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오후 보호구역 뒤쪽의 작은 길을 걸었다. 숲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멀리서 새가 한 번 울고 나면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흙길은 햇빛을 받아 따뜻해져 있었다.
천천히 걸었다. 코끼리를 보고 난 뒤라 그런지 마음이 조금 느려진 것 같았다.
문득 어린 시절 미술 시간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교실이었다. 창문이 길게 이어져 있었고 햇빛이 책상 위로 기울어 들어오고 있었다. 선생님은 오늘은 수채화를 그리는 날이라고 말했다.
새로 산 붓을 물통에 담갔다. 종이 위에는 연필로 가볍게 나무를 그려 놓았다. 잎이 많은 나무였다. 색을 칠하면 멋있어 보일 것 같았다.
붓에 물을 충분히 묻혔다. 그리고 초록색 물감을 살짝 찍었다. 붓이 종이에 닿는 순간 색이 천천히 퍼졌다.
그 장면이 마음에 들었다.
그때 누군가 내 책상을 살짝 건드렸다.
물통이 넘어졌다.
맑은 물이 종이 위로 한 번에 흘러내렸다. 초록색이 순식간에 번졌다. 나무의 윤곽이 흐려졌다. 색이 서로 섞이면서 종이는 금방 젖어 버렸다.
움직이지 못했다.
교실 안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누군가는 웃고 있었고, 누군가는 물감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내 자리만 조용한 것처럼 느껴졌다.
종이를 한참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분명히 나무였던 그림이 이제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얼룩이 되어 있었다.
“괜찮아.”
선생님이 지나가며 말했다.
“수채화는 원래 번지기도 해.”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시 붓을 들지 않았다.
그날 이후 수채화를 거의 그리지 않았다.
숲길 위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바람이 나무 사이를 지나갔다. 잎들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문득 어린 시절의 그 종이가 떠올랐다.
그때는 그림이 망가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종이 위에는 여전히 색이 남아 있었다. 다만 내가 예상했던 모양이 아니었을 뿐이었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숲 끝에서 코끼리 한 마리가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햇빛이 코끼리의 등에 떨어지고 있었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코끼리는 아무것도 망가지지 않았다는 듯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