 얼굴이 되었다. 술 냄새, 침 냄새, 욕설, 폭력, 비린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이미 깨진 집 위에서 간신히 버티는 가족에게, 내가 또 하나의 금을 내는 사람이 될까 봐.


그러나 집은 끝내 무너졌다.

그해 겨울이 오기 전, 엄마는 더는 못 살겠다며 집을 나갔다. 이혼은 생각보다 빨랐다. 오래 흔들리던 집은 한 번 금이 가기 시작하자 속절없이 갈라졌다. 네 자매는 흩어졌다.


내가 머물게 된 보육원은 생각보다 안전한 피난처였다.

때리는 아빠도, 맞는 엄마도 없었다. 어른들은 우리를 ‘고아’라 불렀지만, 단 한 번도 버려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서른두 살의 젊은 엄마에게 의지할 곳이 친정이 아니라 국가였을 뿐이었다. 돌아보면 엄마는 무너지는 집에서 아이를 꺼내기 위해 국가가 내민 마지막 밧줄을 붙잡은 셈이었다.


그곳에서 장 선생님을 만났다.


보육원의 간호사였던 선생님은 유독 오래 얼굴을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별말을 하지 않아도 밥을 더 얹어 주고, 감기에 걸리면 이마에 손을 오래 올려두었다. 말 대신 침묵을 건네도 불편해하지 않는 사람. 다정함이란 큰 소리로 오는 게 아니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어느 날, 선생님은 경기도 광주 탄벌리에 있는 본가로 나를 데려갔다.

교회 앞에는 커다란 밤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바람이 불자, 밤꽃 향기가 밀려왔다.


숨이 턱 막혔다.


익숙했다.

아니, 너무 정확해서 끔찍할 만큼 익숙했다.


그건 향기가 아니었다.

열두 살 그 밤, 입가에 들러붙어 있던 지독한 비린내였다.


심장이 세차게 요동쳤다. 사지가 굳었다. 교회 마당은 사라지고, 불 꺼진 공단 담벼락이 되살아났다. 단숨에 그날로 되돌아갔다. 더러운 자전거 뒤에 다시 올라탄 것처럼 몸이 먼저 과거를 기억했다.

그때 굳어버린 등을 선생님이 천천히 쓸어내리며 말했다.


“밤꽃 향, 진하지? 생명의 향기란다.”


알아듣지 못했다.

생명의 향기라니. 내게 그 냄새는 수치심의 이름이었고, 영영 더러워졌다는 확신의 냄새였는데.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생명의 향기라니.


밤나무 아래 오래 서 있었다.

숨을 참다가, 참다가, 끝내 눌려 있던 숨이 터져 나왔다. 울음은 소리보다 먼저 몸에서 왔다. 무릎이 풀리고 어깨가 떨렸다. 오래 닫아 두었던 문 하나가 안에서 조금 열린 것 같았다.


그 순간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깨달았다.


두려워한 것은 냄새 자체가 아니었다.

냄새를 맡을 때마다 되살아나는 수치심이었다.


그 밤 내게 쏟아졌던 것은 내 잘못이 아니었다.

우연히 길 위에서 마주친 악취였을 뿐이다.

내 몸 깊숙이 들어와 내 본질이 될 수는 없다.

누군가의 죄가 내 이름이 될 수는 없다.


탄벌리의 밤나무 아래 오래 서 있었다.

비린 향이 코를 찔렀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나를 짓눌러온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일이 나를 영영 더럽혔을지 모른다는 공포였다.


그러나 밤꽃은 해마다 피고, 해마다 지고, 다시 피어난다.

그 향은 누구의 죄도 아닌 계절의 일부였다.

내가 그 냄새에 덧씌운 의미만이 오래도록 나를 찢고 있었던 것이다.



비로소 마음속에서 입가에 맺혀 있던 그날의 액체를 닦아냈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같은 얼굴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기억에 붙은 의미는 바뀔 수 있다.


열두 살의 나는 그 밤을 견뎠고,

보육원에 들어간 나는 침묵을 견뎠고,

고등학생의 나는 그 향기를 다시 마주했다.


그때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이가 홀로 담벼락 아래 웅크리는 대신,

누군가에게 달려가 안겨 울 수 있었다면.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단 한 번만 들을 수 있었다면. 내 계절은 조금 더 일찍 봄을 맞이했을까.


이제 그날의 비밀이 활자가 되어 종이 위로 흩어진다.

문장이 된다는 것은 없던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혼자만의 감옥에 가두어 두지 않는 일이다.

마침내 공단 담벼락에 작은 균열을 낸다.

그 아래 웅크리고 앉아 있던 아이의 손을 더듬어 찾아 쥔다.


밤꽃 향기는 앞으로도 해마다 바람을 타고 올 것이다.

어떤 날은 여전히 숨이 막힐지 모른다.

어떤 해에는 다시 그 자리로 되돌아간 듯 주저앉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향이 처음부터 나를 더럽힌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다만 여름이 오고 있다는 신호라는 것을.


솔직히 말하면, 세상은 이런 투의 결말을 기대하겠지만 내 안의 시간은 아직 거기까지 닿지 못했다.

내 안의 아이는 여전히 그 담벼락 아래 웅크리고 있다.

글을 쓴다고 해서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 것들은 있다.

다만 예전과 다른 것이 하나 있다.



이제는 안다.

그 아이가 왜 거기서 떠나지 못하는지.

겁이 많아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혼자였기 때문이다.


오늘도 종이 위에 한 문장씩 작은 문을 낸다.

담벼락은 한 번에 무너지지 않겠지만, 균열은 반복될수록 깊어진다.

언젠가 그 틈으로, 내 안의 아이도 걸어 나올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주 늦게라도,

밤꽃은 비린내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함께 배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