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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 사이즈업과 자존감

사람들은 아무도 내 발에 관심이 없다.

by 슬기

한창 멋을 부리던 학창 시절에 나는 발이 작아 보이는 게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내 발 사이즈는 235 정도 되는데 발이 작아 보이고 싶어서 항상 225나 230 사이즈 운동화를 사고 거기에 내 발을 구겨 넣었다. 정말 미친 짓이다. 그렇게까지 내 발을 혹사시키면서 남들에게 내 발이 작아 보이길 바랬던 이유가 뭐냐고? 하... 나도 모르겠다. 내가 왜 그랬을까? 항상 외출하고 집에 돌아오면 발이 너무 아프고 온몸이 피곤했다. 그 이후로도 발건강을 망친 일은 계속되었다. 학생 때는 작은 사이즈 운동화에 목을 맸다면 졸업을 하고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10센티가 넘지 않는 구두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운동화를 졸업하고 높은 굽의 구두에 흠뻑 빠진 것이다. 바지를 쇼핑할 때 기장이 길어도 자신이 있었다. 나에겐 하이힐이 있었으니까! 외출하고 돌아오면 항상 발이 까져서 아프고 발바닥에는 굳은살이 배겼다. 발가락과 발톱에 변형이 올 지경이었다. 발이 불편하니 신경이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졌다. 내가 아프면서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질 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나는 자존감이 낮은 상태였다. 사람들은 아무도 내 발이 작은 지 어떤지 굽이 높은지 낮은지 전혀 관심도 없는데 말이다!

그렇게 내 발을 굉장히 오랜 기간 혹사시키다가 어느덧 결혼 적령기가 되었다. 나는 그때 사귀던 남자친구와 결혼을 했고 그와 동시에 임신을 하여 애기엄마가 되었다. 임신과 출산기간 동안 나는 아기를 위해 강제로 넉넉하고 푹신하고 편안한 신발을 신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이힐을 아직 포기하지 못해 신지는 못하지만 출산하고도 몇 년 동안 신발장에 가지고만 있었다. 둘째를 임신하며 다 소용없다는 걸 인정했다. 이제는 너무 멀리 온 것이다. 하하하 나는 애 둘 엄마가 되어 편안한 맛에 매료되어 버렸다. 약간의 굽도 이제는 힘들다.

우리 가족은 등산을 자주 가는 편인데 나는 이제 내 사이즈보다 살짝 넉넉한 등산화를 고른다.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보다 내가 지금 등산을 수행하기 편안한가를 생각한다.

맞지 않는 불편한 신발에 더 이상 나를 끼워 넣지 않는다. 신발을 통해 실수를 하고 후회도 하면서 인생을 배운 느낌이다. 아무도 내 발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나는 편안한 신발을 고르고 신을 자격이 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마음이 편안한 사람들과 기분 좋게 어울린다. 불편하다고 느껴지면 서서히 거리를 둔다. 맞지 않는 신발처럼 나를 상처 주는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나를 지킨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지보다 내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운 것이 나에게는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존:자신을 존중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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