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월 Oct 10. 2021

30대, 잘하고 있는 걸까?

내가 바라던 30대의 내 모습.

30대.


10대의 내가 생각하던 30대의 나는 성공한 사람이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다니면서 세계 여행을 다니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거나 혹은 멋있는 미혼의 삶을 즐기면서 누가 봐도 멋있는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20대의 내가 생각하던 30대의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정대로였다면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을 하고, 여행을 다니고, 친구들을 만나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술을 한잔 기울이고 내 명의의 집이 있을 줄 알았다.


정작 30대가 된 지금, 나는 여전히 학교를 다니고 있고 (물론 내가 자퇴와 휴학, 전과를 반복했고 죽기 직전까지 공부를 하고 싶은 게 사실이지만) 체계가 전혀 잡히지 않은 이상한 회사에 다니며, 자유로운 연차도 사용하지 못하고 해외여행은커녕 국내 여행을 가는 것 역시 여유롭지 못하다. 흔히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친구들을 보며 부러워하고, 내 사정을 뻔히 아는 그런 친구들을 만나면 여전히 밥을 얻어먹고 다닌다.


내일모레면 30대 중반이 되어가지만 난 여전히 내 이름의 집도 없고, 사기 피해로 인해 신용카드 하나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가끔 SNS를 통해 듣는 동창들의 소식, 혹은 아는 지인들을 보면 다들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다. 꼭 해보고 싶었던 제주도 한 달 살기부터 카페를 차려놓고 여행을 다닌다거나 좋은 배우자를 만나 좋은 집에 좋은 인테리어를 하고 예쁜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사는 지인들도 있고, 취미로 일을 하며 지내는 친구들도 있다.


사실 어린 시절의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나이는 숫자를 먹어가는 것뿐이고 내 커리어를 쌓아갈 뿐, 나는 늘 자유롭고 순수하게 살고 싶었다. 흥이 넘치고 하고 싶은 게 많으며 신이 나게 살고 싶었다. 흔히 '피터팬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린 왕자>를 워낙 좋아하기도 해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보고 '모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걸 '숫자'로 보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워낙 이른 나이부터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 집안의 경제적인 문제나 사소한 가정사, 가족들의 병간호 등을 모두 신경을 쓰던 나는 일찍 철이 들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20대의 나는 어른이 되어간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30대가 되자 나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은 아직도 제대로 된 능력조차 소유하지 못했고, 다음 달의 카드값과 대출을 걱정하는 그저 나이로만 어른이 된 모습이었다.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런 모습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남들은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는지 걱정이 들었다.


옆사람이 30대가 되면서 몇 년을 더 살아온, 웃기지만 '인생의 선배'라는 명목으로 그와 그의 주변인들 고민을 들어준다. 원래 남의 고민을 듣고 함께 고민해주고 조언 아닌 조언을 해주는 것을 즐기는 편이었지만 그저 가벼웠던 고민들이 많이 무거워지고 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요?"

라는 질문을 들으면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해준다.


인생에 정답이라는 것은 없다. 스스로가 원했던 30대의 모습은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이는, 흔히 성공한 사람들의 보편적인 모습일 뿐이고, 90년대에 보던 30대의 모습과 2020년대의 30대 모습은 차이가 크다. 가장 큰 경제적인 상황 차이부터 시작해서 배워야 할 것이, 알아가야 할 것이 더더욱 늘어가고 있다.




영어학원에서 초등학생, 중학생을 수업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아이들이 나에게 가장 많이 상담했던 내용이

"선생님, 저는 꿈이 없는데 어떡하죠?"라는 말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꿈이 없어도 괜찮아."라는 말을 해줬다. 내가 그 당시에 선택할 수 있었던 직업들보다 지금은 몇 백배로 늘어난 직업들이 있다. 꿈이라는 것이 직업을 선택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지금은 분명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졌다.

멋있게 "꿈이 없어도 괜찮아."라고 말한 뒤, 그 뒤에 덧붙이는 말은 꼰대 같은 "그러니까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해."인 것이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라는 거. 어느 정도 성적이 뒷받침이 되어야 나중에 꿈이 생겼을 때 그 꿈을 위해 나아갈 수 있으니, 그 꿈을 선택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해야 한다는 답변을 내놓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그 나이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공부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예정이다. 나는 꿈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지금도 하고 싶은 것이, 이루고 싶은 것이 너무 많기에 학교 따위는 자퇴를 하고 꿈을 이루러 여정을 떠나고 싶다. 물론 나도 꿈이 없다면 공부를 해야겠지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지금 나의 모습은 내가 바라던 30대의 모습은 분명히 아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 퇴근 후에 시간을 내어야 하고,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기 위해서 잠자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여행을 가기 위해서 다음 달의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며 카드를 긁어야 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선 어질러진 집안을 보고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갖고 싶은 것을 갖고, 가고 싶은 곳에 가기 위하여 돈을 버는 데, 그 돈을 버느라 정작 나에게 투자할 시간들이 없다. 갖은 대출과 생활비등으로 월급은 게 눈 감추듯 사라져 버리고 또다시 카드를 쓰고 다음 달 월급날에 그 월급이 또 사라져 버리는 이런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비슷하다. 본인이 원하는 30대를 이룬 사람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들의 인생을 성공했다고 분류할 때, 내 인생은 실패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나는 나만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좋은 사람과 잠자리에 들고 좋은 사람들과 삼겹살에 소주 한잔 기울이면서 사소한 회사 이야기와 삶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떠든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주말에 다음날의 나에게 집안일을 미루고 가만히 누워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다가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 한 캔과 하늘에 뜬 별을 보면서 유난히 예쁜 달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새벽같이 일어나 안개가 짙게 깔린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면서 오늘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바쁜 회사일 속에서 칭찬을 듣거나, 감사의 표현을 들을 때, 혹은 내 업무에 내가 만족을 할 때 내 일에 보람을 느낀다. 집에 돌아와 엉망인 꼴을 보고 어제의 나를 원망하지만 부지런하게 청소를 하고 깨끗해진 집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럼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를 보고 고마워하겠지.


SNS에 올라오는 부러운 모습들은 그들의 일부이다. 그들 역시 힘든 고난의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좋지 않은 순간들은 누구나 있다. 그 상황의 크기는 누가 겪냐에 따라 모두가 다르겠지만 각자의 기준이 있을 뿐. 나에겐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큰 상황일 수 있고, 나에게 엄청난 상황이 그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상황일 수 있다. 나의 SNS에도 좋은 모습만 올릴 수 있다.


감히 말할 수 있다.

'나는 내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걸까?'라는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열심히 살고 있고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가질 수 있는 거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거라고. 머리로 고민하던, 생각하던 일들을 실천에 옮기면 더 잘하고 있는 거라고. 오늘 하루도 충분히 열심히 살았다고.


성공이란 것을 위해 누구보다 피나는 노력을 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보상받아 마땅하다. 그들이 노력하는 시간에 나는 술을 마시거나 잠을 자거나 무의미하게 보냈으니 그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맞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마냥 부러워하며 나를 원망할 필요는 없다. 그들의 노력에 존경을 표하고, 나도 이제 노력하면 되니까.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니까.


오늘 나는 밀린 잠을 잤다. 낮잠을 포함해 12시간 넘게 잠을 잤고, 이제야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쓴다.

밀린 잠을 자면서 내 체력을 보충한 나는 오늘도 열심히 살았고, 무언가를 하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은 나도 열심히 살았다.


내일은 조금 더 열심히 살아도 괜찮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면 조금 더 쉬어도 괜찮다. 그냥 오늘 하루도 포기하지 않고 나쁜 생각하지 않고 이렇게 살아있음에 스스로가 대견스럽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남들보다 뒤처졌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원망하는 일은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뿐, 나를 먼저 돌봐주고 나를 먼저 아끼다 보면 자연스레 나도 꽤나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알게 될 것이다.

이전 09화 기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