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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씀으로써 한 줌 더 편하게 살게 되었다

나는 부족하지만 꽤 괜찮게 살고 있다. 소비단식 下

by 민써니

지난 브런치 글에서는 최저시급 공공기관 인턴의 생존 재테크, 소비단식 上이라는 제목으로 내가 지키고 있는 나만의 소비단식 기준에 대해서 다루었다.


그리고 이번 하(下) 편에서는 소비단식을 실천하면서 배우고 느낀점들에 대해서 언급해보려고 한다.



지갑을 닫으니, 환경이 보였다

재밌는 건, 절약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환경을 위한 소비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 택시 대신 대중교통, 치약 아껴 쓰기, 책 구매보다는 도서관 이용하기까지.
처음엔 오직 ‘돈을 아끼기 위해’ 시작한 행동들이었는데, 어느 순간 습관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람은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만의 루틴을 만들고 계속 실천하게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예전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이젠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조금 신기하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오르고, 퇴근할 땐 회사 멀티탭을 끄고 나오고,
텀블러 설거지에 쓰는 수세미조차 친환경 수세미로 바꿔 썼다.


남들이 '제로웨이스트'라고 부르는 삶을 나는 그냥 '당연한 일상'처럼 살아가고 있다.

절약이 환경 보호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몸으로 배우는 중이다.


덜 씀으로써 한 줌 더 편하게 살게 되었다.

의외였던 건, 돈을 덜 쓰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는 거다.
‘내가 진짜 필요한 게 뭘까?’를 생각하는 순간들. 그 순간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다이소.
가성비의 성지이자, 나처럼 꾸미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겐 보물창고 같은 곳.


소비단식을 결심한 뒤로 올리브영을 끊었는데, 그 반작용으로 다이소에 자주 가게 됐다.
뷰티템도 많고, 잘만 고르면 퀄리티도 괜찮아서 주말마다 2~3번은 꼭 들렀다.


그렇게 6주쯤 지났을 무렵,
나는 문득 다이소 앞에서 멈춰 섰다.


"내가 거길 왜 가는거야? 꼭 필요한게 있어?"


필요한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구경만 하자’는 마음으로 들어갔다가 결국 만 원 이내로 무언가를 사서 나오는 나.

이게 과연 '절약'인가?
나를 위한 ‘보상’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를 합리화하고 있던 건 아닐까.


화장대를 열고, 집착을 덜어냈다


그래서 가장 집착하던 ‘꾸밈’에서부터 정리를 시작했다.

아이라이너 3개, 마스카라 4개, 아이브로우 3개, 립스틱 20개, 블러셔 8개...
내 화장대엔 없을 게 없었다.


유행 따라 샀다가 안 어울려 방치한 것들, 자주 써서 쟁여둔 것들, TPO 맞춰 쓰겠다고 모아둔 색조템들까지.

그래서 이제는 있는 것부터 써보자고 마음먹었다.


예전 같았으면, 펜슬 아이라이너가 다 떨어지기 전에 올리브영 앱에 들어가 할인 상품을 재빨리 장바구니에 담았겠지만, 이번엔 그냥 집에 있던 붓펜 아이라이너를 꺼냈다.


확실히 느낌은 좀 달랐다.
내가 원하던 자연스러움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은 알아차릴 수 없는 정도의 차이였다.


덜 소비하면서, 더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예전엔 '남들이 어떻게 볼까'를 더 먼저 생각했다.
지금은 '나는 어떤 사람일까'에 집중하게 됐다.


하지만 이제는 꼭 필요한 소비만 하면서부터 나는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는 사람인지, 무엇을 위해 시간을 쓰고 싶은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불필요한 걸 덜어내니 내 마음의 여백이 조금 더 넓어졌다.


번외: 첫 월급의 가장 큰 소비

적은 돈이지만, 이왕이면 제대로 쓰고 싶었다.


오빠는 19살, 수능이 끝나자마자 일일 알바를 시작해 부모님, 할머니, 그리고 나에게 선물을 해준 적이 있다. 값비싼 건 아니었지만 그 진심이 너무 고마웠고, 그래서인지 그 기억이 내 마음 속에도 오래도록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도 언젠가 받은 사랑을 작게나마 돌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늘 생각해왔던 것 같다.


그래서 첫 월급을 받은 날, 열심히 모은 돈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그날 나는 퇴근길이신 엄마, 아빠를 석촌역으로 불러 함께 외식을 했다. 어버이날도, 생신도 아니었지만 그냥 보여드리고 싶었다. “이제 나도 돈을 벌어요” 하고. 그리고 그동안 받은 사랑을 이렇게라도 조금씩 갚아나가고 싶었다.



아직 학생인 오빠에게도 작은 금액이지만 용돈을 보냈다. 아주 작은 금액이었지만, 오빠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부족하지만, 꽤 괜찮게 살고 있다


돈이 없다고 해서 삶이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소비가 줄어드니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고, 내가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선명해졌다.


비록 나는 아직 일을 하는 것부터 돈을 벌고 저축하고 불리는 모든 부분에서 부족하고, 어설픈 사회초년생 인턴이지만 그 부족함 속에서 조금씩,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텀블러에 물을 담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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