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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9시간전

호두까기 인형

 오늘 호두까기 인형 발레 공연을 봤다.

딸아이는 아침부터 발레이야기로 호들갑 중이다. 이미 보고 있다며 감탄사까지 내뱉는다. 사실 나도 처음보기는 마찬가지. 딸아이만큼은 아니지만 어른이 내색 없이 낼 수 있는 최대치로 들떠있음이 분명했다.


공연 시작시간은 오후 2시. 공연 장소는 생각만큼 붐비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산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서둘러 어두운 무대로 자리를 옮겼다. 밖에서는 몰랐는데 이미 아이들이 많이 와있었다. 어른들 대화를 들어보니 아이가 좋아해서 끌려왔다가 대부분. 실은 그 반대 같았다. 어른이 아이보다 더 큰소리로 떠들고 있었으니까. 그들도 나처럼 콩닥거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잠시 후 모든 조명이 꺼졌다. 눈을 감은듯한 암흑이지만 웅성대는 소리는 그대로다. 암흑과 소음만 온통인 이곳에서 여러 감각이 부딪히며 아우성이다. 물놀이 전 몸에 물을 묻히는 것처럼, 앞으로 벌어질 생생함과 낯섦에 준비하는 마음자세를 온몸에 적시는 듯했다.


시작에 앞서 진행자가 나왔다. 비즈니스와 캐주얼 구분이 모호한 먹색 드레스 차림이었다. 모든 조명을 한 몸에 받고 있음에도 화려하거나 지나치지 않았다. 한때는 이름 좀 날렸던 발레리나가 분명했다. 품이 넉넉한 옷 안에는 늘씬한 다리와 잘록한 허리가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으니까. 검은빛 광채를 자아내던 그녀가 말했다. 무대가 멋있고 좋을 때는 아낌없이 박수를 치라고. 나아가 더 기분이 좋을 때는 환호하며 ‘브라보’를 외치라고 했다. 그녀는 한 번 더 강조하며 마무리로 연습까지 시켰다. 카랑카랑한 아이들 목소리만 요란하다. 대부분 어른들은 품위나 부끄럼 때문에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모양이다. 나도 다른 어른들과 다르지 않았다. 겨우 옆사람 들릴 정도로 작게 외쳤다.


“브라보,,,”


오늘따라 무대 커튼이 열리는 속도가 무척이나 더뎠다. 발레와 조명과 음악이 함께하는 무대는 어떨지 아직도 상상 중이다. 어떻게 하면 더 놀랄 수 있을지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진행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자세는 고쳐먹지 않았다. 손뼉 칠 순간은 작은 막이 끝날 때, 환호와 브라보는 모든 공연이 마치고 나서부터라고. 매번 이런 공연을 볼 때마다 걱정이다. 고요함 속에 혼자 물개 손뼉 치는 순간을 상상해 본다. 모두가 나를 보는듯한 차가움이 온몸이 따라 퍼진다. 혼자 몸서리친다. 차라리 남들 손뼉 칠 때만 치겠다 한다. 오늘도 같은 마음으로 차분히 무대를 응시 중이다.


화려한 조명만큼이나 발레리나의 모습은 우아했고 동작은 단호했다. 발등은 곧게 펴고 있어 다리가 이상하리 만큼 길어 보였다. 모두가 땅에 발이 닿지 않고도 움직이는 법을 터득한 듯했다. 넓은 무대를 성큼성큼 내지르며 날아다녔다. 축지법을 본다면 아마 저런 모습이 아닐까 상상 중이다. 홍길동과 서커스와 이상한 나라 엘리스를 마음껏 넘나드는 기쁨이란.


넋을 놓고 본다는 말을 실감한다. 감탄사를 내지르며 손뼉 치는 내 모습과 마주한다. 예상치 못한 적극성에 스스로 당황하는 눈치다. 마음껏 표현하고 싶은데 부끄럽기도 하고, 주체할 수 없을 만큼에 감정을 받아내기도 한다. 결국 이번 공연은 마음껏 부끄럽기로 입장을 정리한다. 우아함도 계속 보면 경박할 수 있음을 아는 것 같다. 마음껏 치거나 또는 질렀다.


박수 칠 타이밍을 걱정했던 일은 기우에 불과했다. 언제 어떻게 반응할지는 직감으로 충분했다. 진행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쳐야 할 순간이 온다면 마음껏 쳐야 한다고. 이런 말을 듣지 않았더라도 내가 멍하니 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저 ‘와~’ 하는 탄식과 물개박수는 저절로 나오는 것임을 알았다. 나는 튜브에 몸을 맡긴 채 떠다니는 피서객에 불과했다. 파도가 치면 치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그저 밀려다녔다. 무대에서 파도를 만들지 않았지만, 출렁이는 무언가가 나를 밀거나 당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발레구나. 나이 사십에 발레라는 단어에 오감을 포개어 넣는 재미를 만끽하다니.


순간 딸아이는 어떨지 궁금했다. 딸아이는 팜플랫으로 얼굴을 빼꼼하며 보고 있었다. 넋을 놓고 보고 있음이 분명했다. 감정이 극으로 치닫자 자신이 무대의 여주인공으로 착각하는 듯했다. 중간중간 촉발하는 감정에 맞춰 박수와 환호도 잊지 않았다. 비슷한 곳에서 비슷한 감각으로 뒤범벅될 수 있다니. 지금 이 순간이 그저 찰나로 지나갈 생각을 하자 아쉬움이 밀려왔다.


감정의 장대비를 우다다 맞았다. 모든 게 정화되는 듯한 느낌이다. 몇 주간 쌓아 두었던 스트레스와 불쾌함, 두통까지 모두 쓸려간 듯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의욕이 생긴다. 입술이 새파랗게 질릴 때까지 물놀이하면 싫던 시금치도 당기기 마련이다. 지금이 딱 그 짝이다. 다시 야박한 현실에 좌절하고 내일도 반복될 삶에 대항할 이유를 찾은 듯하다. 아니 피하지 않고 맞서는 방법을 안 것 같기도.


어느새 마지막 막이 내렸다. 까만색 커튼뒤로 많은 조명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게 보였다. 묵직한 커튼뒤로 그들만에 이유 있는 포옹이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그들이 무대를 활보할 때 들리던 쿵쾅거림과 궤적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아쉬운 채로 밖으로 나왔다. 잿빛 하늘에서는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저 멀리 반짝이는 대형 트리와 캐럴,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 위로 눈까지 내리고 있다니. 마치 스노볼 속에 한 장면처럼 포근하다. 이 또한 꺼지지 않던 여운이 만들어낸 순간의 연장선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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