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 반차
스크린도어가 고장이 났다.
안 그래도 최근 급증한 공황으로 인해 지하철을 타는 게 너무나도 불안했고 땅만 보고 걷다가 역방향 열차를 탈 뻔했는데 고개를 들자 정말 아찔하게 열린 스크린도어에 심장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중간중간 배치된, 형광 오렌지색 조끼를 입은 안전요원마저 내 공황을 더 커지게 만드는 것 같았다.
흉포한 공포감에 숨이 가빠지고 머리가 아파진다. 손과 이마, 등까지 땀이 송골송골 맺히며 몸의 체온도 상승한다. 그 반대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지금 내 상황이 좋지 않음을 깨닫는다.
모자가 달린 후드를 입고 출근했기에 얼굴을 다 가릴 정도로 뒤집어쓴다. 오랜만의 오후 반차에 지하철에 사람이 별로 없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한 나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란 걸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금요일 오후는 서둘러 퇴근길에 오른 듯 한 사람이 많이 있었다. 물론 평소의 퇴근길과 비교하면 한적한 편이었지만 이미 스크린 도어에 식은땀을 한 바탕 흘린 나는 지하철에서 이동하는 내내 구석에 틀어박혀 온 몸을 숨겼다. 마치 어린아이가 숨바꼭질을 할 때 본인에게 상대방이 보이지 않으면, 완벽하게 숨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내 시야를 가리기 바빴다. 이렇게 말도 되지 않는 숨바꼭질을 하며 내가 안정을 찾을 수 있는 노래를 찾아 최대한 크게 틀었다.
실제론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거의 반나절이 흐른 것 같은 답답한 시간이 지난 후 도착지에서 하차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365일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이 동네에서 내가 가야만 하는 곳이 있었고, 많은 인파를 뚫으며 걸어갔다. 아니 사실 남들과 닿지 않으려, 남들 눈에 띄지 않으려 10초에 한 번씩 움찔하며 이동을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런 이동이 남에게는 더 눈에 띄었으리라.
겨우겨우 도착한 그곳은 정신과였다. 올해 유난히 힘들었던 나는 하반기부터 꾸준히 정신과 의사 선생님과 상담치료와 함께 약물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10대부터 가지고 있던 불면증과 우울증, 그게 20살이 된 이후로 공황장애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자존감까지 낮아졌던 그 시기. 약 1년 정도 정신과를 다녔었고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좋아진 척하고 있었을 뿐.
2017년, 존경하던 내 롤모델이자 '내가 죽지 않는 이유'였던 그 사람이 별이 된 이후로 난 분명히 내가 힘듦을 알고 있었으나, 내 나약함을 마주하기 싫어 신경과를 1년 동안 꾸준히 다녔다. 괜찮아지겠지, 괜찮아질 거야, 괜찮아졌겠지, 생각했으나 내 주변에서 지쳐가는 사람들로 인해 나는 억지로 괜찮다고 스스로 나 자신을 압박했다. 괜찮아, 약해지지 마, 난 강하잖아, 이제 1년이나 지났잖아.
하지만 역시 이때도 난 괜찮아지지 않았던 거였겠지.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숨겨왔었던 불면증, 우울증, 공황장애 내가 다시 한번 정신과의 문을 두드린 이유였다. 사실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도 믿었다. 그러나 갑자기 심각해진 스트레스와 공황으로 인해 또 다른 스트레스가 증폭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언제쯤 진짜로 괜찮아질 수 있을까, 내 이런 심리적, 정신적 아픔의 원인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나아지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내 모습에 함께 지쳐가는 그들에게 또다시 미안함을 느끼게 됐다. 고마움도 가득하고 사랑하는 마음도 가득한데 미안함이 점점 커져가는 느낌이라 다른 감정들이 묻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도록 노력을 하고 싶은데 과연 노력을 하는 게 나 자신에게는 약이 될지 독이 될지 이제 나도 잘 모르겠는 지경이다.
숨긴다고 해서 그들에게 괜찮아질지라도, 그게 나에게 독이 된다면 나는 또다시 같은 상황에 놓이고 말 테니까.
근데 언제나 그랬듯 나는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를 강하게 다독이며 오늘도 버텨가고 있다.
think : 20. 11. 20. Fri
write : 20. 11. 23. M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