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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월 May 17. 2023

또 한 번의 퇴사

메일로 권고사직을 당했다

 권고사직을 당했다.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 늘 다짐하면 뭐 하는가. 나라는 인간은 일만 시작하면 열정적인 노동머신이 되어버리는 것을.


 2021년 12월. 새로운 회사에 입사를 했다. 마케팅 회사이지만 '코로나'는 다른 부가적인 일들을 함께 하게 만들었다. '메타버스'라는 개념들이 활개 치던 그 시절, 입사와 동시에 메타버스 공부를 하고 온라인 행사 기획은 물론 메타버스 사용법 강의 등 내 주 업무인 퍼포먼스 마케팅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일들이었다. 그래도 새로운 걸 배우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었고 짧은 강의이지만 오랜만에 '선생님, 강사'가 되는 것은 기분이 좋기도 했다.


 입사 후 약 2달은 익숙해지기 위해 회사로 출근을 했고 그 후로는 재택근무가 기본인 회사였다. 집에서 글을 쓰는 용으로 사용하던 노트북으로는 일을 하기에 무리라 판단되어 새로운 컴퓨터도 구매했다. (기존 노트북은 약 20만 원 후반대의 정말 '글'만을 위한 노트북이었다.)


 마케팅 회사이고 난 영업직도 아니었지만 어지간한 영업직군 못지않게 잦은 외근과 출장들이 있었다. 워케이션 사업이나 교육 관련 마케팅, 병원을 비롯하여 꽤 큰 공기업들이 있었고 어째서인지 난 계속해서 나가야만 했다 지방 거래처들도 많은 편이었고 회사 내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사업 프로젝트'들이 꽤 있어서 자주 집을 비울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작은 회사가 그렇듯 모든 프로젝트를 다 맡아서 할 수밖에 없었고 인원이 부족했기에 나는 더 열정적으로 일했다.


 재택으로 일을 하다가도 술 한잔 하자는 대표님의 연락에 나는 바로 달려 나갔다. 힘들게 일하고 와서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옆사람에게 미안했지만, 회사일이니 피곤하더라도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키우고 싶었다. 술을 마시며 오가는 업무 관련 대화들은 회사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라 생각했다. 암으로 투병하던 아버지를 간호할 때도, 손가락 수술로 병원에 입원한 남편을 간호할 때도, 혹은 개인적으로 사용한 연차, 반차, 휴가 때에도 나는 노트북을 필수로 들고 다니며 미친 듯이 일을 했다. (외근, 출장이 너무 많아 맥북을 구매하고 회사에서 비용을 내게 입금해 줬었다.)


 2022년 말 쯔음, 기존의 고객들이 경제적인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교육, 의료, 미용 쪽 모두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회사의 고객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한숨만 늘어나는 시기였다. 물론 새로운 고객들을 만나고 그들을 유입시키기도 했지만 회사 내의 중요한 아이템이었던 '메타버스'가 시들어가고 있었다. 2021년, 2022년 정부과제에서 계속 언급되던 '메타버스'라는 단어는 이미 AI 같은 단어로 변경되고 있었다. 회사의 사정은 당연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고 나는 기존의 거래처를 유지시키기 위해, 새로운 거래처를 가져오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했다.


 2023년 3월. 결혼을 앞두고 있던 그 당시 할머니는 점차 지쳐가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할머니의 건강을 이유로 결혼식이나 신혼여행을 미룰 것인지 물었다. 내게 있어서 할머니는 엄마와도 같은 존재였지만 이미 계약을 하고 돈을 지불하고 사람들에게 일정을 알린 이상 변경을 할 수는 없었다. '변경하지 않는다.'라는 내 대답에 회사는 4월 무급휴가를 권유했다. 신혼여행기간과 할머니가 돌아가실 경우 장례식까지 포함하여 쉬는 날이 너무 많아 회사 업무에 집중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이유였다.


 처음 이 권유를 받았을 때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신혼여행을 대비해 미리 예약해 둘 수 있는 업무는 처리를 한 상태였고, 인수인계도 준비 중이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의 경우 경조사 휴가를 정당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무급 휴가라니,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사실 내가 업무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보다는 회사에 들어오는 자금이 한정적이기에 월급과 축의금, 조의금을 감당하기에 힘든 상황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만약 다른 회사에서 이와 같은 권유를 했더라면, 그러니까 내가 스스로 '성장'시키고 싶은 회사가 아니거나 정을 주지 않은 회사였다면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 고 단호하게 이야기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다른 거래처들이나 회사들에서 그 회사보다 월급을 더 줄 테니 본인 회사로 오라는 권유들도 많이 받았지만, 나는 이 회사를 성장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나 강렬했고 직원 마인드가 아닌 정말 내 회사라는 생각으로 일을 하기 위해 모든 제의들을 거절했다. '그래. 나도 여유롭지는 않지만 회사를 생각하자.'라는 마음 하나로 무급휴가라는 권유를 받아들였고 그렇게 4월을 보냈다.


 결혼식 날, 대표님은 오지 않았다. 연락 한 통 없었고 축의금도 마찬가지였다. 서운했지만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혼식 뒤풀이 도중 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다음날 입관을 보고 제사를 지낸 후 신혼여행을 갔다. 신혼여행 기간 내에도 역시 회사의 연락은 없었다.


 회사 복귀를 3-4일쯤 앞두고 있던 날, 출근한 남편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일을 하다가 손이 많이 다쳤고 잘린 것 같다는 전화였다. 다행히 잘린 상황은 아니었지만 수지접합을 하는 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진행했다. 오른손이 다친 데다가 큰 수술이다 보니 옆에서 간호를 해야 했다. 입원을 해야 하는 기간은 생각보다 길었고 업무 복귀를 해야 하니 노트북을 가지고 와서 일을 해야 하나,라고 고민했다. 내가 복귀하는 5월 첫째 주는 근로자의 날과 어린이날이 있어서 3일만 근무를 하는 주였다. 여러 고민들을 하다가 회사에 전화를 했다. 나는 휴가 중에도 거래처들과의 단체 톡방이나 메일, 회의록 등을 모두 보고 있었기에 회사의 업무 상태는 이미 파악 중이었고 다른 직원과의 꾸준한 연락으로 현재 상황도 인지하고 있었다. 3일 정도 연차를 사용한다고 해서 업무에 큰 무리가 간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대표님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연차를 사용하거나, 무급으로 쉴 수 있는지, 당장 복귀가 필요하다면 노트북을 들고 병원에서 일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재택이기 때문에 사실 내가 일하는 장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후 고민해 보고 '메일'로 답을 준다는 말로 전화가 끊겼다. 그리고 그날 밤 11시쯤, 난 '메일'로 '권고사직'을 당했다.


 어쩔 수 없는 일들이지만 내가 일을 당분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그냥 그만두라는 이야기였다. 사람을 새로 뽑는다고 했다. 내 복귀보다 그게 빠르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내가 문장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 싶었다. 내가 한 달을 쉬었고 장례식이나 병간호로 인해 정상적으로 근무를 하지 못했다는데 난 병원에서도 야근을 했고 외근을 나갔고 서류를 작성해 왔다.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다른 짐보다 노트북부터 챙기고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한 달을 쉰 건 내 자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권고사직을 하는 하나의 이유가 되어있었다.


 권고사직 메일에는 결혼을 축하하는 말이 있었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안부를 묻는 말이 있었다. '곧 돌아가실 것 같다고 들었는데.'라는 문장과 함께. 남편이 퇴원하고 시간 여유가 될 때 소주나 한잔 하자는 문장으로 어처구니없이 메일은 마무리되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쏟아부었던 내 열정은 또다시 한순간에 무너졌다. 복귀하고 업무 파악을 하면 늦을까 봐 꾸준히 확인하던 거래처 단체방들을 모두 나왔고, 내가 관리하던 업무 계정들을 모두 정리해 전달했다. 회사 노트북과 모니터, 법인 카드를 지난 주말에 회사에 돌려주고 왔다.


 약 1년 반동안 최선을 다 했는데 대면도 전화도 아닌 메일 한통으로 회사 생활을 정리하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이 상황은 다시금 '회사에서 너무 열심히 하지 말자.'라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당분간은 실업급여를 받으며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직장을 알아볼 예정이다. 분명 나란 인간은 새로운 회사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열정을 다 하겠지만 그렇다면 적어도 사람에게 정이라도 주지 말자고 다짐한다.


 믿고 따르던, 아끼던 사람과의 정리는 언제나 너무 지친다. 단순한 사이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이번 정리는 꽤나 큰 충격이었다. 심각한 번아웃이 왔던 이번 회사 생활에서는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약을 먹고 스스로를 달래기도 하고 혼내기도 하고 옥죄어가며 일을 해왔는데 그래, 이번에도 고생 많았다. 당분간은 일에서 멀어져서 스스로를 조금 안아줄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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