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결과
멍하니.
천장의 형광등만 바라보고 있자니 불빛에 몸을 던지는 날벌레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밝은 빛만을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모든 주변은 컴컴해진다. 그저 나를 죽일 결과만 남을 것임을 막연히 느끼면서도 그 유혹을 쉽사리 끊어내지 못하는 우리의 어리석음에 나는 또 속는다.
내 기억 속으로 매일같이 돌진하고 벌레는 뜨거운 전등에 매일같이 부딪힌다. 다음 해가 떠서 날이 밝을 때까지 쉬지 않고 주변의 어둠을 삼킨 빛으로 떨어진다. 너무 오래 붙어있어서 이제 등의 감촉도 잘 느껴지지 않는 침대에 눕는다. 엉덩이 근육이 저릿하다. 눈앞의 전부인 천장을 바라보다 피로를 느껴야만 할 것 같으면 눈을 감는다. 달라진 건 없다. 눈꺼풀이 내려앉아도 나는 가위에 눌린 것처럼 생생한 화면을 눈 앞에 띄운다. 계속 끊임없이 재생되는 잘린 그림들은 해가 다시 창문 밖에 얼굴을 들이밀 때까지 이어진다.
난간 위에 섰을 때는 내 발 밑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한걸음 내딛으면 더 가라앉을 바닥이 없을 거란 믿음으로 두 다리는 운명의 기로에 놓였다. 방 불을 보고 달려든 벌레들은 웬일로 열린 방충망을 기쁜 마음으로 넘어 하나둘 흰 천장으로 달라붙는다. 건너편 아파트 창들을 죽 훑다가 그 안에 벌레마냥 들어있는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본다. 그 안전한 고치에서 나가려는 걸까. 둥지를 거부하고 뛰어내리려는 내가 처량해서 다리를 접고 걸터앉았다. 이 순간에도 살겠다고 창틀을 부여잡은 손마디가 하얗다.
엉덩이를 차가운 쇠창살에 붙이니 허공에 붕 뜬 발이 공기를 차는 것이 느껴졌고 새삼 18층의 높이를 실감했다. 물리적 높이는 수년에 걸쳐 학습된 짓눌려온 내 공포를 상기시키고, 나는 평소와 같이 저항하지 않았다. 저항할 힘이 없다. 그대로 마디마디를 떨며 침대 위로 떨어졌다. 다시 무기력한 침대 위로 돌아온 거다. 마지막은 내 의지로 빌어먹을 몸뚱이를 움직이려 했다. 약을, 구석구석에서 뒤졌다. 수면제, 수면유도제, 감기약, 소화제, 근육이완제, 마약성 진통제. 몽땅 긁어모으니 봉지만 수북했다. 뜯는 족족 삼켰다. 나중에는 물도 없이 삼켰다. 눈물도 안 났다. 오직 하나만 생각한다. 죽어야 한다. 죽어야 한다. 죽어야 한다.
평소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려 다른 세상에서 돌아온다. 잠에서 깨서 몽롱한 정신으로 이불과 바닥에 흩뿌려진 약봉지를 힘없이 움켜쥐니 그 비참함은 지금까지 쌓아온 비참함과는 비교가 되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