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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Sep 25. 2022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오픈런의 심리학

나는 샤넬 백이 없다.

한 때는 나도 샤넬 백 하나쯤 갖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왜냐하면 멋을 아는 사람이라면 꼭 갖춰야 할 '머스트 해브 아이템' 중 하나라고들 하니까, 멋쟁이 인증처럼 느껴졌다랄까. 아무튼 그랬다.

20대 때는 아빠 찬스로 샤넬 백을 사거나 엄마한테 물려받는 친구들이 부러워 질투가 났다. 나는 어느덧 수백만 원짜리 가방을 스스로 살 수 있을 만큼 돈을 벌기 시작했지만, 결국은 샤넬 백을 사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의 미적 기준은 이상하게도 다른 곳을 향하고 있어서, 몇 번이고 사려고 작정하고 나서도 조금 더 삐딱하고 중성적인 무드의 브랜드와 상품으로 매번 마음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택은 나의 삶과 취향이 샤넬과 어울릴 만큼 단정하거나 우아하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아니, 그냥 여우가 신포도 보듯 나에게는 샤넬을 물려줄 딸이 없는 탓이라고 해두자.


흔히들 '에루샤'라고 묶어서 지칭하는 에르메스, 루이뷔통, 샤넬은 럭셔리 3 대장으로 통한다. 그래서 국내 백화점은 세 브랜드의 입점을 유치했느냐의 여부로 그 수준을 평가받는다. 이들 브랜드는 흔히 럭셔리의 럭셔리라고 부르며 상품의 가격 또한 여타 고가 브랜드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쉽게 비교해보자면, 손바닥 두 개 크기의 퀼팅 가죽 숄더백을 구찌에서는 약 300~400만 원에 팔고 샤넬은 약 500~600만 원에 판매한다. 이러한 가격의 격차는 원자재나 제조 공법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발생한다. 그것은 브랜드의 가치이다.




도대체 브랜드가 뭔데?

패션 산업은 브랜딩을 통해 제품 본연의 내재적 가치에 외재적 가치라는 부가 요소를 덧붙이며 확장해왔다. 

디자인, 기능 및 품질과 같이 제품이 지닌 고유의 특성을 내재적 가치라고 한다면, 외재적 가치는 상징과 이미지라고 설명할 수 있다. 제품을 소비할 때 소비자가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이나 우월감 같은 감정적 요소, 고가의 제품을 소유함으로써 드러내는 경제력과 같은 상징적 요소가 외재적 가치에 해당한다.


특히 럭셔리 패션 상품과 같은 사치재를 소비할 때, 우리는 외재적 가치에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 우리는 이미 수백, 수천만 원짜리 가방 가격 중 제품 자체의 원가는 20~30%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에르메스 가방을, 그러니까 아무리 돈이 많다한들 아무 때나 살 수 없을뿐더러 몇 년 동안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으듯 구두나 그릇, 스카프 등으로 가방 값에 상응하는 잡다구리 한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브랜드에 대한 팬심을 보여야만 결국 가방 구매자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그 에르메스! 를 어쩌다 산다고 치자. 내가 지불해야 할 가방 가격 1천5백만 원 중 제품의 원가는 약 2백10만 원 정도이다. 2021년 금융감독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1천5백만 원짜리 가방의 구매 가격 중 8백20만 원가량은 에르메스 코리아의 이익이 된다. 다시 말하면 에르메스 코리아는 약 6백80만 원의 가격에 가방을 싱가포르 법인을 통해 국내로 들여와 1천5백만 원에 판매한다. 이 중 제품의 생산원가는 약 31%에 해당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패션은 그런 것이라는 것을.

원가의 7배가 넘는 가격의 가방 하나를 사기 위해. 또 그만큼의 가격에 해당하는 다른 물건을 사 모으는 방식으로 구매력을 인정받고 나서. 평균 1년 6개월을 기다려 가방을 사는 사람들을. 나는 비난하고 싶지 않다. 소위 '명품'이란 것들이 사실 그럴만한 값어치가 없다고 폄하하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최고의 제품을 개발하기까지 투자된 수많은 이들의 보이지 않는 피˙땀˙눈물과 자긍심이 무분별하게 평가절하되는 것을 서운해하는 쪽이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소비자들이 오픈런을 자처하며 외재적 가치에 큰 비용을 지불하도록 만드는 힘. 이러한 신드롬을 일으키는 브랜드의 막강한 영향력이다.


럭셔리 패션은 엄청난 고부가가치 산업이고, 잘 된 브랜딩은 매우 큰 경제효과를 낳는다. 혁신적 비전으로 도전했던 창립 스토리,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철저한 장인정신, 압도적 기술력을 발전시키기 위한 지속적 연구, 브랜드의 정체성에 기반한 확고한 스타일, 오랜 역사를 통해 수많은 유명인들과 얽힌 브랜드 일화와 헤리티지. 이 모든 것이 잘 가공된 정보로 소비자에게 전달될 때 럭셔리 브랜드는 큰 영향력을 갖는다. 


그러나 오늘날 모든 럭셔리 브랜드가 앞서 언급한 요소들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대부분의 소비자가 브랜드의 역사성과 디자인 철학 등에 관심을 두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소비자가 사치재를 욕망하게 하는 것은 가장 강력한 동인은 무엇일까? 많은 학자들은 상품을 소유할 때 획득하는 '상징' 혹은 '기호'라고 말한다.  


소비의 사회에서 현대인들이 소비하는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기호이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철저한 장인정신, 6대에 걸친 역사성, 왕족을 위한 오마주. 이게 에르메스식 브랜딩이다. (왼쪽부터 ©Alfredo Piola, ©Hermes, ©Elisa Valenzuela)




스노비즘, 어쩌면 페티시즘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사물을 소비함으로써 자신을 표현하는 '이미지의 소비'를 한다. 즉 사물 자체의 기능 혹은 실재가 아닌 신화적 상징을 지닌 이미지에 지불한다. 오늘날 모든 욕망˙필요˙관계˙계획 ˙열정은 기호로 추상화되고 이미지로 상징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행복˙성공˙지위˙명성˙현대성 등을 상징하는 사물을 소비함으로써 이미지를 지니거나 드러낸다.  


'나 이런 사람이야~!'를 드러내는 효과적인 장치로서 패션만 한 것이 없다.

패션은 착용자에 대한 강력하고 즉각적인 시각적 단서를 제공한다. 성별, 연령, 직업, 경제력, 소속 계층, 취향, 신념 등 패션은 그가 누구인지 말해준다. 또한 개인이 추구하는 이미지 가치를 획득하기에 패션은 상대적으로 쉽다. 때때로 패션은 별달리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 더 나은 상태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된다. 집이나 자동차처럼 비싸지 않고, 가구나 예술작품처럼 옮기기 힘든 것도 아니니까.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는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사회적 사다리의 어딘가에 속해 있다. 그래서 수세기 전부터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보다 더 윗 칸으로 이동하기를 열망하고, 자신보다 더 나은 지위 집단의 이미지를 모방해왔다. 부유층은 사치적 소비 탐닉을 통해 자신이 가진 경제력과 지위를 과시하며 중간층과 구별되고자 한다. 중간 계층은 부유층의 소비를 모방함으로써 하류층과 구별 짓고, 또 하류층은 중간계층을 모방한다.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인간은 어떤 측면으로든 자신보다 더 나은 누군가의 삶과 취향을 모방하여 필요 이상의 것을 소비한다. 결국 가장 빈곤한 계층도 전쟁 중이거나 아사 직전의 극단적 상황이 아니라면 누군가를 모방하여 과시적 소비(conspicious consumption)를 하게 된다. 기록에 의하면 19세기 영국의 빈곤층과 노동계급도 빚을 내어 옷과 신발을 사는 과시적 소비를 했다. 지역사회 모두가 서로를 드러내는 일요일만큼은 말끔하고 단정한 옷차림으로 교회에 나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기 위한 아낌없는 투자였던 것이다.


이 짧은 예시를 더 학술적으로 설명하자면 경제학자 베블런(Thorstein Bunde Veblen)의 '과시적 소비' 이론,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구별 짓기' 이론, 문화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모방적 욕망' 이론을 대입할 수 있다. 그러나 어려운 얘기를 굳이 빌려오지 않더라도 우리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들여다보면 이 모든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럭셔리 브랜드의 가방, 솔직히 왜 갖고 싶은 건데?

실제의 나보다 더 근사하고 세련되거나 지적으로 보이고 싶고. 이왕이면 더 부유하고 성공한 사람으로 평가받으면 좋을 테고. 좀 더 특별하고 귀한 사람으로 존중받고자 하며. 어떤 상품을 가진 누군가의 취향이 엄청 멋져 보였거나 내가 동경하는 누군가가 어떤 상품은 꼭 사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하필 그 상품이, 그 브랜드의 로고와 무드가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아 정신이 아득 해져버린 것이다. 마치 피할 수 없는 교통사고처럼. 내가 별다른 가진건 없지만 그렇다고 또 굶어 죽을 정도로 궁핍한 건 아니라서 다른 생활비를 조금 더 아껴 쓰면 감당할 수 있으니까. 사자!

허영 가득한 속물근성(snobbism), 사치품의 영험함을 경배하는 물신숭배(Fetishism)라고 손가락질해도 할 수 없다. 그것을 소유하거나 내보이며 누릴 기쁨과 만족감이라면 생산원가의 7~8배 정도는 지불할 수 있는 거지. 그럼! 


샤넬은 '아름다움은 권능'이며, 샤넬이 표상하는 우아함, 아름다움, 절제된 감성을 소유하라고 부추긴다. (사진 출처: chanel.com)




너의 죄책감을 사하노라

뭔가에 홀린 듯이, 나의 경제 수준보다 과도한 소비를 하고 나서 문득 정신이 되돌아오면 죄책감에 빠져들 수도 있다. 한국이 최빈국 중 하나였던 과거를 생생히 기억하는 부모세대의 교육으로 인해 우리는 과소비를 죄악시해 왔다. 아끼고 절약하며, 티끌이라도 모으는 것이 미덕이라 배웠다. 그러나 럭셔리의 럭셔리라 불리는 하이엔드 브랜드들은 마케팅 전략을 통해 이러한 과소비의 죄책감마저 사하여 준다.

예를 들어 에르메스는 아무리 주문량이 많아도 소량만 제작하는 원칙을 고수한다. 특별한 소수를 위한 것이기에 희소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다. 샤넬과 루이비통은 가격을 지속적으로 올린다. 브랜드에 진입하기 위한 가격 허들을 높여 상품 소유자에게 특별한 자격을 부여한다.

그리하여 소비자는 '오늘이 가장 싸다'라는 믿음 속에, 명품 브랜드 앞에 긴 줄을 선다. 브랜드가 만들어낸 이미지와 상징을 열망하는 사람들은 계속 증가하기에 럭셔리 중의 럭셔리는 감가상각의 원리를 비켜간다. 사용하다 되팔아도 몇 배의 수익을 얻을 수 있거나 최소한 구매 원가는 보전할 수 있다. 치열하게 달리고, 과도한 지출을 하는 행위는 정당하며 죄책감에 주눅 들 필요 없다. 당신은 특별하니까!  


노숙 줄 서기, 오픈런을 불사해야 얻을 수 있는 그것! 최근 희소가치와 리셀가 하락으로 곡소리 나지만 여전히 구매 원가는 건진다.(사진출처: 뉴스핌, 동아일보DB, 블룸버그)




잘 만들어진 브랜드의 신화적 서사, 판타지적 이미지는 그것을 소유한 소비자가 타인보다 얼마나 특별한지 지속적으로 속삭인다. 더 아름답고, 더 지적이며, 더 안목이 높거나, 더 강하고, 더 성공했으며, 더 매력적이거나. 그리하여 소비자 스스로가 특별한 사람이고 존중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혹은 그렇게 보이고 싶은 욕구에 거침없이 소비하도록 만든다. 개인은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자신이 열망하는 이미지를 획득해 마치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이쯤 되면 패션은 정말 '영혼의 갑옷'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럭셔리 브랜드의 전략, 사치재의 속성, 소비자의 군중심리와 상향 지향적 속물근성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나도 항상 그 소비자 군중 틈 속에서 갈팡질팡하고 있고, 이미지와 판타지로 현혹하는 브랜딩에 동참하며 월급 받는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다만 이제는 많은 사람이 열망하는 '영혼의 갑옷'이 우리나라에서 탄생하기를, 한국의 단단한 패션 브랜드가 긴 세월을 통해 진짜 서사와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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