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왜 입을 것인가
나는 내가 벌거숭이였던 시절을 알지 못한다.
옛날 사람이었던 우리 부모님은 아들이 아닌 딸에게 탄생 1주년 기념의 올누드 사진을 남겨주지 않았다. 대신 엄마가 손뜨개질한 하얀 크로셰 모자와 케이프를 입고서, 아빠의 손으로 꽃나무 아래 들쳐 올려져 찍은 사진이 나의 돌 무렵 모습이다. 사진을 통해 구성된 이미지든 나의 기억에 직접 의존해서든. 나는 마치 옷 입은 채 태어난 사람처럼 언제나 옷 속에 있었다.
사람이 왜 옷을 입어야 하는지 혹은 인류가 언제부터 옷을 입어왔는지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나는 '이 옷을 입고 싶다!'는 영유아 시절의 강렬한 감정을 기억한다. 기어이 이 옷을 입겠다며 고집부렸던 가장 오래된 기억은, 목둘레와 소매 둘레에 프릴이 달린 하얀 블라우스와 노란색 미니 원피스 차림이었다. 목에는 네이비색 얇은 보우타이를 매고, 노란 머리핀과 하얀 구두까지를 한 세트로 여겼다. 대략 만 3-4세부터 입기 시작했는데 어찌나 애착이 컸던지, 키가 훌쩍 자라 원피스 밑으로 엉덩이가 다 보이는 대여섯 살이 되도록 그 옷을 즐겨 입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옷을 입었을 때 사람들이 '예쁘다' '귀엽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좋았었던 것 같다. 나는 아마도 어떤 옷차림이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옷차림으로 인한 타인의 긍정적인 반응에 도취되어 있었을 것이다.
자의식이 생기고 나서 대개는 좋아하는 옷을 선택했다. 때때로 소속된 집단, 경제적 상황, 사회적 통념 때문에 원치 않는 것을 입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나는 늘 옷을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곰돌이가 그려진 내복, 노란 유치원 모자와 체크무늬 케이프, 스누피가 그려진 분홍 수영복, 스노 진과 폴로티셔츠, 자주색 교복, 와이드 팬츠와 배꼽티, 찢어진 스키니 진과 바이커 재킷, 오프 숄더의 웨딩드레스, 오버사이즈 셔츠와 스니커즈,...
기억에 남는 특별한 날에도 또는 보통의 소소한 날에도 언제나 무언가를 입고 있었다.
당신이 그 옷을 선택한 이유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와 D사이의 C'라고 말했다. 인간은 태어나(Birth) 죽는 순간까지(Death) 매 순간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다(Choice). 인간은 조금 더 좋은 선택들을 함으로써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기를 희망하며, 때로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달리거나 경쟁한다.
지금 당신이 입은 옷은 어떠한가?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는가. 혹은 상황에 맞는 적절한 선택이었는가. 아니면 선택의 과정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관습처럼 걸친 것인가.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든,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은 우리 자신의 선택이다. 내가 하는 일, 내가 만나는 사람, 나의 신념, 그날의 날씨와 나의 기분. 내가 입은 옷은 내 삶을 이루는 무수한 선택과 맞물려 결정하는 또 하나의 선택이다.
바꿔 말하면 옷은 나의 직업, 내가 속한 집단, 나의 가치관과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옷을 통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입고 있는 옷이 한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속성에 대해, 셰익스피어는 '옷은 그 사람의 영혼'이라 했고, 심리학자 제니퍼 바움가르트너는 '옷은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는 침묵의 언어'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해석을 두고 어떤 이들은, 옷에 당찮은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옷의 중요도가 필요 이상으로 격상되는 듯 못마땅해한다. 그리하여 옷은 우리의 외피에 불과할 뿐, 내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우리의 이미지는 우리의 실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옷을 통해 자신을 원하는 방식으로 드러낼 수 있으며,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이미지 형성에 공을 들인다. 이미지가 소통의 큰 축을 담당하는 오늘날, 패션은 가장 즉각적인 시각 이미지로서 나와 타인을 구별 짓는다. 다시 말해 옷은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기호이며, 내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옷은 그 사람의 영혼이다
그러므로 옷은 외피일 뿐이라고. 나의 실체와 상관없다고. 더 이상 얕잡아 보지 말자. 내가 선택한 옷이 나를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 찬찬히 들여다보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내 옷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있는지 살피는 것으로부터 자기 배려를 시작할 수 있다.
옷의 이상한 힘
옷에는 참으로 이상한 힘이 있다.
분주한 아침에 급하게 골라 입은 옷이 썩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불편할 때는 하루 종일 기분이 가라앉는다. 반대로 어떤 날은 쇼윈도에 비친 내 옷차림이 근사해 보여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솟기도 한다. 패션의 선택은 취향의 문제일 뿐 아니라 내 기분을 다독이고 챙기는 자기 배려이다. 밝은 옷은 유쾌한 감정을, 부드럽고 따뜻한 옷은 안락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패션을 통해 내가 바라는 이상적 외모에 가까워질수록 자존감이 높아지고, 옷차림으로 외모를 관리하는 행동 자체만으로도 자아효능감이 높아진다.
또한 옷은 사람의 태도를 바꾼다. 재투성이 신데렐라가 무도회 복으로 갈아입었을 때 현실을 박차고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말을 더듬던 소심한 클라크가 빨간 슈퍼맨 망토를 걸치면 대범 해지는 것처럼 옷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옷이 사람을 만든다
'옷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우리 속담 '옷이 날개다'와 같은 영어권 표현이다. 스위스의 작가 고트프리트 켈러의 소설《옷이 사람을 만든다 (Kleider machen Leute, Clothes make the man, 1874)》에서 유래되었는데, 옷이 인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넘어서서 옷 입은 사람의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옷차림이 단지 쾌/불쾌의 기분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행동에 변화를 준다는 것은 무수한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1979년 미국의 두 심리학자의 '제복 효과' 실험이다. 존슨(D.R. Johnson)과 다우닝(L.L. Downing)은 60명의 학생에게 각각 백인우월주의 집단인 KKK의 복장과 간호사 제복을 입게 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 문제를 내어 그가 틀리면 6단계의 전기쇼크 버튼 중 하나를 골라 벌을 주게 했는데 KKK 복장의 실험 참가자는 강한 전기충격을, 간호사 복장의 참가자는 약한 전기충격을 선택했다. 이 실험은 몰개성화와 사회적 또는 반사회적 행동에 관한 연구였지만, 잠시 입는 옷차림 조차도 타인에 대한 배려심과 윤리의식 등 우리의 심리와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사람은 대개 편하고 캐주얼한 복장을 했을 때는 구체적으로 사고하고, 포멀 한 복장을 했을 때는 추상적으로 생각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동료나 친구들보다 더 전문가처럼 갖춰 입었을 때 전체적인 관점으로 해당 문제를 바라보고 부분과 부분을 연결해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보이며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옷 입은 생명체, 인간!
집 짓는 동물은 있어도, 옷 입은 동물은 오직 인간뿐이다. 인간은 날 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닌, 다른 사물을 제 몸에 두르고 감싸며 살아간다.
인간은 평생을 옷 속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쪽 세상에 나올 때는 배냇저고리를 입고, 저쪽 세상으로 떠날 때는 수의로 갈아입는다. 옷은 우리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함께하며 희로애락의 감정을 더욱 뚜렷하게 기록한다. 의미 있는 날을 축하하기 위해 입었던 옷, 슬픔과 애도를 표하기 위해 입었던 옷, 유대감과 응원을 표현하기 위해 입었던 옷. 등등 어떤 특별한 날을 위한 옷들은 감정을 더욱 증폭시키고, 그날의 분위기와 기분을 더욱 강하게 뇌리에 남긴다.
특별할 것이라고 없는, 보통의 날에도 우리는 언제나 옷 속에 있다. 물처럼 혹은 공기처럼.
옷은 우리 몸을 둘러싸고 일상에 녹아 기분을 어루만지고 내 태도를 바꾸기도 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돕는다. 그리하여 어떤 옷을 입는가는 어떤 삶을 기록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로 연결될 수 있다.
자, 오늘 당신은 어떤 옷을 입을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