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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월 Oct 29. 2021

조금 더 살기로 결심했다.

죽고 싶은 생각을 미뤄보기로 했다.

 여행을 다녀와서 죽어버릴까 생각을 했다. 딱히 죽어야겠다고 생각을 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죽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지는 않았다. 교통사고던 자연재해던 타인에 의하여 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한지는 조금 된 것 같다. 가끔 운전을 하다가 터널 안에서 꼼짝없이 갇혀 있을 때, 꽉 막힌 도로 위에 서서 한없이 앞차를 바라보고 있을 때, 이 터널이 무너져버려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기엔 아직 더 살고 싶은 사람들도 죽어버릴 수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다시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나 스스로 죽지 않고, 죽임을 당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머릿속에 가득 차 버렸다.


 며칠 전, 근 5-6년 만에 몸에 상처를 냈다. 그냥 피를 보면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것 같았다. 아마도 그래서였던 것 같다. 내가 숨 쉬고 눈 뜨고 움직이고 있는 지금이 현실인지 꿈인지, 꿈이라면 지독한 악몽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평소에도 꿈을 많이 꾸지만 그렇다고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꿈에서 확실하게 꿈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흔히 말하는 루시드 드림을 꾸는 사람이었지만 현실에서 깨어나고 싶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귀신이나 총, 폭탄 등등 모든 것에 대하여 아무렇지 않게 잘 볼 수 있는데 칼을 이용해 상처를 입히거나 살인을 하는 장면을 보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귀 뒤쪽까지 올라오는 소름으로 몸에 한기가 돌 정도다. 날카로운 칼이 살을 베어내는 느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잘 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어코 내 몸에 상처를 내고서야 지금이 현실임을, 악몽보다도 더 악몽 같은, 지옥보다도 더 지옥 같은 현실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피를 닦아내자마자 후회를 했다. 타인에게 상처 받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있었으나, 정작 내가 나 자신에게 스스로에게 흉터가 남을 법한 상처를 남기다니.


 다행히도 급격하게 추워진 날씨 탓에 긴팔로 상처를 가리고 다닐 수 있었다. 워낙 몸에 열이 많아 문득 소매를 걷어올리다가 팔에 난 상처를 보고 흠칫, 하고는 손가락 끝까지 옷을 당겨 내렸다. 필사적으로 내 상처를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퇴사 후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이러한 행동을 고백했고, 선생님은 역시나 많이 속상해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던, 지금보다도 더 힘든 상황에서도 잘 이겨냈으면서 왜 그랬냐고 물었다. 나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했다. 선생님이 보는 나는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겨낼 수 있다고 했다. 내 주변에서도 날 강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내가 정말 강한 사람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모두가 다 그렇다고 하니 괜스레 나도 내 스스로가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선생님은 또다시 나쁜 생각이 든다면, 딱 30분만 다른 행동을 하라는 조언을 했다. 전화를 하던 나가서 무작정 걷던, 어느 것이라도 좋으니 30분만 다른 일에 몰두를 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청소를 했다. 집안일 중에 가장 싫어하는 것이 청소와 빨래 널기인데 1시간이 넘도록 청소를 했다.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분리수거를 하고 어질러진 집을 치웠다. 아직 치울 것은 한가득 남아있었지만 시끄러운 노래를 들으며 오롯이 쏟아부은 1시간을 보내고 난 뒤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았다.


 내일 떠나는 1박 2일의 짧은 여행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분 전환을 위해 옆사람과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지만, 누구든 사소한 것 하나로 감정이 상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고 아무런 일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올 수도 있다. 다만 내 인생에서 마지막 여행이 아니길 바라게 됐다.


 3n년의 인생을 살면서 꼭 이루고자 했던 것은 이루고 싶어 졌고 나의 죽음으로 인해 힘든 상황을 겪을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죽기 전에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불러 고마웠다고, 내가 너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이 자리에 온 너는 나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고, 내 마지막을 배웅해줘서 고맙다고, 먼저 가야 하지만 내가 가는 그 세상이 존재한다면 꼭 내가 누구보다 먼저 마중 나오겠다고, 그런 인사를 할 수 있는 작은 파티를 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 파티를 아직 준비하지 못했고, 코로나로 인해 파티를 하기도 힘들다.


 그러니 당분간은, 어쩌면 생각보다 조금 더 오래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사소한 것이라도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아직 영국의 노팅힐도, 파리의 에펠탑도 보지 못했다. 좋아하는 해외 축구팀의 경기를 홈구장에서 보지도 못했고 내가 좋아하는 고래를 본 적도 없다. 내 이름이 들어간 책을 출판하지도 못했고 연습 중이던 스노우보드의 트릭도 아직 미완성이다. 나만 믿고 따르는 멍멍이들 밥도 챙겨줘야 하고 코로나로 인해 가지 못했던 페스티벌도 가야 한다. 예매해둔 연극과 뮤지컬도 남아있고, 미술전도 있다. 사두고 읽지 못한 책도 있고 아직 개명도 진행 중이다.


 그래서 조금 더 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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