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과 취미생활과 좁은 세상

by thinking cloud

원룸촌에 들어온 후, 본격적으로 취미생활을 하나 만들어보기로 했다. 혼자 살다 보니 애 키우고 결혼 생활을 하는 친구들보다는 자기 시간이 많은 편이고 혼자 있어도 무료하지 않을 거리가 필요했으니까. 희망동 원룸촌이 도심에 가까운 터라 시내에 있는 백화점 문화 센터에 들렀다. 일반 학원은 비싸고 문화센터가 시간적 경제적 부담이 덜하다는 판단이었다.

처음에는 프랑스 자수가 끌려서 신청했는데 바늘에 손을 찔리는 건 둘째치고 눈이 침침해서 한 학기만에 그만두었다. 그때를 시작으로 나는 문화센터 떠돌이가 되었다. 마음에 맞는 취미 생활 찾기는 장기전에 돌입했다.


두 번째는 가야금. 악기는 빌려준다고 해서 부담 없이 신청했는데 가야금 현을 오른손으로 퉁겨야 했다. 나는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면 왼손잡이라서 오른손으로 연주하려니 영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세 번째는 보태니컬 아트. 당장이라도 그림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방울토마토나 체리를 그리고 싶었으나 연필로 선긋기 연습만 하다가 2주 만에 싫증이 났다.


네 번째는 홈패션. 이건 좀 재미있었다. 선생님이 주는 패턴을 따라 원단을 재단하고 봉제하면 앞치마나 티슈케이스, 방석 등 그런대로 봐줄 만한 결과물이 나와 성취감을 자극했다. 드르륵드르륵 돌아가는 미싱 조작도 재미있었다. 홈패션은 유력한 취미생활 후보였지만 원룸에 미싱을 놓을 만한 공간이 없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미싱을 사려고 중고 미싱 골목까지 가는 등 정말 심각하게 고민을 했는데, 센터의 넓은 공간에서 원단을 펼쳐놓고 하는 작업과 내 원룸에서 다른 물건 치워가며 하는 작업은 차이가 클 것 같았다. 그대로 골동품이 되고 말 거야. 그런 이유로 홈패션은 장기 보류했다.

다섯 번째가 대망의 통기타였다. 선생님이 워낙에 노련한 분이어서 어렵지 않게 등대지기 배우고 난 뒤 매주 한 시간씩 취미생활로 굳어졌다. 발렌타인에 살 때부터 즐거운 하루 시절까지 다녔으니 약 오년간이다. 단, 매주 수업하는 한 시간 이외에는 많이 연습하지 못한 것이 함정. 오년을 배웠으나 아직도 F코드 소리가 한 큐에 선명하게 꽂히지 않는다.

기타반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었다. 초등학생부터 오십 대까지 나이도 직업도 다 달랐지만 사는 곳이 가까웠다. 나는 희망동 원룸촌, 이름에 ‘금’ 자가 들어가서 금선생님이라 부는 오십 대의 중견기업 임원은 희망동에서 큰길 건너면 있는 아파트 단지, 초등학생은 백화점 뒤편의 아파트 단지였다.

그 초등학생은 주말에 문화센터에 산다고 했다. 왜 인지 물어봤는데 평일에는 학교와 학원에 가고 주말에는 문화센터 수업을 토요일 세 과목, 일요일 세 과목 해서 여섯 과목 듣는다고 했다. (그렇게 살면)재미있니?라고 물었다. 학생이 그렇다고 했다. 학원은 공부하니까 머리 아픈데 문화센터는 재미있는 걸 다양하게 하는 편이고 시험 치는 것도 아니니까 좋다고 했다. 오호 통제라. 쉼 없는 초등학생의 생활이 그려져 마음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취미생활은 그저 취미로 즐기리라. 그 초등학생을 보고 다짐했다.




취미생활은 구했으니 다음은 운동이었다. 희망동 원룸촌에는 딱히 밖에서 운동을 할 만한 곳이 없다. 도심이라 빌딩 숲뿐이고 공원이 없다. 산책로가 붙은 하천도 없다. 한동안 운동할 곳을 찾아 이리저리 다녀봤다. 근처에 있는 대학교 운동장들을 가봤지만, 내가 나온 학교도 아닌데 눈치가 보였다. 그냥 아스팔트 걷기 운동은 자동차 매연이나 길가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연기에 목이 막혀 운동할 마음이 뚝 떨어졌다.

그 대신 희망동에는 운동할 수 있는 시설은 많았다. 헬스장, 점핑, 댄스학원, 탁구장, 테니스장, 요가원, 폴댄스 등 골목마다 재미있을 것 같은 종목이 있었다. 헬스는 서너 달을 했는데 곧 흥미가 떨어졌다. 댄스학원을 등록해볼까도 했는데 한 시간 체험하고 판단할 수 있다고 해서 갔다가 생각보다 스피커 소리가 너무 큰 바람에 정신이 없어져 포기했다.

그다음 선택은 탁구. 빠른 공을 날렵하게 받아치는 탁구장 회원들이 모두 선수 같아 보였다. 밤늦게 까지 운영을 해서 시간 구애도 없을 것 같았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탁구 인구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해 볼만 한데? 그럼 하는 거지 뭐.

어느 날 탁구 젖먹이로서 포핸드 스윙 자세 연습을 한창 하고 있는데 낯익은 분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봤더라. 아! 그분은 같은 기타 수업을 들었던 금선생님이었다. 나중에 들어 보니 그 탁구장의 오랜 회원이었다. 가까이 사는 건 알았지만 기타반에서 알았던 사람을 탁구장에서 또 만나다니 모르는 사람끼리 이렇게 취향이 겹칠 수도 있는지 신기했다.

탁구장에서는 금선생님만 만난 것이 아니다. 나와 나이대가 비슷한 신입 회원이 레슨을 시작한다는 얘기를 코치님께 들었는데 알고 보니 그 신입 회원이 발렌타인 미용실 새 사장님이었다. 이러다가 탁구장에서 이 동네 아는 사람 다 모일 판국이었다. 원룸도 좁고 세상도 참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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