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촌 캣맘

by thinking cloud

개냐 고양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반려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고민이자 선택의 고민이겠으나 내게는 둘 다 그냥 문제였다. 이번에는 고양이다.


어느 날, 예쁘고 참해 보이는 여자분이 내 차 근처를 기웃기웃하고 있었다. 물건이라도 떨어뜨린 건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그녀는 다음날도 내 차 근처를 왔다 갔다 했다. 남의 차에 붙어서 뭐 하는 거지? 내 차에 뭐 문제 있나? 괜히 불쾌한 마음이 들어 그녀를 불렀다.


- 저기요. 여기서 뭐하세요?

- 어... 음... 아닙니다.


아니기는 뭐가 아닌지를 들으려는 건데 그분은 급히 자리를 떠났다. 가까이서 봐도 멀끔한 옷차림에 깔끔한 화장, 또렷한 눈빛으로 보아 멀쩡한 사람이었다. 어디 종교 쪽도 아닌 것 같다. 근데 왜 저러지? 궁금해서 그분이 하던 대로 나도 따라 해 보았다. 차도 주차장도 주차장 뒤 화단도 아무 문제없었다. 이때부터 이상한 집착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나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뒷좌석에 누워서 유튜브를 보았다. 그녀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 볼 작정이었다. 전 날 말을 걸었기 때문에 오늘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예상했지만 그럼 그만일 뿐. 게다가 예상외로 그녀는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주차장 입구부터 허리를 푹 숙이면서 걸어 들어왔다. 번호판을 보는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시선이 더 낮았다. 차 밑의 바닥을 보는 듯했다. 머리카락이 땅에 닿을 것 같은데 아랑곳없었다. 뭐하는 거지? 무섭게...


한 대 한 대 천천히 지나더니 내 차 맞은편에 주차된 차에서 멈추었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나를 발견 못한 그녀는(썬팅의 위력!) 안 쪽으로 좀 더 들어가서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녀가 한동안 그것을 들고 있자니 앞에 누런 형상이 나타났다.


길고양이였다.


그래. 그런 거였구나. 캣맘이었어. 내가 아무리 간첩신고 113을 주입식으로 교육받으며 자란 세대라지만 별 사람을 다 수상쩍게 여겼구나 싶어 낯이 뜨거워졌다. 의문이 풀리고 긴장했던 내 맥도 풀렸다. 에잇, 내가 지금 차 안에서 뭐 하고 있는 거냐. 이 상황에 아무 일 없었다는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겠고... 한심해서 헛웃음이 났다.


그녀가 들고 있던 건 소세지인 모양이었다. 고양이가 소세지를 다 먹자 그녀는 가방에서 통조림을 꺼내서 내밀었다. 저 가방은 고양이 간식 창고인 듯했다. 고양이가 식사를 마치고 나자 그녀는 맨손으로 고양이를 만지며 놀았다. 아이구, 길고양이를 함부로 만져도 되는 건가? 내 걱정과는 다르게 그녀와 고양이는 즐거워 보였다.

그날 이후 나는 그녀를 보지 못했다. 타이밍이 안 맞았거나 있었어도 지나쳤을 수 있다. 누가 있건 말건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그녀와 고양이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면 그만이다.



현재 살고 있는 르네상스로 이사 온 뒤부터 새로운 고양이 문제를 맞닥뜨렸다. 나는 늘 같은 자리에 주차를 하는데 산책이나 장을 보러 저녁에 나오면 내 차 본네트 위에 고양이가 웅크리고 엎드려 있다. 항상 같은 고양이다. 전체적으로 검은색인데 양쪽 앞발만 흰색 털이어서 알아보기 쉬웠다. 그 고양이는 거의 매일 앉아있었다. 저녁에 비가 오면 다음날 본네트 위를 올라간 고양이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다른 차도 아니고 왜 하필 내차냐.

내가 유력하게 꼽는 이유는 온도다. 르네상스 빌의 차들이 들고 나는 시간이 제각각인데 딱 그 시간에 내 차 본네트가 따뜻하게 앉아있기 좋은 온도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아니면 말고.

단, 이 고양이 때문에 밤에 차를 몰 일이 생겼을 때 마음이 안 좋다. 어김없이 본네트 위가 방석 인양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운데 쫓아내려니 미안해서이다. 물론 반드시 쫓아내고 차를 빼기는 하지만. 그 고양이한테 묻고 싶다. 차 바꿀 생각은 없니?



얼마 전에 집 앞에 쓰레기 내놓는 곳에 캣타워가 나온 적이 있었다. 대형폐기물 수거 신청해놨다고 친절히 적혀있었다. 아니 이 코딱지만 한 원룸에 저런 캣타워를 둘 자리가 있었어? 사람들의 동물 사랑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 뒤로 벽보가 붙어 있었는데, <고양이를 찾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고양이 사진과 프로필이 적혀있었다. 간단한 벽보였지만 주인의 애타는 마음이 전해져 왔다.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 극진한 사람인 듯했다. 찾기 어렵지 않겠나 하면서도 찾았으면 하고 바랬다.

며칠 뒤 집 근처 카페에서 그 벽보를 다시 보았다. 벽보까지 붙여줄 정도인 걸 보면 르네상스에 사는 그 묘주가 이 카페에 자주 오는 모양이었다. 나도 자주 오는데? 그럼 이 카페에 같이 앉아 있던 적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파트는 같은 동 주민 간의 교류가 어느 정도 있지만 원룸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직 고양이를 못 찾았구나. 어디선가 길고양이가 되어 남의 차 본네트 위에 웅크리고 있을 이웃사촌네 고양이를 상상한다. 고양이는 주인에게 돌아오고 싶을까 아닐까. 답은 그 고양이만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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