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촌 애견인 is out?

by thinking cloud

희망동 원룸은 기본적으로 반려견 금지다. 반려견이 있다고 하면 부동산 관리자가 바로 말한다.

- 개 키우면 안 되는데...

관리인의 말인 즉, 반려견이 집안 가전이나 벽, 장판을 물어뜯기도 하고, 짖으면 시끄럽기도 하니 관리가 어렵고 공실 회전에도 불리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동물을 사랑하는 원룸러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럼 고양이는 괜찮은가요? 햄스터는요?


물론 어림없다. 관리인의 단호함은 건물주의 뜻이리라. 원룸러는 급기야 반려견을 숨기고 들어온다. 성대 수술을 한 반려견이면 몰라도, 아닌 경우에는 금방 옆방에 들키게 마련. 강아지가 한 번 왕 하고 짖으면 계단까지 울린다. 옆방 사람은 건물주나 건물 관리자에게 연락하여 자꾸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고 클레임을 건다. 그 클레임은 다시 견주에게 돌아간다. 개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냐는 얘기를 들은 견주는 이윽고 거짓을 고한다.

- 친구 강아지인데 며칠만 맡아달라고 해서요.

그리고 며칠 뒤 원룸은 다시 조용해진다. 그 반려견은 어디로 갔을까. 옮겨간 곳에서는 부디 환영받고 행복하기를.




나는 반려견을 키운 적이 없다. 희망동에서도 그렇고 본가에 살 때도 그랬다. 아주 어릴 때도 부모님께 개 키우고 싶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다. 거리를 두고 보는 건 귀엽지만 사실 나는 개가 무섭다.

딱히 개와의 에피소드가 없을 인생이라 생각했는데 두 번째 살았던 즐거운 하루에서 만나지도 않은 개에게 호되게 당했다. 내가 있었던 즐거운 하루 206호는 방 한 개와 거실 비슷한 공간이 있어 1.5룸으로 봤어야 했는데 나의 바로 앞에 살았던 세입자가 하도 부탁 부탁을 해서 건물주가 월세를 더 받고 반려견 키우기를 허락 해줬다고 한다.

그 사람이 이사 나가자마자 간단한 집 손질만 마치고 일주일 만에 내가 들어가게 된 것이었는데, 부동산 관리인 분이 내게 조심스럽게 동의를 구했다.

- 전에 살던 사람이 개를 키웠는데 괜찮겠어?

- 개요?

- 응. 큰 개는 아니었는데...

이전에 반려견과 살아본 적도, 개를 키웠던 집으로 이사해본 적도 없던 터라 관리인이 왜 그걸 나한테 묻는지부터 의아했다. 응? 개가 있었으면 뭐? 사람과 뭐가 다르지? 하던 수준이었다. 일주일 내내 문을 열어 놓았고 어제 가보니 개 냄새 안 나더라고 다급히 덧붙이는 관리인의 말을 믿었던 것도 있고, 방을 보러갔을 때 깨끗함이 마음에 들어 별생각 없이 이사를 결정했다. 심지어 동물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고 주워들은 말을 떠올리며 앞에 착한 사람이 살았던 모양이라고 낭만 판타지를 썼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순수 백지상태. 아무것도 모르는 초바보였다. 그래서 내가 개가 있었다는 말을 듣고도 그 방에 들어간 것일 테고.


이사한 지 사흘 만에 나는 즐거운 하루로 이사한 것을 다시 생각했다. 그 얼굴도 모르는 개는 내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하루 이틀 째는 이사 때문에 어수선해서 몰랐는데, 사흘 지나니까 문 닫고 있으면 풍겨오는 개 냄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이사한 달이 6월. 장마철이었다. 장마 다음은 후덥지근한 여름. OMG. 문단속 때문에 문을 닫아야 하는데 후끈하게 코를 덮치는 비린내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개 냄새가 이런 것이었나! 모든 반려견 견주는 이 냄새를 참고 키운다는 말인가! 이게 익숙해진다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냄새인가! 나는 나름대로 성격이 무난하다고 생각했으나 남의 개가 남겨두고 간 냄새까지 수용할 만큼 비위가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동산 중개업자가 굳이 집의 흠이 될 만한 걸 말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도. 이미 늦었지만.

그 냄새는 참 오래도 갔다. 가을이 깊어서 추워질 때까지였으니. 그때 다짐했다. 두 번 다시 내 앞에 개 키우던 사람이 있던 집에는 들어가지 않으리.



희망동 원룸촌 중앙에 행정복지센터가 위치해있다. 작은 놀이터가 딸려있는 그곳에 매일 밤 반려견과 견주들이 모인다. 매일 스무 마리는 넘게 모여 애견카페를 방불케 한다.

한 번은 내가 늦은 퇴근길에 불고기를 포장해서 그 놀이터를 가로질러 가고 있는데 갑자기 사자만한 개가 달려오더니 나를 밀었다. 그 개가 힘이 셌던 건지 내가 놀라서 발을 잘못 디딘 건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멍했다. 내가? 넘어졌어? 개한테 밀려서? 실화임?

견주가 황급히 개를 수습하고 나까지 일으켜 주었다. 밀리기만 했을 뿐 물리지는 않았으니 괜찮다고 해주었다. 그 개의 종은 골든 레트리버라고, 같이 놀고 싶었나 보다고 견주가 대변했지만 나는 내손의 불고기 때문이라 확신한다.



뒤늦게 의문이 든다. 투룸, 주인세대는 반려견 오케이인 건가? 빌라마다 복불복? 무늬만 반려견 금지? 저녁마다 모이는 개들은 도대체 어느 빌라에서 왔을까.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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