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기로 했다.
그 누구보다 남편을 사랑하고 응원하고 있다. 남편이 정말 애들한테 부끄럽지않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금방 들킬 거짓말을 수시로 하고 크고 작은 배신을 당한 일이 여러 번 되고 보니 무뎌지고 접게 되는 마음도 있다.
도박에 관한 책을 미친 듯이 읽고 단도박 모임에도 열심히 참여하려고 한다. (지난주에 남편과 함께 처음 참여했다.)
단도박 모임에서 도박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배웠다. 도박자의 금전적인 어려움을 절대 도와주면 안 된다는 말이 뇌리에 꽂혔다. 아직도 몇 년 전 남편이 싸지른 똥(대출)을 해결하느라 허덕이고 있다. 그도 나도 이미 신용불량자가 된 지 오래다.
브런치에서 중독자 가족, 중독자 본인이 쓴 여러 글을 찾아 읽어보았다. 도박을 끊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고 참았다가 또 하며 믿음과 배신이 반복된다. 가족들은 믿어주고 중독자는 도박 앞에 또 무너진다. 빚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중독자 주변의 가족들은 속수무책으로 망한다. 그를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그를 구하려던 주변사람 모두가 다 같이 물에 빠져 죽는 것이다.
다 다른 사람들인데 도박중독자의 행동패턴이
모두 짠 것처럼 똑같아서 소름이 끼쳤다.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남편에게 매달려 허우적댈 수는 없다.
나는 도박중독자 가족들의 사랑과 헌신을 따라 할
자신이 없다. 지금까지 해온 것만도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도박중독이라는 병에 걸린 것이 너무 안타깝고 불쌍하다. 최대한 돕고 싶다. 그런데 그와 결혼해 살면서 만져보지도 못한 큰돈을 갚으면서 결혼생활 내내 곤궁하게 사는 나도 너무 불쌍하다. 그렇다고 앞으로 도박을 절대 안 하고 빚이 더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어서 더 미치겠는거다.
내가 옆에서 잘 챙겨주고 잘해주면 도박을 그만한다는 보장이 있어야 하는데 가족이 있거나 없거나 아무 상관이 없다면 금전적인 피해가 나나 아이들에게까지 옮겨 붙지 않도록 법적으로 남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혼을 하고도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울 것이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반. 드. 시 분리되고 싶다.
지키지 못할 말로 중독자를 협박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한 번만 더하면 이혼할 거야!" 같은 말.
그래서 나는 정말로 이혼을 할 거라고 결심을 한 상태이고 친정부모님께도 말해놓았다. 시댁에는 뭐... 더 이상 나를 말리실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정말 진지하게 대화했고 남편도 나와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 삶에서 나가주기로 약속해 주었다. 법적으로 남이 되어도 여보가 원한다면 계속 같은 집에 살면서 지금까지처럼 이 집에서 살아도 된다고 말했다. 법적으로는 이혼을 하고 사실혼상태로 사는 것이다. 남편은 내 말을 제대로 이해를 못 한 듯했지만 어쨌든 지금 내 마음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