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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Jan 04. 2021

새 잎이 돋아난 온실 속 화초처럼

봄이라는 희망을 기다리는 마음


아침에 눈을 뜨면 창문으로 들어오는 기분 좋은 햇살과 따뜻한 방안 온도가 여전히 낯설다. 차가운 아침 공기에 코끝이 조금 시려야 하고 잘 때도 얇은 외투를 입고 자야 하는 게 정상인데 긴팔과 긴바지의 생활복으로도 충분한 집안의 공기가 영 낯설지만 기분은 제법 괜찮다. 낮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혹독한 겨울 추위에 꽁꽁 얼어있는 강물을 보고 있자니 지난겨울이 떠올라 몸서리가 쳐졌다.



얼마 전까지 살았던 산 밑의 시골집은 기름보일러를 사용했다. 보일러를 조금만 열심히 돌려도 눈에 띄게 줄어드는 기름 눈금의 눈치를 보느라 매일 아침은 코가 시린 상태로 일어나야 했다. 게다가 거실의 반이 보일러가 들어오질 않았고, 방에 비해 거실이 비정상적으로 넓어서 장작난로가 없으면 겨울을 나기 어려웠다. 


겨울이 오기 전에 톤 단위로 장작을 구입해서 집 뒤쪽에 쌓아둔다. 많이 쪼갠 나무는 비싸기 때문에 적당히 쪼개진 나무를 구입했기에 난로에 넣기 전에 한번 더 쪼개야 한다. 시골살이를 위해서는 도끼질도 피해 갈 수 숙명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도끼질까지 해서 난로를 피우면 그제야 집안이 훈훈해졌는데 잠들기 전에 장작을 넣어두어도 아침이면 방안 공기는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이불을 돌돌 말아 잠을 자고, 겉옷을 입고 자는 시골 생활을 4년쯤 하고 겨울이 오기 전 지금 살고 있는 시내의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시골살이를 갑작스럽게 끝낸 것이 여전히 아쉬워서 다시 시골살이를 꿈꾸고 있지만 겨울 아침에도 이렇게 따뜻한 집에 살고 있자니 온실 속의 화초가 된 기분이다.


기온이 내려가면 보일러가 얼어서 매년 겨울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지냈는데 그런 걱정 없이 살고 있고 장작을 패지 않아도 되니 수고로움을 덜게 되었다. 눈이 와도 걱정 없이 슈퍼나 편의점을 갈 수 있으니 이게 바로 온실 속에 사는 기분 아닌가! 편의점이나 슈퍼의 편리함 따위는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시내로 나와 살고 보니 마음이 아주 간사해졌다.

 



오후까지 집안으로 들어오는 햇살 덕분에 앞 베란다가 제법 따뜻하다. 햇살을 좋아하는 고양이 가족 쪼꼬는 베란다에 있는 캣타워에서 낮잠을 자며 낮시간 보낸다. 베란다에는 쪼꼬뿐만 아니라 몇몇의 식물들도 햇살을 즐기고 있는데 저녁이면 제법 기온이 떨어져도 잘 견뎌내는 율마, 제라늄 같은 식물들은 그곳에서 겨울을 보낼 예정이다. 

 

추위에 약한 식물들은 실내로 들여놓았는데 집안 정리를 하며 거실 살이 식물들을 들여다보니 어쩐지 오늘은 조금 달라 보였다. 선명한 아침볕에 식물들이 유난히 반짝이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새 잎이 돋아나고 있다. 어제까지도 발견하지 못한 변화였다. 뱅갈 고무나무와 황금무늬 홍콩야자에 새 잎이 돋아나고 타이거 베고니아는 꽃까지 피워내고 있다. 


나는 요 며칠 제대로 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려 산책도 못하고 지내는데 꽃이 피고 잎이 돋아나다니 온실 속 화초가 바로 이런 걸 말하는 건가 보다. 베란다의 제라늄은 일부러 꽃대도 잘라주었는데 새롭게 꽃대를 올리고 있으니 참 신기할 노릇이다. 과연 이게 식물들에게 좋은 걸까? 우리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듯 식물들도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추운 날씨에도 새 잎을 돋아내느라 바쁜 모습을 보니 어쩐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식물들의 고군분투가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작게 돋아난 새 잎에 귀여워 자꾸 바라보게 되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어주는 걸 보니 이래서 반려식물이라는 말을 하는 거구나 싶다. 이 건조한 계절에 너희들이 없었다면 얼마나 삭막했을까, 새 잎을 보여주기 위해 한껏 기운을 모으며 애썼을 반려식물의 모습에서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계절이 돌고 돌아 봄이 오듯, 조금은 침체되어 있고 답답한 우리의 일상에도 새잎이 돋아나는 봄이 올 것이라는 희망. 그 계절이 되면 여지없이 꽃이 피고, 새 잎이 돋아나 봄이 주는 위로를 받을 수 있을 테니 집이라는 온실 속 화초를 보며 봄을 꿈꾸어 보기로 했다. 


매일매일 자라나고 있는 스킨답서스
갑자기 급 성장하는 비실했던 트리안
꽃을 피운 타이거 베고니아
손바닥 같이 귀여운 새잎을 낸 황금무늬 홍콩야자
갑자기 등장한 뱅갈 고무나무 새잎
꾸준히 새잎을 보여주는 로즈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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