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찾았다!"
얕은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일면식도 없던 남매 중 남동생이 다가와 다슬기를 보란 듯이 내밀었다. 자기는 이 정도라는 표정과 함께. 나와 딸아이는 사금이라도 본 얼굴로 서둘러 계곡 바닥을 훑기 시작했다. 흐르는 계곡물과 아이들의 움직임 때문에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바닥은 쉽게 우리에게 시야를 내어주지 않았다. 잠시 후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까만색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손을 넣어 집었더니 다슬기가 올라왔다.
다슬기, 어렸을 적 ‘고디’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강기슭이나 계곡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던 생물이었다. 그때는 송사리를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개구리나 도롱뇽 잡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움직이는 생물을 더 이상 발견할 수 없을 때만 고디를 잡았다. 자갈처럼 생겨 움직임도 없다 보니 잡는 맛이 형편없었다. 그렇지만 삶아 먹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한 바가지 잡아가면(주워간다는 말이 맞겠다) 고생했다며 쓰다듬어 주시던 엄마의 손길이 떠올랐다. 고디를 삶아 이쑤시개로 빼내 똥을 빼고 국을 끓여 먹었다.
손 위에 고디는 전속력으로 움츠리고 있었다. 선글라스처럼 생긴 필터를 문짝 삼아 쾅하고 조심스레 닫는 중이었다. 어렸을 적 추억 때문에 약간의 소름이 돋았다. 계곡에 박힌 두 다리에 정수기 냉수 같은 계곡물이 파고들었기 때문이기도 했었다. 어렸을 적에는 고디가 참 컸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나 작았었나. 그러고 보니 작고 통통하던 내 손바닥이 지금의 널찍한 손바닥과 겹쳐져 보였다. 시간이 느려지며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포개졌다. 내가 정말 많이 컸구나. 그 어린 나이에도 숙제만 하며 살다가 죽겠다며 부모님을 원망했었는데. 언제 나는 이렇게 커버린 걸까. 무심하게 흘러간 시간이 야속하고, 이렇게 떠올리지 않으면 추억할 수 없는 과거가 얄미웠다.
고디로 인해 유년기의 추억이 너무나 생생하게 떠올랐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때가 좋았으니까. 튜브(당시에는 튜브를 쥬부라 불렀다) 하나 의지하며 동네 친구들과 물놀이하고 굽는 소리가 꼭 빗소리 같던 삼겹살을 한입에 넣는 기분이란. 등뒤에 따라오는 시퍼런 엄마의 나무람도 물속에서는 힘을 잃고 말았다. 계곡물에 새파랗게 질린 입술을 바들바들 떨면서도 어떻게라도 더 놀겠다며 악다구니 쓰던 때가 있었지. 어쩌면 지금 찾고자 하는 행복은 지나쳐 왔을지 모른다. 행복에 겨워 살던 순간이 그저 일상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나에게 어린이라는 이름으로 서려 있었으니까.
그때의 기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유년의 다복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최대치는 정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로의 회귀, 그때의 행복감을 조금씩 꺼내보는 것만으로 어른으로써의 보상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까? 해외여행도, 캠핑도 모두 새로운 행복을 찾으러 떠나는 여정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며 미소 짓는 부모님을 보며, 결국에는 돌아가야 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쁨의 최대치가 머물던 곳에서 살겠다는 의지 때문이 아니었을까.
손바닥 위에 있던 고디는 어느새 선글라스를 벗고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나도 잡았다고 손들고 외치고 싶었지만, 조용히 물속 바위에 붙여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이 유난히 더 차가워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더위는 잊은 지 오래인 듯했다. 계곡에 몸을 담그고 나서부터가 아니었을까. 어렸을 적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날 때까지 놀았던 이유는 더위를 식히기 위해서가 아니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