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비가 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감성이 말랑하다. 언제부터가 비만 오면 닫혀있던 가슴이 열리고 내리는 비를 마음껏 받아내는 상상을 한다.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뜨거운 불판에 물방울이 튀는 것처럼, 치지직 소리가 날 것만 같다. 비를 맞고 싶은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옛 생각에 잠기고 만다. 옅은 비 냄새와 투닥이는 빗소리가 더 자극적인 추억을 소환하는 것 같다. 쉽게 슬펐다가 쉽게 풀어지며 웃기도 한다. 하늘에서 물이 떨어진다는 사실에서 어떤 위안을 얻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비가 무척이나 맞고 싶었다.
빗물이 더위를 한 꺼풀 벗겨 놓았다. 드센 소리로 이중창도 뚫어내던 매미 울음소리도, 밤잠을 설쳐야 했던 끈적한 열대야도 한걸음 물러났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만 오면 서로 연락하지 않기로 암묵적인 약속이라도 한 걸까. 전화도 문자도 사람도 비만 오면 나를 찾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여유를 흠뻑 만끽할 수 있었다. 20여 년 전, 장마와 태풍이 겹겹이 몰아치던 때가 떠오른다. 꼭 이맘때쯤인 것으로 기억한다. 우산을 쓴 채 가족의 호위를 받으며 군대에 입대했다. 멈출 줄 모르던 장대비 덕분에 훈련 중 반을 실내에서 보내야 했다. 가장 어려운 코스인 유격과 행군마저도 시원한 빗물의 자장 안에서 맥을 추지 못했다. 초주검 상태로 고통을 감내해야 할 순간이 빗물로 흐려진듯했다. 스무 살 훈련소의 한 달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짧고 살갑게 지나갔다.
훈련이 끝나자, 바로 재해 현장에 투입되었다. 바로 태풍 ‘매미’가 할퀴고 간 곳곳을 주워 담아야 했다. 오로지 삽 한 자루에 의존하며 흙을 파내고 잔해를 치웠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눈에는 땀이 들어가 쉴 새 없이 따가웠고, 사지가 몸과 만나는 곳곳에는 땀띠가 났다. 그때 수시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내리쬐던 건조함이 원망스러웠다. 비는 결국 다시 오지 않았다. 그때 비가 나를 살렸기도 했지만 반만 살려 놓기도 했다. 마치 비를 맞아 고통이든 여유든 흠뻑 젖은 자에게 내리는 형벌 같아서 더 소름 돋았다. 순식간에 집이 없어진 주민들의 애처로운 눈빛을 뒤로한 채 삽질에 집중해야 했다.
지금도 밖에는 비가 온다. 빗소리는 잦아들 줄 몰랐다. 창문을 조금 더 열어 빗소리가 방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늦은 밤 빗소리를 듣다 보면 낮게 흐느껴 우는 소리 같기도 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방안을 더욱 무겁게 적시며 한참을 더 울었던 것 같다. 내가 잠들고 나서도 옅은 빗소리에 깨곤 했으니까. 눈을 떴지만 감은 것 같은 기분은 빗소리 때문에 더욱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쏴아아,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오감은 과거에 잠식당하는 중이다. 과거에서 과거로, 더 과거 어딘가에 걸터앉는다. 내가 가장 포근했다고 생각하는 어느 날 추억 속으로 나를 데려다 놓는다.
폭우처럼 쏟아질수록 마음은 더 안달 난다. 모기장을 뚫고 아름아름 들어오는 빗물을 맞았다. 창문을 닫아야겠다 하면서도, 더 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 잡힌다. 시원한 물줄기가 바닥을 때리는 소리와 빗물을 더 맞이하고 싶어서다. 잠시간은 괜찮지 않을까 하다가도 돌아오는 와이프의 따가운 시선에 이내 포기하고 만다. 먼발치에서 우산과 장화로 완전 무장한 아이가 빗물을 뚫고 찰박찰박 뛰노는 모습으로 대리 만족할 뿐이다.
어떻게 하면 비를 흠뻑 맞을 수 있을까? 청승맞지 않고, 감기도 걸리지 않으며, 탈모도 생기지 않는 방법으로 비를 잔뜩 맞고 싶었다. 그런 채로 곳곳을 걸어 다니며 다양한 방법으로 물이 떨어지는 장면을 담아내고 싶었다.
밤새 이어진 폭우로 인해 많은 이들의 삶터가 물에 잠기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슴 아픈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아침 뉴스 속 모습은 그저 화면 속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무너진 모습이었었습니다. 저 역시 그 비극의 현장에서 복구를 함께했던 날들이 떠오릅니다. 그 시간 동안 마주한 눈빛, 손길, 무너진 터전 속에서도 서로를 붙드는 힘을 느꼈습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겠지만, 언젠가는 햇살이 다시 마음속에 머무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