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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월 whalemoon Sep 28. 2021

코로나 시대, 시끄러운 장례식장이 그립다.

경사는 가지 못해도 조사는 가야 하는 이유.


최근 아는 지인의 부친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10시까지 일하는 지인들과 함께 이동을 해서,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장례식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래 장례식장은 저녁 시간 이후가 가장 북적거리는 법인데,

돌아가신 첫날이라 그런지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2020 2,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우리나라는 코로나라는 새로운 질병이 한참 돌고 있던 시기였다.

어떤 전파력을 가지고 있고,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지 못하던 그때 우선 아이가 있는 지인이나 멀리 사는 지인들은 방문하지 말라고 연락을 했다.

그럼에도 코로나 초기라 그런지, 그리고 할아버지의 자식인 우리 엄마와 외삼촌, 숙모들의 인간관계가 좋아서 그런지 장례식장은 굉장히 바빴고 정신이 없었다.


측근의 죽음을 이렇게 눈앞에서 맞이하고, 심지어 내가 가장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지만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3일장을 어떻게 보냈는지 아직도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어린 시절, 친척 동생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갔던 적이 있다.

사실 그다지 어리지도 않은 중학교 시절이었는데 장례식장에 모여 술을 마시고 고스톱이나 포커를 치던 어른들의 모습이 이상했다.

왜 내 친척들은 슬픈데 내 동생은 겨우 초등학생이라 굉장히 슬퍼하는 데, 어째서 이렇게 시끄러운 분위기일 수 있을까.

사람이 죽었는 데 어떻게 호상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숙연해야 할 분위기에서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명절에 하는 고스톱을 칠 수 있는 걸까?


그 당시 엄마에게 내 궁금증을 여쭈었다.

"왜 장례식장인데 사람들은 이렇게 게임을 하고 시끄럽게 굴어?"


엄마는 "그래야 정신이 없어서 금방 지나가거든."이라고 얘기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점점 성인이 되어가고 주변에 경사와 조사가 늘어나면서 내가 겪는 느낌은 많이 달라졌다.

특히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겪은 이후로,

그리고 가까운 주변 지인들의 가족 장례식을 가면서 경사는 가지 못하더라도 조사는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미지 제공 : Pixabay - HeungSoon


경사는 적은 사람들이 모여도 시끌벅적하고, 사실 누가 왔다 갔는지 기억을 잘하지 못할 정도로 계속 웃고 인사하고 돌아다니고 인사하고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조사의 경우 정말 한 명 한 명 와서 인사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우르르 인사하고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비우면 몸속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것처럼 공허해진다. 죽음에 대한 생각도 많이 들게 되고 추억들도, 못해준 기억들도 많이 떠오른다. 발바닥이 아픈 것을 모를 정도로 바쁜 장례식장과 손님들이 그리워진다.


최근 인사를 드리러 갔던 장례식장의 경우,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적용되는 지역이었고 인원의 제한뿐 아니라 밤 9시가 넘으면 음식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장례식장이니 미리 준비한 음식을 빼가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오후에 돌아가신 후 이것저것 서류를 작성하고 고인을 모시고 오고 계약을 하는 등의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나면 이미 저녁시간이다. 그러다 보니 식사 제공이 되지 않은 상태였고 마른안주 몇 가지와 아직 시원해지지 않은 술과 컵라면만 있었다.

도우미분들도 전혀 없었고, 가족들만 있는 자리에서 고인에게 인사를 드린 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원래도 난 음식을 잘 남기지 않는 편이지만 장례식장에선 더더욱 남기지 않는다.

빈 접시를 내밀며 천연덕스럽게 음식을 더 달라고 말씀드리기도 하고 장례식장에 가기 전에 따로 식사를 하고 가지도 않는다.

고인이 시간을 내어 인사를 해주러 온 손님들에게 마지막으로 대접하는 음식.

그렇기에 그 마음을 알아서 더더욱 바닥이 보이도록 음식을 먹고 온다.


아무것도 대접할 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상주님에게 우리들은 모두 괜찮다며, 오히려 정신없으실 텐데 와서 죄송하다고 했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받고 마른안주를 꺼내와서 소주와 맥주를 먹는 데, 사람이 많다 보니 몇몇은 찬 물에 담긴 컵라면을 과자처럼 먹기도 했다.


한 시간 정도 있으려고 했던 그 자리에서, 상주분들 모두 첫 손님인 우리에게 많은 감사를 표하셨고, 평소 고인의 이야기와 상주 가족분들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다 보니 약 3시간 30분 정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올해인 2021년을 살면서 가장 많이 웃기도 한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러 간 공간에서 많이 웃은 시간을 보냈다는 역설적인 상황.

하지만 그러므로 인해 상주분들도 그리고 함께 방문한 우리들도 한결 괜찮아지는 느낌이었다.


장례식장에서 곡소리만 들리고, 눈물만 보이고, 고요하기만 하다면

고인의 가족들과 지인들은 물론, 방문한 조문객 역시 답답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그 자리를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을 배웅하러 와준다는 것은 굉장히 고마운 일이고

그 배웅을 떠들썩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 역시 굉장히 감사한 일이다.


시끄럽기 때문에, 손님이 많기 때문에

그래서 슬픔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고, 그 힘든 3일의 시간을 견딜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모이는 것에 있어서 많은 제약이 생긴다.

사실 6시 이후 2명만 만나는 정책 같은 경우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냥 다수가 모이는 것을 피하라는 정부의 지침임을 알고 있다.

다수의 친구들이 모여서 신나게 논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추석 때도 식구가 많아서 각자 날짜를 나누어 부모님 집에 방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추석은 다시 오기 때문에 괜찮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다시 시작될 것이기 때문에 괜찮다.


다만 경사나 조사, 특히 조사의 경우 한 사람의 짧고 긴 인생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이런 시국에도 불구하고 꼭 방문해서 인사를 드린다.

한 사람의 인생을 사시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고 인사를 드리고 밥을 먹고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다가 나온다.


코로나라서, 코로나 때문에,

라는 말로 한 사람의 마지막을 그냥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당연히 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오지 않고,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사람이 와서 인사를 해주면서

인간관계가 정리되기도 하는 기간이다.

겨우 3일의 시간, 말이 3일이지 첫날과 마지막 날은 손님을 받는 경우도 드물다.

그러다 보면 단 하루 정도의 시간으로 많은 것이 바뀐다.


모든 것이 예민해진 탓에 작은 것에 눈물도 나고, 웃음도 난다.

이렇게 상주인 입장에서 웃어도 되는 것일까 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장례식장에선 그들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그들이 괜찮아지길 바라기 위해, 고인의 마지막을 위해

많은 얘기를 하고 많은 얘기를 듣고 밥도 잘 먹고 와야 한다는 것.


이 코로나가 도대체 언제 끝날지,

위드 코로나로 인해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지금 이 순간에도 장례식장에 있는 여러 상주분들에게,

그리고 고인이 되신 분들에게,

너무 고생이 많다고, 힘내라는 말로는 힘이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괜찮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표지 이미지 제공 : Pixabay - Niek Verla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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