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thinking cloud Oct 23. 2021
내가 원룸을 옮겨 다닐 때마다 부동산 요나 선생님께 꼭 듣는 말이 있었다. 내 앞에 살 던 사람이 어떤 이유로 이사를 나갔는지에 대해서다.
발렌타인은 내 앞에 남자 대학생이 살았는데 졸업과 동시에 취직이 되어서 경기도로 옮겨갔다고 한다. 즐거운 하루의 전 세입자는 직장인이었는데 결혼을 하면서 이사를 했고, 르네상스는 집을 사서 나갔다고 했다. 이유야 각각 다르지만 모두 잘되어서 원룸촌을 떠난 셈이다. 그러고 보니 예산에 맞춰 찾고 찾아 들어온 원룸촌이다. 원룸에 들어와 살다가 이사하면서 주거환경이 더 안 좋은 곳으로 갈 일도 드물기는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하면 잘 되어 나가는 운 좋은 방이라는 뉘앙스를 풍기지 않아도 될 걸 그 부분을 꼭 설명하는 바람에 오히려 신뢰성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원룸촌 내에서만 이사를 다녔는데 요나 선생님이 내 뒤에 들어오는 사람에게는 앞사람의 이사 이유를 뭐라고 말했을지 궁금하다. 분명히 이 원룸 있다가 저기 한 블록 옆 원룸으로 이사 갔다고는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다가 정말 희망동 원룸촌에서 혼자 마흔을 맞이할 수도 있겠다 싶다. 십 년을 한곳에서 산다는 건 나쁘지 않지만 십 년을 원룸에서 산다는 건 발전이 없어도 너무 없지 않나. 답답함은 커지고 이러다가 내 삶이 이 방의 규격 안에서 굳어질 것 같다, 생활뿐만 아니라 생각의 크기까지 이 규격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그런 불안함이 일었다. 결정적으로 방이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어릴 때 방학 때마다 할아버지 집에서 지냈는데 매일 방청소를 거들어야 했다. 그때는 할아버지 집이 너무 넓어서 이걸 언제 다 닦나 했는데 다 커서 가보니까 그 집이 전혀 넓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좁았던가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집의 물리적인 크기가 바뀌지는 않지만, 세월이 갈수록 눈이 점점 커지는 사실을 경험했다.
비슷한 일을 외할머니 댁에서도 겪었다. 외할머니는 젊어서 내 집 마련 후 40년을 한 집에서 사셨다. 학생이던 엄마가 결혼을 하고 나와 친척 언니들이 태어나서 시집갈 때까지 뻔질나게 드나들던 집이었다. 그 집의 안방이 옛날에는 큰 방으로 쳤는데 지금 가보면 아파트 작은방만하다. 내 눈만 커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알을 깨고 나오는 새의 기분이 뭔지 조금 알 것 같다. 좁아도 여기가 편한데 하면서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어쩔 수 없이 나오지 않을까. 뱀도 못 참을 때까지 온몸이 졸리다 허물을 벗어던지는 게 아니었을까. 내가 원룸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처럼 그들도,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삶의 틀을 바꾸기가 생각보다 힘들거라 추측한다.
방을 좀 더 넓혀가는 건 힘들어도 해내야 하는 일이다. 조금씩 준비를 했고, 이제 원룸 독거 생활 9년 차가 되면 희망동 원룸촌을 떠날 예정이다. 예정된 집은 방 한 개, 거실 한 개로 투룸이라 볼 수 있다. 넓이는 그간 살았던 원룸보다 살짝 더 넓은 수준이고 가운데 방과 거실을 구분하는 문만 하나 더 달렸다 뿐이지만 나는 이사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방 하나를 늘리는데 9년이 걸렸다. 방 세 칸 까지 집으로 이사하려면 다시 9년이 걸릴까. 그때까지도 독거생활 중일까. 지금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