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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Sep 03. 2022

이상한 패션 나라

표절, 패러디 그리고 오마주

21세기 초엽까지만 해도, 패션 디자이너에게 해외 출장이란 상품조사를 위한 것이었다.

아직 국내에 수입되지 않은 브랜드 혹은 그 상품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입어보며, 디자인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잘 기억하기 위해 피팅실에서 몰래 상품을 촬영하거나, 소재나 패턴 등을 참고해 샘플로 삼을만할 상품은 회사 비용으로 구매했다. 매우 부도덕한 행위일 수 있으나, 그때는 그것이 디자이너의 열정을 가늠하는 지표와 같았다. 출장에서 돌아오면 수천 장의 사진을 정리해서 최신 트렌드를 디자인실에 공유하고, 사비를 탈탈 털어 잔뜩 구매한 최신 상품을 동료들에게 소개하는 것으로. 나의 패션에 대한 열정과 회사에 대한 충심을 증명했다.


쫄보인 내가 쇼핑을 즐기는 돈 많은 관광객인 양 연기를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좀 더 솔직히 고백하면, 그런 식의 해외 출장은 나에게 너무나 큰 스트레스였다. 경험 많은 매장 종업원이라면 고객이 옷을 만지고 고르는 태도에서부터 쇼핑의 목적이 보일 것이고, 순수한 고객이 아님을 알아챌 것이다. 실제로 어떤 이들은 노골적으로 나에게 싫은 티를 내며 응대하지 않았고, 어떤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잠정 고객으로 대했다. 멋지고 세련된 공간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만날 때는 신나고 가슴이 뛰기도 하지만, 동시대 누군가의 창작물을 레퍼런스로 무언가를 또 창작해야 하는 상황은 참 싫었다. 나는 자괴감이 들었다.

이미 증명된 타사 케이스를 분석해야 소비자 니즈에 적중해 잘 팔리는 상품을 보다 빠르게 만들 수 있다는 산업 생태계 논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디자이너가 창의성의 열매를 맺도록 투자하고 기다리지 못하는 패션 비즈니스의 주기가 야속할 따름이었다.

타 기업의 디자인과 톤 앤 매너를 교묘하게 짜깁기하는 업계 종사자. 그리고 좋아하는 패션 브랜드의 최신 상품을 갖고 싶어 월급을 아낌없이 털어 넣는 충성스러운 고객. 그때 나는 실제로 그 둘 사이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모두 20여 년 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부끄러운 이야기였다.

지금은 한국에 수입되지 않은 브랜드는 거의 없을뿐더러, 홈페이지만 둘러봐도 상품에 이미지와 소재 정보가 매우 상세하게 공개되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몰래 사진을 찍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청담동 럭셔리 매장에서 공개적으로 상품 사진을 찍어도 말리는 사람이 없다.

정보는 모두에게 오픈되어 있고, 누구나 자기 의견을 낼 수 있으며, SNS나 미디어에 언급되고 화제성이 높아질수록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는 세상이다.




레플리카

레플리카(replica)의 원래 의미는 창작자가 스스로 제작한 사본이다. 이를테면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진본 대신 사본을 전시하거나, 패션 브랜드의 아카이브 중에서 의미 있는 모델을 재생산할 때 이것을 레플리카라고 부른다. 창작자가 스스로 제작하였다는 것, 그리고 사본이라는 점을 명시한다는 것에서 모조품(imitation)과는 구별된다.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는 1999년부터 독일군의 훈련 운동화에서 영감을 받아 스니커즈 모델을 선보였다. 1970년대 후반 서독 육군에게 보급되던 GAT(German Army Trainers)의 빈티지 상품을 구입해 텅에 숫자 라벨을 붙이고, 페인트로 칠하거나 그라피티를 추가하는 방식이었다. 이 모델에는 'REPLICA'라는 라벨이 신발 안창에 붙어 있는데, 레플리카 시리즈는 마르지엘라가 원본과 가장 유사한 재료와 기술을 사용해 다시 제조한 캡슐 컬렉션이다. 마르지엘라는 2000년대 중반부터 빈티지 상품 업사이클링이 아닌 자가 제조 방식으로 전환했고, 이 모델은 메종 마르지엘라의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마르지엘라의 모델은 라벨에 적힌 문자 그대로 레플리카이다. GAT를 원본으로 놓고 거의 그대로 복제한 사본 즉, 복제품이다. 그렇다면 독일군 운동화를 실제로 납품하던 제조사의 제품은 원본일까?


독일 구두 공의 두 아들이었던 루돌프 다슬러(Rudolf Dassler)와 아돌프 다슬러(Adolf Dassler)는 세계 제1차 대전 후 '다슬러 형제 신발 공장(Dassler Brothers Shoe Factory, Gebrüder Dassler Schuhfabrik)'을 함께 운영했다. 형제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스포츠 슈즈로써 입지를 다지며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때로 기대 이상의 성공은 구성원 사이의 불화를 일으킨다. 두 형제는 전쟁의 발발, 군대 징집 등을 겪으며 관계가 악화되어 갈라섰다. 형 루돌프의 회사명은 자신의 이름과 성을 축약한 루다(Ru-da)로 불리다 훗날 푸마(Puma)로 정착했고, 동생 아돌프 역시 자신의 이름을 줄여 아디다스(adi-das)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그 스포츠 웨어 브랜드, 푸마와 아디다스이다.


1970년대 후반, 서독 육군의 훈련용 운동화 납품건으로 계약을 체결하려 푸마와 아디다스는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러나 독일 국방부 공식 기록에 의하면 어느 곳도 실제로 납품한 사실이 없다. 아디다스는 1980-90년대에 GAT를 생산했다고 주장하며, 푸마는 납품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으나 디자인의 프로토타입을 제공한 것으로 추정된다. GAT의 디자인 창작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밝힐 수는 없다. 그러나 다슬러 형제가 스포츠화를 개발하고 발전시켜 독일 군용 운동화의 전형을 만들어 나아간데 기여한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독일 디자인 특유의 간결함과 실용성, 그리고 마르지엘라가 덧붙인 가치로 GAT가 크게 인기를 끌자 아디다스도 2017년부터 독일군 운동화를 부활시켜 BW Army 모델을 출시하고 있다.


현재 마르지엘라와 아디다스 이외에서 수많은 브랜드들이 GAT 모델을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마르지엘라의 REPLICA를 GAT 스타일의 표준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마르지엘라의 제품이 아디다스의 제품보다 4배가량 비싸거나, 원본을 더 충실하게 복제했거나 따위의 이유 때문이 아니다. 벼룩시장에서 거래되던 낡은 군용 물품을 패션계의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어떤 스타일과 어떤 태도로 수용해야 할지 제시한 것이 마르지엘라이기 때문이다.

마르지엘라는 GAT를 패션 아이템으로 대중에게 각인시켰고, 시간을 초월한 클래식으로 자리 잡도록 영속성을 부여했다.  


1990년대의 오리지널 GAT(왼쪽). 2001년 빈티지 GAT에 낙서를 해 판매한 마르지엘라(오른쪽). 현재 마르지엘라 레플리카의 판매가는 65~86만원 정도 이다.    




패러디와 표절, 오마주

미국에서 시작된 힙합 음악은 샘플링의 작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1980년대 뉴욕 할렘가의 하위문화로 자리 잡았다. 같은 시기 대퍼 댄(Dapper Dan)이라는 사람이 힙합 뮤지션이나 스포츠 스타들을 대상으로 한 맞춤 의상실을 할렘가에 오픈했다. 대퍼 댄의 디자인은 흡사 힙합 음악과 같았다.

그는 주로 루이뷔통, 구찌, 펜디, 디올 등 유명 럭셔리 브랜드의 로고가 뒤덮인 모노그램 원단을 사용해 매우 화려하고 과시적인 의상을 만들었다. 대퍼 댄의 로고 마니아적 의상은 바비 브라운, LL Cool J 등 당시 래퍼들과 유명인들이 착용하며 인기가 높았다. 말하자면 그의 작업 방식은 힙합식 샘플링이었던 셈이다.


대퍼 댄이 만든 옷은 구찌의 로고와 아이코닉한 색상을 사용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전혀 구찌의 옷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구찌는 그런 옷을 만들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대퍼 댄의 의상은 표절이라기보다 패러디에 가까웠다. 그러나 타사의 로고를 그대로 사용해 원단을 생산한 것은 엄연한 불법 행위가 맞다. 로고를 도용당한 럭셔리 브랜드들이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1980-1990년대 패션계의 메인 스트림에서 로고를 범벅해서 과시하는 것은 전혀 우아한 방식이 아니었다. 대퍼 댄은 타사의 로고를 무단 도용했을 뿐만 아니라, 브랜드의 가치와 명예를 훼손한 셈이다. 럭셔리 브랜드들의 소송으로 대퍼 댄 부띠끄(Dapper Dan's Boutique)는 1992년 폐업했다.


그로부터 25년의 시간이 흐른 2017년 5월, 구찌의 크루즈 컬렉션이 공개되었을 때 대퍼 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구찌를 이끄는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창작 방식이 여러 가지 요소를 복잡하게 뒤섞는 절충적 디자인이라는 것은 차치하고, 어떤 디자인은 지나치게 대퍼 댄의 것과 유사했다. 언더 디자이너(under designer)의 것을 표절했다는 비난 속에서 구찌 하우스는 적극적인 해명 없이 한 동안 침묵으로 일관해 많은 이들을 실망케 했다.

구찌가 몇 개월 뒤 제시한 해결책은 'GUCCI X Dapper Dan' 컬래버레이션이다. 대퍼 댄을 구찌 남성복 캠페인의 광고 모델로 캐스팅하고, 그가 할렘가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다시 오픈하도록 지원했다. 구찌는 대퍼 댄과 협업한 컬렉션을 2018년 가을에 출시했고, 미켈레는 표절한 것이 아니라 대퍼 댄을 오마주(homage) 한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럭셔리 브랜드의 로고를 무단으로 도용해 화려하고 과장된 스타일 만들던 대퍼 댄. 그는 한때 경박한 짝퉁 물건을 만들던 부도덕한 재단사로 치부되었다가, 이제는 힙합 정신을 표현한 할렘 패션의 전설로서 존경받게 되었다.


루이비통을 무단 도용한 대퍼 댄, 그리고 대퍼 댄을 표절한 구찌(왼쪽). 2018 구찌 X 대퍼 댄 콜라보래이션 컬렉션 (오른쪽)




이상한 리셀 현상

패션에 관심 좀 있는 사람들은 몇 년 전 패션계를 뜨겁게 달구던 슈프림 현상을 보았을 것이다.

슈프림(Supreme)은 1994년 뉴욕에서 시작한 패션 레이블로 스케이트 보드 문화와 함께 태동했다. 슈프림 매장에는 스케이트 보드 문화를 중심으로 멋진 크루들과 옷 잘 입 사람들이 모여 노는 공간이었다. 슈프림은 뉴욕의 새로운 보수주의에 저항하는 스트리트 패션을 표방하며 스케이터, 힙합 뮤지션, 패셔니스타 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갔고, 쿨함과 반항적 정서는 슈프림의 정체성과 같다.


슈프림 직원들은 어찌나 무심하고 시크한지 고객에게 매우 불친절하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제품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티셔츠에서 실크 셔츠까지, 워크웨어 또는 가죽 재킷, 그리고 갑자기 등장하는 아웃도어 용품 등. 슈프림의 제품은 슈프림 다운 디자인이지만 카테고리를 크게 넘나 든다.

게다가 그들은 매우 소량으로 생산한다. 잘 팔린다고 추가 생산하면서 질척거리는 일 따위는 없다. 이는 럭셔리 브랜드가 구사하는 전략과 비슷하다. 슈프림의 공식 매장은 전 세계 몇 개 없는데 만약 당신이 매주 목요일 슈프림 신제품이 출시되는 '드롭 데이(drop day)'에 득템 못하면, 그 상품은 살아생전 영영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 어쩌면 당신은 '품절의 고통'속에 몸부림치다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그래서 슈프림 마니아들은 목요일에 상점 앞에 긴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자신의 손에 예상치 못한 상품 잡히더라고 일단 사고 본다. 슈프림 로고가 있으면 벽돌, 소화기, 반려견 식기, 음주측정기 등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일단 산다. 왜냐면 슈프림 제품은 언제든지 더 높은 가격에 되팔 수 있기 때문이다.

슈프림이 크게 성공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쿨한 태도와 확고한 브랜드 정체성, 그리고 희소가치. 물론 디자인의 미감은 기본 값이다.


반항적인 하위문화를 근간으로 한 브랜드로서, 초창기부터 슈프림은 잘 알려진 팝 컬처를 패러디하는 방식을 구사했다. 그런데 이 패러디 방식이 안티 팝 컬처로서 저항의 의미인지, 타 브랜드의 유명세에 무임승차해 이익을 취하려는 것인지 모호하고 아슬아슬했다. 슈프림은 1994년 브랜드 오픈과 동시에 고소당했다. 캘빈 클라인의 광고 위에 숟가락 얹듯 슈프림 로고를 찍은 광고를 게재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노이즈 마케팅에는 성공한 셈이다. 관종 전략 성공!

또한 슈프림은 익히 알려진 온갖 브랜드의 로고와 아이코닉한 문양을 가져다 썼다. 패러디인지 표절인지 모를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2000년 루이비통의 고소로 슈프림은 해당 재고를 폐기 처분했다.


만약 슈프림이 단단한 브랜딩으로 현재의 충성스러운 마니아를 확보하지 못했더라면, 과거의 행적들은 부도덕하고 몰상식한 짓으로 치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스트리트 패션의 막강해진 영향력과 슈프림의 명성 덕분에, 그 모든 행보는 패기 넘치던 젊은 브랜드의 역사로 평가받는다. 이를 증명하듯, 2017년 루이비통은 슈프림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브랜드의 노후화를 막으려는 럭셔리 브랜드들은 젊은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종종 스트리트 패션과 손을 잡는다.


루이비통과 슈프림의 만남은 많은 사람을 흥분하게 했다. 가장 핫한 럭셔리 브랜드와 거리문화의 결합이라는 상징성과 표절 분쟁으로 다투던 두 브랜드가 화해하는 것이 드라마틱했기 때문이다.

2017년 루이뷔통 X슈프림 컬래버레이션 남성복 가을 컬렉션이 출시되기 며칠 전부터, 전 세계 루이뷔통 매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두 브랜드의 역사적 만남과 세기의 한정판에 흥분하며 캠핑하듯 매장 앞을 지켰다.

 희귀한 컬래버레이션 상품들은 출시 직후 중고거래 플랫폼에 등장했고, 매장 가격보다 수십   높은 가격에 리셀(resell)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2000 표절 분쟁으로 폐기 대상이 되었던 슈프림 티셔츠가 2017 정식 출시된 버전 못지않게 높은 가격에 리셀되는 현상이다.


뉴욕 슈프림의 드롭데이에 득템한 럭키가이들(왼쪽). 서울 루이비통 매장에서 슈프림 출시를 기다리는 사람들(가운데). 상하이 가짜 슈프림 매장앞에 줄서 있는 사람들(오른쪽)
왼쪽부터 2000년 슈프림 티셔츠(중고가 200~300만원), 2017년 루이비통X슈프림 중고 티셔츠(중고가 300~500만원), 2017 루비이통X슈프림 컬렉션 이미지




인류의 역사에서 패션 현상들은 대부분 상류층을 모방하려는 상향 지향적 욕망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패션 트렌드라는 것은 하이엔드에서 스트리트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일방향이 아니다. 과거 패션의 메카로 불렸던 파리나 런던과 같은 몇몇 도시에서 시작되어 주변 변방국가로 전파되는, 중심에서 주변으로 번지는 것이라 할 수도 없다.

우리는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 경계를 허무는 해체주의적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패션은 비틀고 변형하고, 조합하며 중첩해서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해낸다. 그 과정에서 표절과 패러디, 조롱과 오마주,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매우 모호해진다.

우리는 이상한 패션 나라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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