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같은 이야기 그 마지막.
현실에서 흔히 접하는 이야기도 소설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 같아도 그 내막을 둘러보면 겹겹이 둘러친 감정선이 포개져 있었다. 실제로 특별한 경험 보다 별것 아닌 일에 더 많이 웃고 울기도 하는 것 같다. 이유 없는 감정은 없다. 발생하기 전에는 복선도 있고, 기복도 있었지만 눈치채지 못했을 뿐. 전지적 작가 시점이든, 주인공 시점이든 다시 돌아보지 않아서 그렇다. 글로 써보았다면 욱하는 성격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을 거다.
글로 옮긴다는 행위에서 특별한 경험을 했다. 그것도 소설처럼 쓰려고 하다 보니 묘사가 필요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흘기던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악착같이 보고 또 봤다. 눈앞에 펼쳐진 감정, 감각 그리고 장면을 함께 갈무리하는 버릇이 생겼다. 훗날 글로 옮길 때 잘려나간 기억을 상상으로 채우는 일은 없어야 했다. 나는 소설처럼 일상을 담고 싶은 것이지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런 습관은 시간에 흐름을 무너뜨리는 효과가 있었다. 복기를 위해 많은 감각을 동원해야 했고 일상을 대하는 자세가 바뀌었다. 글로써 다시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하다 보면 그때 그 상황의 진실이 보이기 시작한다. 활자에 담고, 문장과 문장사이에 여백을 어떻게 남겨둘 것인지 고민했다. 영상을 보고 번역하듯 머릿속에서는 재생과 되감기를 반복했다. 한참을 반복하면 시간이 느려지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시선이 이동한다. 나를 둘러싼 인물과 장소, 물건이 시선의 역순으로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 한정된 기억으로 반복하는 게 힘들었던지, 그냥 네 마음대로 하라는 식에 관리자 권한을 부여하는 것 같기도.
이런 순간이 너무 좋다. 머릿속에 소설책을 읽을 때처럼, 장면이 재구성되고 인물의 성격이 다시금 떠오른다. 러너에게 오는 러너스하이처럼, 쓰는 이에게 오는 라이터스하이 같다. 막연하기만 하던 기쁨과 슬픔의 윤곽이 선명해진다. 잘 짜인 소설에서 느끼는 주인공의 책략을 파악한 것보다, 일상에서 맛보는 소소하지만 내가 알아차린 의도를 파악하는 게 더 좋았다. 분명 원래 있었지만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진심을 진실을, 그리고 삶의 동력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는 또 다른 방법으로 삶을 풀어나갈까 한다. 꼭 소설 같지 않아도 좋다. 그렇지만 그냥 버려지는 감정을 더욱더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나아가 한 가지 더. 나에게는 소설이 소질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꼭 소설을 잘 써야지만 글도 잘 쓰는 것은 아니니까. 그냥 내 페이스대로 쓰고 싶은 대로 쓰면서 글에 본질을 찾는 게 우선 아닐까 한다.
일주일 동안 푹 쉬었습니다. 물놀이도 가고, 휴가철 출근도 하고. 그야말로 좌충우돌의 휴가를 보낸 것 같습니다. 더위가 정신과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똑똑히 알아차렸습니다. 글도 며칠 쉬었지만, 입과 손이 근질거려 참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어찌 됐건 다시 책과 글 앞에 서있습니다. 결국 저는 글로써 쉼에 마무리를 한다는 가설이 진심이 되었네요. 날이 무척이나 덥습니다. 아무쪼록 모두 건강 관리 잘하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