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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예 Mar 21. 2022

설원은 하얗고

눈이 켜켜이 덮였을 뿐 모두 그대로였다

1.

내내 앉아 있다가 허리를 펴니 문득 창밖이 밝다. 이렇게 밝을 시간대가 아닐 텐데? 창문을 열어보니 과연 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대설주의보 재난문자가 와 있었다. 어쩐지 많이 오는 것 같더라. 눈이 오는 김에 간식으로 호떡을 구워 먹기로 했다. 팬을 달구고 냉동된 호떡을 구우면서 생각했다. 내일은 다시 추워질까? 이번에 온 눈은 또 얼마간 얼어 있을까? 언제까지 남아 있을까?


호떡을 뒤집으면서 생각을 곱씹었다. 서울 사람들은 눈을 못 치우는 건지 안 치우는 건지, 저번에 온 눈도 아직 골목길에 그대로 남아 있던데 이번에 또 눈이 와서 다시 얼겠네. 저번에 엄마랑 한 통화도 생각이 났다.


-엄마 서울은 눈 오고 며칠이 지나도 눈이 다 그대로야, 아직도 얼어있어 이러다 실족사하겠는데

-안 넘어지게 조심해

-아니 나 말고 난 강원도 사람이잖아 난 슬리퍼를 신고 걸어도 안 넘어질 자신 있어 서울 사람들이 실족사할까 봐 그러지


호떡 겉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불을 끄고 접시에 덜어 먹기 편하게 피자처럼 잘랐다. 음 역시 달았다.







2.

눈이 오는 날에는 덜 춥다. 항상 하늘도 붉다. 어둡지 않은 저녁 창공 사이로 흰 눈들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에 뽀득뽀득 발자국 남기는 걸 좋아했다. 뽀드득, 뒷발부터 힘을 실어서 앞발로 중심을 옮겨 뽀드득, 달에 발자국을 남기기라도 하는 듯 신중하게 발을 내디뎠다. 평소에는 그닥 신경 쓰지 않았던, 내 신발 밑창이 이렇게 생겼구나. 패인 발자국이 흩날리는 눈으로 금세 다시 채워질 만큼 눈이 많이 오는 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나 때는 말이야 눈이 무릎까지 와도 학교에 갔다. 물론 그때는 내가 키가 작았으니 그닥 엄청난 폭설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눈이 무릎까지 와도 길을 개척해서 학교에 갔다. 정말 달에 간 것처럼, 내가 걸으면 일단 그게 길이 되는 거였다. 힘들게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이 모두 나와 교문부터 눈을 치우고 계셨다. 눈이 너무 많이 오는 날은 여유롭게 일어나 휴교를 기대하며 일단 아침을 먹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밥을 먹고 있으면 아파트 안내방송으로 휴교 방송이 나왔다. 지금처럼 어플 알림이 간다거나, 단체 문자가 간다거나 그런 때가 아니라서 아파트 방송으로 휴교 안내가 나왔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알립니다. 00 고등학교는 금일 폭설로 인해 휴교입니다. 아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알립니다. 00초등학교는 금일 폭설로 인해 휴교입니다.


설마 우리 학교는 휴교를 안 하나? 그럴 리가 없는데. 나만 학교 가면 너무한 거 아니야? 우걱우걱 밥을 먹고 있으면 그제서야 우리 학교 이름이 나왔다.

 **초등학교는 금일 폭설로 인해 휴교입니다.


예! 기분이 좋아진 나는 그제서야 안심하고 다시 방에 들어가 마저 늦잠을 잤다. 한참 자고 일어나면 눈이 어느 정도 그치고 길도 어느 정도 치워져 있었다. 그러면 내복에 스키바지에 패딩에 모자에 장갑을 끼고 방한부츠를 신고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 동생과 학교 운동장에 나가서 놀았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역시나,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을 내가 처음 밟는 것이다. 눈싸움도 하고, 이글루도 만들고(물론 끈기가 없어서 눈 벽돌 한 5개쯤 만들다가 항상 포기했다) 그러고 놀았던 것 같다. 집에 오면 머리카락에도 신발에 눈이 잔뜩 묻어 현관에 들어오기 전 복도에 신문지를 펴고 탈탈탈! 털고 나서야 들어와도 좋다는 엄마의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눈이 녹은 검은 물로 현관이 어지러웠다.





3.

2학기를 끝낸 겨울의 나는 중국을 마저 여행했다. 호도협에서 샹그리라로 가는 버스에서는 잠이 들었다. 어느 순간 딱 깨어났는데 버스 밖으로 보이는 온 세상이 정말 다 새하얀 눈이었다. 시야에는 도로와 산 뿐이었는데 온통 눈밭이었다.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나니 설국이었다.

그 문장이 문득 생각이 났다.







4.

아빠는 늘 바빴다. 게다가 난 외동이 아니라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어서, 아빠랑 단둘이 뭘 한 추억은 많지 않다. 아빠랑 시간을 아예 안 보낸 건 아닌데, 그렇다 해도 동생과 셋이 뭘 한 기억들이지 아빠랑만 공유하는 기억은 적다.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기억을 끄집어 보자면,

내가 4살쯤, 동생이 아직 너무 어릴 때 눈이 또 엄청 많이 온 날이 있다. 아빠는 집에 있던 썰매를 꺼내어 날 데리고 집 앞 공터에 갔다. (강원도에서 유년시절 보냈으면 집에 플라스틱 눈썰매 하나쯤은 있겠지) 아빠랑 둘이 눈사람도 만들고, 아빠가 썰매도 끌어주고, 눈싸움도 했다.

유년의 파편들.


안타깝게도 이제 나는 동심을 잃고 속세에 찌들었는지 그시절만큼 신나지는 않는다. 폭설이 내리는 겨울날이면 또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먹으러 나온다. 하늘에 구멍이 난 듯이 쏟아지는 눈을 보며 '저게 언제 그칠지, 언제 다 치울지' 생각을 하며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다가 질문을 한다.


-많이 오네. 눈 언제까지 온대?





5.

설원은 상념 속에서 나의 잠을 깨웠다. 녹지 않는 것들이 있다면, 여전한 것들이 있다면 그간 몸으로 체득한 눈길에서 넘어지지 않고 잘 걷는 요령, 눈 오는 날 유독 발그레한 저녁 하늘, 그리고 눈밭에 흩뿌린 발자국들 뭐 그런 게 남아있겠지.

아빠는 베란다 앞에 서서 뒷짐을 지고 밖에 눈 오는 걸 지켜보다가 대답을 한다.


-딸 니 기억 나니 우리 504동 살 때 효상이 아직 어리고 너 요만할 때 아빠가 너 데리고 나가서 우리 둘이 눈사람 만든 적 있잖아






눈이 켜켜이 덮였을 뿐 모두 그대로였다.

발자국들을 뒤로하고 나는 불현듯 터널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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