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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월 Oct 18. 2021

기일

내가 죽지 않는 이유, 살아야 할 이유


 어릴 적부터 우울증과 함께 커왔다. 끝없이 우울해지고 끝없이 나쁜 생각을 했으며 끝없이 사람들과 멀어지려고 했다.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고, 내 머릿속엔 그저 세상을 떠나야 할 이유, 내가 죽어 마땅한 이유들이 가득했다.


 그 시작이 어디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친구들과의 관계였던 것 같기도 하다. 부모님의 이혼이 이유였던 것 같기도 한데, 그 전에도 우울감 비슷한 걸 느꼈던 것 같다. 사실 초등학생 저학년 때, 우울이라는 뜻을 잘 알지 못했다. 다만 늘 바쁜 부모님에게 학원을 다니기 힘들다는 이야기나,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잘하지 못했고, 관심을 받기 위해 배가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더 공부를 열심히 해서 1등 성적표를 보여주는 게 나의 어린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쯤, 남들보다 이른 사춘기를 보냈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혼한 부모 밑에서 자라났다는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부모님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기에 더욱더 어른들이 바라는 모습으로 자라나고자 애썼다. 그저 혼자 참고 또 참고 아주 작은 반항을 하는 것으로 그쳤다.

 친조부모와 살면서 아파도 아픈 내색 제대로 하지 못했고, 간식을 사 먹는 일도 사치가 되었다. 난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못하는 그런 아이가 된 느낌이었다.


 중학교쯤, 처음으로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 당시의 나는 친구들도 많았고 성적도 괜찮은 편이었고 활발했던 아이 었다. 놀이터 바로 앞에 위치한 집에 살고 있었는데, 아마도 밤늦은 시간에 전화를 받고 놀이터로 나갔던 것 같다. 학교에서 알고 지내던 아이의 전화. 하지만 그 놀이터엔 사이가 좋지 않은 아이들과 처음 보는 얼굴의 연장자들이 있었다. 선배라고 그들은 말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선배라는 대접을 해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나를 부른 이유는 그저 내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짧게 자른 머리, 후배들에게 자주 받는 편지와 간식들. 신체적인 폭행은 가해지지 않았지만 언어적인 폭력이 오갔다. 듣는 내내 '내가 도대체 뭘 잘못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함께 욕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거진 10명이 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나는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은 채 오들오들 거리다가 겨우 잠에 들었다. 꿈에서도 너무 욕을 먹어서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내 옆방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있었다. 나는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불면증과 대인공포증 같은 것들이 심해졌던 것 같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힘들어졌고 잠을 자는 것이 어려워졌고, 계속해서 내가 잘못한 것이 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잘못한 것은 없었지만 나 스스로 내 잘못이라고 결정짓게 되었다. 그 무리에 있던 지인에게도 배신감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 뿐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리 중 한 명은 그로부터 1년 후 나와 친한 친구사이가 되었고 20살까지 나름 '베스트 프랜드'라고 불리던 친구로 자리잡기도 했었다.


 딱히 좋은 기억이 없는 중,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몇 번의 자해가 있었다. 지금도 학창 시절의 기억은 선명하지 못하며, 어떤 이유에서 그랬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결국 나는 도망치듯 짧은 유학을 갔다. 아니 어학연수라는 말도 붙이기 웃긴 그 짧은 해외생활은 나에게 많은 변화를 줬다. 애꿎은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되었고 조금 더 나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나는 독특한 사람이 되어갔고, 스스로를 집 안에 가두는 일명 '히키코모리'가 되기 시작했다. 친했던 친구들과의 절교도 크게 다가왔고 다시 공부하러 갈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유학도 포기하게 되면서 우울증은 더더욱 심해졌다. 성인이 되어서 술도 자유롭게 마시게 되었지만 외지로 이사 가게 되면서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도 어려워졌다. 그러다 보니 한번 나가서 술을 먹게 되면 집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워 밤새 술을 마시기 일수였다.


 어린 시절, 가까운 사람의 자살 기도를 본 적이 있었다. 약을 대량으로 섭취를 했고, 응급실에서 조치받는 모습도 모두 봤다. 나는 겨우 초등학생이었지만 너무나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내 몸과 정신은 피폐해져 갔고 다시 몸에 상처를 남기기 시작했다. 내가 힘드니 알아달라는 신호. 그 신호를 보내는 방법이 잘못되었었다고 지금은 알고 있지만, 몸에 새겨지는 상처를 보면서 '나도 이렇게 고통을 느끼는구나.' 라던가 '아직은 살아있구나.'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다음날 아침엔 상처가 따가워서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르기도 했다. 이 일은 과거의 나에게 굉장히 미안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일 중 하나기도 하다.


 그렇게 어영부영 즐겁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던 중 존경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 사람은 글로 나를 위로해줬고 말로 나를 위로해줬고 괜찮다고 늘 말을 해주는 사람이었다. 그의 이야기들은 내가 죽지 않을 이유가 되었다. 살아야 할 이유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죽지 않을 이유가 그분으로 인해 생기게 되었다. 스스로를 다독이는 시간을 갖게 되었고 흉포한 우울함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찾게 되었다. 적절하게 우울할 때는 그 우울감을 즐기는 법도 알게 되었고 나는 점차 괜찮은 사람이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이 죽어버렸다. 그는 내 옆을 떠나 하늘의 달이 되었다. 그 소식은 나에게서 죽지 않을 이유를 앗아간 것과 다름없었고 나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고 눈빛의 초점도 잃어갔다. 나를 위로하던 사람이 정작 본인이 위로받지 못해 스스로 소중한 목숨을 끊어버렸다.


 다만 나에게 죽지 않을 이유는 사라졌지만,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내 사고뭉치 강아지들은 내 말만 듣는다. 내 옆사람은 어른스럽지만 아직도 아가 같아서 내 손이 필요하다. 나에게 늘 예쁜 말을 해주고 늘 사랑한다고 말을 해주는 옆사람이 있고 집에 가면 제일 먼저 반겨주는 내 강아지들이 있기에 나는 살아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존경하는 그 사람이 사망했을 때, 주변에서 많은 걱정의 연락을 받았다. '괜찮지?'라는 말로 시작해서 '나쁜 생각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같은 말이 담긴 연락들. 그의 장례식장에서 잔뜩 눈물을 흘리고 휘청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나왔을 때, 날 살아가게 하는 이유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죽지 않을 이유는 더 이상 없지만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남아있다.


 12월인 기일을 앞두고 이맘때쯤 되면 유난히 그분의 생각이 많이 난다. 내 아픔을 만져주고 위로해줬던 그가 너무나도 해맑게 보냈던 과거의 모습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누구보다 밝게 웃고 예쁜 목소리로 위로해주던 그 사람이 자꾸 그리워진다. 어떠한 마음으로 세상을 뒤로한 채 먼저 가버렸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아마도 평생 알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평생 나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것들을 남겨줬고 그 마음을 내가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가 그리워서 생각이 많고 또다시 우울해지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내 목숨을 가벼이 생각하지 않고 작은 것에 행복함을 느끼며 오늘도 꽤나 잘 살고 있다. 종이에 베이는 작은 상처는 누구보다 아파하면서 나를 가장 사랑해야 할 내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행동들을 후회하며 주변에서 상처 받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살아가고 있다.


 우울증은 감기와도 같아서 누구에게나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내가 그분처럼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주변의 지인들에겐 위로가, 힘이 되어줄 수 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노력이 부디 헛되지 않기를. 세상에서 들려오는 차갑고 안타까운 소식이 더는 없기를. 오늘의 우울한 내가 내일까지 우울해도 괜찮지만, 이 우울감을 적당하게 즐기고 다시 웃을 수 있기를. 지금 당장 힘을 낼 필요는 없지만 힘이 너무 나지 않는 다면 충분히 쉬어가도 좋지만 그래도 너무 오래 지쳐있지는 말기를. 나를 걱정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지 말기를. 내가 소중한 존재임을 잊지 않기를.


 나는 내가 제일 사랑해야 할 존재임을 잊지 말기를. 잠자리에 들기 전, 오늘도 나는 수고했다고 스스로를 토닥여줄 수 있기를.


이미지 제공 : Pixabay - conger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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