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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월 Oct 30. 2023

신조어가 어려웠던 20살

편의점 아르바이트

 2008년 무더운 여름이었다. 호주에서 짧은 유학(이라 쓰고 경험)을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왔지만,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에 살고 있었고 대학을 다니거나 재수를 하고 있었기에 함께 어울릴 수 있지도 않았다. 나는 친구들이 거주하는 곳에서 대중교통으로 약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걸리는 위치에 있다 보니 밖으로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뭘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까, 하던 중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눈에 보였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내가 근무하던 편의점은 주변에 초・중・고가 모두 있는 스쿨존이었다. 나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주제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보며 ‘좋을 때다’라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근무 시간은 오후 4시에서 8시 정도로 4시간 정도만 일을 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에서 힘든 점 중 하나가 들어오는 물건을 진열하고, 유통기한이 임박한 물건을 빼는 거라고 들었는데 그런 일도 없이 단순히 계산만 해주면 되는 시간대였다.


 다만 그 편의점 특성상 가장 바쁜 시간에 일을 했는데, 학교가 끝나는 학생들이 몰려오는 5시에서 7시 사이는 그야말로 도깨비시장이었다. 야자 직전에 학교 급식 대신 삼각김밥이나 라면을 먹으러 오는 고등학생이 대부분이었고, 학원을 왔다 갔다 하며 저녁을 간단하게 때우려는 초, 중학생들도 많았다. 거의 모든 학생이 물건을 고르고 계산하고 편의점을 나갔지만, 일부 학생들은 편의점 내에서 음식물을 섭취하며 바닥에 모두 쏟아버리고 가는 경우도 있었고 작은 편의점에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경우도 있었다.


 편의점에서 근무한 지 10일 정도 지났을 때, 예쁘게 생긴 고등학생들이 들어왔다. 그중 한 학생이 지갑을 카운터에 내밀며 “뻐카충이요”라고, 말했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뻐까충이 뭘까? 지갑을 왜 카운터에 올려둘까? 뭔가를 내가 내주어야 하는 상황일까?’ 그 학생에게 다시 물었다. “뻐… 뭐라고요?” 학생은 내 얼굴을 보고 까르르 웃으며 “언니, 뻐카충 몰라요?”라고, 이야기했다. 진짜 몰라서 물어봤는데 그게 꽤 웃긴 듯 그 학생은 친구들을 불러 모아 “이 언니 뻐카충이 뭔지 모른대!!” 하며 재미난 걸 발견한 듯 계속해서 웃었다. 당시의 나도 20살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이런 상황이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머리에서는 계속해서 ‘뻐카충이 뭔지 생각해 내!!!’라고 외치고 있었고 난 ‘포켓몬스터’에 새로운 ‘포켓몬’이 나온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아! 피카츄, 라이츄, 뻐까츄?”


 날 보던 여고생들의 눈이 거의 2배로 커졌다. 그러고는 편의점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5평쯤 되는 작은 편의점이 학생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메워졌고 조잘조잘 본인들끼리 떠들던 손님들이 모두 우리 쪽을 쳐다봤다.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는 했지만 그게 뭔지 전혀 모를 뿐이었고 온몸이 시뻘게지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그 순간에도 머릿속에서는 ‘뻐카충이 대체 뭘까… 내가 잠깐 한국에 없는 동안 도대체 무슨 단어가 생긴 걸까…’ 라며 계속해서 고민했다.


 지금쯤이면 이 신조어를 대부분의 사람이 알 것으로 생각한다. ‘뻐카충’은 ‘버스 카드 충전’이라는 말의 줄임말로 발음을 세게 하다 보니 ‘뻐카충’이라고 언급하는 단어이다. 2007년 이후로 사용되는 단어인 거 같은데, 처음 듣고 나서는 도무지 무슨 단어인지 유추하기 힘들었다. 편의점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주목된 약 10초 정도의 시간이 나에게는 10분 정도의 시간처럼 느껴졌고 민망함에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쯤, 그 학생들이 갑자기 미안해졌는지 웃음을 거두고는(억지로 참는 듯했지만) “아, 언니 죄송해요. 버스 카드 만원 충전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제야 그 단어를 알아들은 나는 빨개진 얼굴을 숙이며 만 원짜리 지폐를 받고 충전을 했다.


 지금도 여러 신조어가 계속해서 탄생하고 있다. 30대 중반이 된 지금은 그 신조어들이 무슨 말인지 더더욱 알아듣지 못하고 가끔 어린 친구들과 대화할 때면 매번 무슨 뜻인지 물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유튜브 같은 곳에서 접하게 되는 일명 ‘밈’들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20살이었던 나도, 30대 중반이 나도 이런 상황이라면 나보다 더 어른인 사람들은 더욱 당황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보다 인터넷으로 소통하는 문화가 발달하고 빠르게 새로운 것들이 생성되고 그만큼 빠르게 소멸하기 때문에 따라가기에 벅차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PC통신 시절에 ‘하2, 방가방가, 뷁, KIN’ 같은 단어들도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단어들이 되기도 했다. 당시의 어른들은 우리를 보면서 “그게 무슨 말이니?”라고 물었고 나는 “그것도 몰라요?”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겪어보지 못하면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당시의 내가 말하던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그들의 단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둘리를 보며 ‘고길동’을 나쁘다고 말하던 나는 ‘고길동’이 불쌍하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짱구’를 보며 마냥 좋아했던 나는 ‘짱구’ 같은 아들을 키우는 ‘봉미선’을 존경하고 있다. 그 시절 흔히 드라마나 만화에서 보이던 ‘어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저런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현실과 같은 ‘어른’의 모습이었고, 나는 그렇게 살고 있다.


 짧은 쇼츠 영상들이 유행하면서 젊은 세대의 밈과 옛 세대의 밈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흔히 MZ라 불리는 세대가 주인공인 영상과 8~90년대 서울 사투리를 쓰는 세대가 주인공인 영상. 대부분이 영상들은 재미를 위한 영상이지만 적어도 나는 그 영상을 보며 서로를 이해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내 나이는 MZ에 속하지만,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기가 어렵고 8~90년대의 문화를 이해하기도 어렵다. 이도 저도 아닌, 마치 인싸(인기인)도 아싸(소외자)도 아닌 그럴싸 같은 내 존재이지만 나름 ‘나는 중립적이야’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신조어와 씨름한다. 그래도 이런 문화들을 빠르게 접할 수 있다는 것만큼은 가히 놀라운 세상의 발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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