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따라간 성당. 세례 받고 힘들 때마다 마음의 쉼터를 찾아 들렀던 곳이었다.
오 이런, 사주를 공부한다고 하니 엄마를 비롯한 주변 성당인들의 눈초리가 이상하다. 금방이라도 고해성사를 봐야할 것 같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사주는 좀 그렇다.
엄마는 성경 공부를 추천하셨다. 주님의 천지창조 7일, 모세의 메뚜기 떼, 소돔의 돌기둥 등등 길고 두꺼운 성경 속 이야기들을 천천히 음미하며 뜻을 파악하는건 너무 오래걸린다. 나의 하루하루들이 숨막히듯 말라가고 있었다. 난 인생에 바로 써먹을 나만의 전략을 원했다.
그래, 사주도 넓은 의미로 하느님이 계획하신 일로 보자!! 앞서 행하시고 길을 예비하시는 신실하신 주님이랬다. 언제올지 모르는 그 뜻을 기다리며 살기엔 내가 답답해서 못살겠다. 주님, 내게 주어진 길을 내 손으로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탐구해 봐야겠어요. 그렇게 주님과 내맘대로 양해를 구했다.
2. 심리상담 vs 사주
넓은 의미에서 사주는 상담의 일부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이 사주를 보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 궁금해서도 있지만, 미래를 예측하며 힘이 되는 좋은 얘기를 듣고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함도 크다.
그래서 명리심리상담사 같이 '상담'이라는 단어를 사주 자격증에 붙인다. 강의를 들으며 사주 봐줄 때 주의해야할 점으로 상담 윤리를 배웠다. 세치 혀로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다!남의 인생을 보며 조언하려니 묵직한 부담감과 책임감이 생긴다.
심리상담은 내담자(상담 받으러 온 자)가 거의 이야기를 한다. 내면의 목소리를 꺼내고 지나간 과거의 상처를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함께 한다. 문제에 도달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목적은 같다고 보았다.
객관적인 데이타로 위로해주면 훨씬 잘 먹힌다. 그래서 심리상담도 각종 테스트를 병행하며 그 사람을 알아보는 거겠지. 나는 내 자신을 심리상담 하는 용도로 사주를 잡았다.
3. 신점 vs 사주
너무 답답해서 용기내어 신점을 보러 간 적이 있다. 경험하고 보니 정말 다른 세계였다. 정말 명확히 다르다!
보통 사주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신점과 사주를 헷갈려서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의 신령님이 미래를 알려주시는 통보 형식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신령님이 말해주시는 걸 믿기엔 난 너무 현실적이고 세속적이다. 스믈스믈 계속 의심이 들고 '왜?' '왜 그렇게 말씀하시지?' 궁금함을 풀 수가 없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말해주는 '좋은 미래'를 들으면 기분이 일시적으로 한결 나아지겠지만, 무언가 찜찜한 마음을 다 털어낼 수는 없었다. 혹여나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도 내가 스스로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내가 공부해본 사주는 오히려 수학 같은 기분이었다.공식을 알고 대입한다. 알면 맞추고 모르면 틀린다. 사주 종류가 52만개고, 수없이 많은 임상을 통해 일정한 패턴을 찾아낸 것으로 본다면 통계학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옛날부터 내려와 지금까지 건재하는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