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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월 Apr 15. 2021

내 마음이 아파서 정신과에 가겠다는데...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

나는 꽤나 오랜 시간 정신과를 다녀왔다.

제일 처음 정신과를 방문했던 건 20살. 13년 전이다.


지금도 정신과를 다닌다고 하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이 많은 편인데, 그 당시에는 더욱 심했다. 불면증과 우울증, 공황장애 등이 겹쳐서 정신과를 가겠다 결정한 나를 부모님이 말리기도 했었다.


'정신과 다녀오면 평생 기록에 남는다던데...'


이미 평범하지만은 않은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더욱 걱정이 되던 시기였지만 나는 당장 잠도 자지 못하고 히키코모리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그런 걱정은 쿨하게 무시한 채 병원에 다녔었다.


21살 대학에 입학하면서 병원엔 발 조차 붙일 수 없을 정도로 바쁜 나날이 이어졌고 그러다 보니 괜찮지 않지만 괜찮은 척을 하며 삶을 보내고 있었다. 그 후에도 신경과나 가벼운 상담 등을 계속해서 이어가다가 작년, 아직 생각해도 생지옥 같았던 2020년을 보내며 다시 정신과에 방문했다.


정신과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자체가 아직도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정신병이 없는 현대인이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내 입장에서 정신과는 그저 여러 병원의 과 중 하나일 뿐이다. 세상 자체가 정신이 나가 있는데 어찌 온전한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사 하나 빠진 상태인 게 더 이득일지도.


어쨌든, 정신이 아프다는 것은 몸이 아픈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내 마음이 온전치 않아서 병원에 가겠다는데 그게 뭐?




요즘 불면증이 심해졌다. 병원에는 2주에 한 번 정도 방문하고 있는데 올해가 되면서 조금씩 안정적으로 괜찮아지나 싶더니만 최근 우울감도 늘어나고 내가 너무 한심하다는 자기 비하적인 생각도 늘어갔다. 딱히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닌데, 술에 잔뜩 취해 블랙아웃이 온 상태에서 죽고 싶다는 얘기, 살고 싶지 않다는 얘기, 어떻게 죽어야 하나 라는 얘기까지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난 죽고 싶은 생각이 없다.


사람이 술을 먹으면 자살 충동률이 상승한다. 두려움이 결여되기 때문인데, 그 위험성은 무려 6배 상승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난히 '죽고 싶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나도 우울증이 심할 때는 그런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었지만 사실 그건 '살고 싶으니 날 도와줘.'라는 말을 포장하는 포장지일 뿐이었다.


한 달전쯤만 해도 꽤나 안정적이던 내 마인드로 인해 처방받던 안정제를 줄였다. 안정제를 먹으면 그날은 낮에도 계속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무기력했기에 약을 점점 줄이다가 아예 빼버리기 까지 했었다. 그러나 안정제를 모두 빼버린 그날부터 다음 병원에 가기 전 2주 동안 난 잠을 거의 잘 수 없었다. 약 40시간 이상 깨어있는 날이 많았고 잠을 자더라도 1-2시간 간격으로 계속해서 깨어났다.


결국 최근 방문 시 안정제를 다시 복용하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 나는 또 꽤나 무기력하게 보냈다. 일정이 있는 날이면 전날에 일부로 약을 복용하지 않는 시도도 했으나 그러면 또 잠을 자지 못해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을 때 먹을 수 있도록 처방된 수면제를 복용해서 조금씩 내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주변에서는 여전히 내가 정신과를 다니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고 정신과 다니면 보험 처리받기가 힘들다는 말을 하고 잠이 오지 않으면 운동을 해보라던가, 몸을 피곤하게 하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람들 중에 나에게 어떤 것이 나를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하는지, 무엇이 내 마음을 병들게 했는지 묻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에 대해 잘 아는 지인들은 그저 가끔 나를 만나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고 내가 그리웠다 이야기해주고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는 나에게 고맙다고 말을 해준다.


내 마음이 아파서 병원에 다니고 약을 복용한다고 해서 내가 완전히 좋아질 거라는 보장은 없다. 어떤 병에 걸려서 치료를 받아도 그 후에 그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듯이, 예방주사를 통해 면역력을 키우듯이 나는 코로나로 인해 아직도 얼굴을 모르는 의사 선생님에게 시시콜콜한 내 일상 이야기를 하고 2주 동안의 내 마음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하고 조금 더 괜찮은 2주가 되길 바라며 약을 처방받아 온다.


내가 병원에 다니는 이유는 단순히 수면제나 안정제를 처방받기 위함이 아니라, 전문가와의 대화를 통해 내 면역력을 키우기 위함이 크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멀지만 존재한다.


약 20년 정도 우울증이라는 걸 갖고 살고 있는 나는 가끔 포켓몬스터의 질퍽이를 닮은 우울 괴물과 조우하여 패닉에 빠지기도 하지만, 과거를 살아오면서 직접 경험한 것들과 책이나 영화를 통해 얻은 간접 경험, 그리고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하여 얻은 조언들을 통해 우울 괴물을 물리치는 날들이 꽤나 늘어나고 있다.


아마 이 우울 괴물은 내가 죽는 날까지 나와 함께 할 것이라 생각한다. 어딘가 구석에 숨어 사라졌다고 믿게끔 날 방심하게 한 뒤, 갑작스레 나타나서 날 당혹시키려 할 것이다. 생각보다 우울 괴물은 집요하고 영리한 구석이 있다. 우울 괴물을 만들어 낸 것도 나니 우울 괴물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도 내 몫이다.


지금은 우울 괴물을 만났을 때 맞서는 법을 배우기도 했고, 맞서다가 지치면 잠시 휴전을 하거나, 때론 우울 괴물에게 반쯤 먹혀 잔뜩 우울함을 느끼지만 빠져나오는 방법을 깨닫기도 했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그 우울함을 느끼는 것도 나에게 도움이 된다.


나는 지난 20년간 우울 괴물과 공존하면서 더 강해질 수 있었고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어둠이 있기에 빛이 존재하는 것처럼 우울 괴물이 있기에 내가 존재할 수 있다. 혼자서 해결할 수 없을 때, 그럴 때는 전문가를 만나 조언을 얻고 약물의 도움을 받는다. 내 인생은 내가 컨트롤해야 하는 것이고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같은 상황이더라도 겪는 사람에 따라 느끼거나 배우거나 하는 것은 모두 다르다. 나에게 맞지 않는 조언이나 비난은 나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내 인생을 사는 것은 나고, 그 주인공도 나다.


서두르지 말 것. 오늘 하루 잘 보냈음에 감사할 것.

내일은 더 나은 하루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을 것.

오늘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에 감사하며 나 오늘도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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