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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Aug 06. 2022

타인의 고통 (5)

비건 패션과 그린워싱

1990년대 말 페이퍼(Paper)라는 인디 매거진은 '빙하가 녹고 있다'라는 주제로 특집호를 발간했다. 페이퍼는 당시 트렌디한 카페나 상점에서 무료로 배포되던 월간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용을 지불하고 몇 년간 정기 구독을 했다. 고백건대 그때는 그들이 외치던 환경 이슈와 사회 문제에 대한 제안이 나에게 큰 울림이 되지 못했다. 나는 그저 색다른 사진 화보와 감성적인 문장, 예쁜 일러스트를 수집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째서 빙하가 녹는지, 빙하가 녹아서 내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 크게 마음을 두지 않았다. 내 탓이 아니라고 무책임하게 생각했고,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움직여 해결할 것이라 방관했고, 나와 상관없는 먼 미래의 불행일 것이라 외면했다.


그런데 그날은 오고야 말았다.

어느덧 우리 모두 이상기온 속에 살고 있다. 2022년 현재 한국은 때 이른 폭염과 가뭄에 농작물이 타들어갔고, 유럽에서는 40도를 넘는 폭염이 이어져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알프스의 만년설이 녹아내렸고, 각지에 산불이 발생했다. 각 국이 비상경보를 발령할 만큼 역대급 무더위를 겪고 있는데, 주원인은 과다 배출된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이다. 온실가스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산화탄소(CO2)는 에너지 사용과 산업공정 등에서 인위적으로 발생한다. 바꿔 말하면 인간이 변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누가 죄인인가?

2018년 유엔 유럽 경제위원회(UNECE)는 패션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과소평가되어 왔다고 경고했다. 통계에 의하면 패션산업의 탄소배출량은 전체의 10%를 차지한다. 이는 항공과 해운산업을 합한 것보다 많은 수치이다. 탄소 배출량뿐만 아니라 물 사용량, 토질 오염, 쓰레기 발생 등의 측면에서 패션산업은 환경오염의 원인 중 2위에 해당한다.


패션 산업의 벨류 체인은 매우 복잡하다.

제품이 생산되기까지 농업과 목축업을 통한 원재료의 추출, 원재료의 가공과 편직과 직물 염색 등의 가공, 생산 및 후가공 등 수 없이 많은 과정을 거친다. 각 과정마다 많은 에너지와 자원이 필요하고, 오염물질이 배출된다. 예를 들어 청바지 한 벌을 만들기까지 목화를 재배해서 실을 만들고, 원단으로 편직 한 뒤 염색하고, 재단 및 봉제, 워싱 등 후가공을 거쳐 상품으로 완성하려면 물 7,500리터가 필요하다. 하루에 물 8잔을 마신다고 가정하면 한 사람이 10년 동안 마실 수 있는 물의 양이다. 또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휘발유 승용차로 46.5km를 달리는 것에 준하며, LED 형광등을 1,950시간 켜놓는 것과 맞먹는 에너지를 소비한다.  


패션 상품의 제조 단계뿐만 아니라 유통, 판매되어 소비자가 사용하는 동안에도 많은 오염물질이 발생한다. 의류 제품의 60%는 합성섬유이다. 합성섬유의 옷은 입고 있을 때, 그리고 세탁할 때 많은 미세 플라스틱이 방출된다. 한 연구에 의하면 합성섬유를 한번 세탁할 때 약 70만 개의 미세 플라스틱이 배출된다. 직경 5mm 이하의 미세 플라스틱은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토양, 담수, 해양으로 흘러들어 간다.

그리고 다시 인간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공기로, 식수로, 채소와 해산물로 결국 다시 그것을 섭취한다. 우리는 일주일에 평균 신용카드 한 장만큼의 플라스틱을 먹고 있다.


우리는 일주일에 신용카드 한 장을 먹고 있는 셈이다 ©WWF-World Wide Fund For Nature (Singapore) Limited (출처 wwf.sg)

 



비건 패션

패션산업이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패션업계는 저마다의 대응을 시작했다. '20만 원 이상 구매고객에게 에코백 증정' 등 이벤트를 벌이는가 하면, '죄 없는 동물을 희생시키지 말고 에코 퍼를 입자'는 광고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원가 몇 천 원짜리 코튼 캔버스 백을 덤으로 갖기 위해 20만 원을 소비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더구나 에코백이라 부를 만큼 친환경적 영향력을 미치려면 최소 131회를 사용해야 하는데,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수많은 에코백은 아직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

천연 소재보다 저렴한 인조털을 갑자기 '에코 퍼'라고 부르는 것은, 과연 그것이 친환경적이기 때문일까? 동물의 희생을 배제한 모든 것이 윤리적이고 친환경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패션 회사들은 이렇듯 깊은 고민 없이 친환경적 소비문화에 편승하기 위해 일차원적 대응을 한다. 왜냐면 그게 유행이거든!


비건 패션(Vegan Fashion)은 채식주의(veganism)에서 파생된 용어이다. 따라서 가죽과 모피처럼 동물을 도축해서 얻는 재료뿐만 아니라 동물 가학행위 일체를 반대한다. 동물의 털을 뽑고 깎아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깃털, 울, 실크 등 동물에서 얻는 어떠한 소재도 사용하지 않는 애니멀 프리(animal free)를 의미한다. 비건 패션은 모든 동물을 함께 공생해야 할 생명으로서 존중하는 것이며, 넓은 의미로는 패션의 환경적 가치를 고려하는 윤리적 패션이다.


합성소재로 만들어진 인조가죽과 인조 털은 불과 몇 년 전까지 천연 소재의 모조품이라는 인식이 컸으나, 환경과 동물보호에 대한 이슈가 대두되며 좋은 대체재라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합성소재 또한 환경오염을 유발한다. 천연 가죽에 비하면 착한 편이라 할 수 있으나 합성 피혁의 제조 공정에서도 많은 오염물질을 뿜어낸다. 소비자가 사용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미세 플라스틱이 배출된다. 또한 합성섬유는 쉽게 분해되지 않는다. 합성섬유가 생분해되기까지는 길게 잡아 200년 걸린다. 내가 버린 합성섬유 옷은 나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지구에 남아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죽어서 인조가죽 재킷을 남기는 것이라고나 할까.


모든 인조가죽이 에코 가죽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제품은 조금 더 환경 친화적일 수 있다.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합성섬유를 사용하는 리사이클링 방식, 재고 상품을 변형해 디자인적 가치를 더하는 업사이클링 방식이 그러하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식물성 소재로 만든 친환경 대체 가죽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파인애플 잎, 대나무, 바나나 등을 가공한 인조가죽. 즉 비건 가죽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허청 기준에 따르면 비건 가죽의 범위는 동물을 사용하지 않으며, 식물성 재료를 사용하는 인조 가죽이다. 그러므로 비건 가죽은 합성물질과 함께 가공해 만드는 것이 일반적 때문에 생분해와 재활용 측면에서 전적으로 친환경적이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근에는 100% 생분해 성분의 비건 가죽에 대한 기술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그린워싱

각종 미디어는 '친환경이 힙하다', '환경에 진심인 MZ세대를 사로잡아라', '지속가능성이 뜬다'라고 떠들며 패션의 지속가능성을 트렌드로서 대한다. 참으로 수준 낮은 기사 제목들을 보노라면 낯이 뜨겁다.

모든 산업분야의 핵심 소비층이라 할 수 있는 MZ세대가 가치 있는 소비를 지향하는 것은 사실이다. 2020년 맥킨지 설문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의 66%가 제품 구매 시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며, 젊은 층일수록 그런 경향은 더 두드러진다. 이제 소비자는 상품 자체뿐만 아니라 공정의 윤리성과 브랜드의 철학에 관심을 둔다.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소비 행위를 통해 자기 신념에 부합하거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쪽을 택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은 MZ세대 입맛에 맞추기 위한 조정을 생존전략으로 내걸고, ESG 경영으로 전환하기에 몰두한다.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낙인이 찍힌 패스트 패션들도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티핑 포인트로 삼고 있다. 대표적 패스트패션 브랜드인 H&M은 2019년부터 지속 가능한 소재를 사용한 '컨셔스 컬렉션'을 출시하고 있다. 패션 업체들은 '의식 있는(conscious), 책임감 있는(responsible), 선의를 위한(for good), 미래를 위한(for the future), 친환경적인(eco-friendly), 지속 가능한(sustainable)' 등의 캐치 프레이즈를 저마다 내걸고 자사 제품이 환경을 위한 솔루션이라고 홍보한다. 그리하여 소비자의 죄책감을 덜어준다.

하지만 문제는 진정성이다. 많은 패션 기업들은 지속가능성조차 마케팅 트렌드로 소비하며, 모호한 표현들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국제 비영리 재단 Changing Markets Foundation의 말을 빌리자면 패션 기업들은 그린워싱에 중독되어 있다.


패션 기업들은 그린워싱에 중독되어 있다


2021년 발간된 Changing Markets Foundation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속가능성을 주장하는 유럽과 영국의 패션 브랜드들 중 59%의 주장은 매우 모호하다. 또한 대다수의 패션 브랜드들이 과장, 허위 주장, 정보의 투명성 부족 등으로 그린워싱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H&M의 컨셔스 컬렉션 제품 중 친환경 소재의 사용은 일부에 불과하고, 합성섬유는 오히려 기존 컬렉션보다 많이 사용했다. Patagonia는 합성소재 사용 정보에 대해 공개하지 않았고, 합성소재에 관한 구체적인 실천 약속도 없다. 그러나 여전히 '지속 가능한 패션'으로서 소비자에게 착한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다.

럭셔리 패션의 경우, 패스트패션보다 비교적 환경친화적 영향력을 투명하게 컨트롤하는 경향이 있다. 구찌는 '구찌 이퀄리브리엄(Gucci Equilibrium)'이라는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지구와 사람을 위한 노력을 공표하며,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구찌의 'responsible'이라는 택이 붙은 제품  합성물질 함유량은 평균 32% 이며,  수치는  Zara, H&M, ASOS 친환경 제품라인 절반에 해당한다. 구찌는 재활용 섬유를 사용해 순환 제조 공정을 추구한다. 그러나 럭셔리 브랜드의 친환경 패션 제품에서도 안감은 여전히 폴리에스터를 주로 사용한다. 여러 가지 재료가 복잡하게 혼방된 섬유를 사용해 재사용이 어려운 것도 문제로 남아있다.


H&M 컨셔스 컬렉션은 유기농 면, 재생 플라스틱 섬유, 파인애플 섬유 대체 가죽, 오렌지 소재의 대체 실크 등을 사용한 '의식 있는' 패션제품이다. 실은 아주 조금 사용하지만.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이제는 인간이 살기 위해서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

공존을 위해 패션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해야만 하는 시대에, 일부 패션 기업은 저만 살자고 눈속임을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소비자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해 냄으로써 기업이 진정성 있는 브랜드 철학을 고민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올바른 패션 소비문화가 무엇이냐고, 패스트 패션을 보이콧하고 럭셔리 패션만을 소비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한마디로 단언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세상 모두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간다면 우리 모두가 각자의 위치와 상황에서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환경 단체들은 패션 기업의 그린워싱에 속지 않을 기준들을 제시하고 있으니 참고 삼아 자기 기준을 만들어도 좋을 것이다.


환경을 염려하고 타인의 고통을 알고 있지만, 쇼핑을 좋아하는 내 기준은 이렇다.

무엇을 살 것인가 고민하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다루고 책임감 있게 사용하는 것이 먼저이다. 그리고 꼭 무언가를 사야 한다면 꼼꼼하게 들여다볼 것이다. 무엇으로 어떻게 누가 만들었고, 나는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그리고 그린워싱 마케팅에 휘둘리지 않고 있는지.

온전하지 않다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작은 실천들이 모여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나의 신념과 명분에 맞다면 죄책감 갖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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