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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상사 밑에서, 진짜 성장하기

무서운 호랑이 상사 VS 자유로운 프리 상사: 당신의 선택은?

by 민써니
스타트업 NGO 인턴십: 자유로운 분위기와 한계

대학생활 중 교환학생을 앞두고 휴학을 했다. 당시에 나는 스타트업 NGO에서 매니저 활동을 6개월간 했다.스타트업 NGO에 인턴으로 들어갔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면서도 흥미로웠다. 조직은 수평적이고 자유분방했다.

대표님은 직접 나와 업무에 대해 설명해주셨고 친근하게 반말을 하고, 기프티콘도 보내주시곤했다. 덕분에 처음 사회에 나왔지만 두려움도 없었고 처음에는 너무 신나기만했었다. 특히나 당시에만해도 코로나 시국이었기 때문에 100% 재택근무라서 정말 재미만 가득한 일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 가지 아쉬움이 서서히 느껴졌다. 너무 자유로운 나머지 누군가 길잡이가 되어주거나 업무 방향을 잡아주지는 않았다. 사실 체계적인 훈련 프로그램이나 구체적인 성장 가이드라인이 부족했다. 매일 주어진 일을 하면서도, 이것이 내 커리어에 어떻게 도움 되는지 혹은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명확한 답을 얻기 어려웠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업무가 익숙해졌지만, 성장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기엔 부족함을 느꼈다.


코이카 인턴십: 호랑이 상사와의 만남

그렇게 꿈꾸게된 외교부 산하 공공기관인 코이카(KOICA)에서 인턴을 시작. 이곳은 그간 내가 경험해왔던 모든 인턴십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처음 출근하던 날부터 사무실 분위기가 달랐다. 드레스 코드도 보다 정돈된 편이었고, 실원분들의 말투 또한 대체로 한층 더 정중했다.

실원분들. 즉 우리의 상사분들은 우리에게 업무를 주실 때 마다 하나 하나 꼼꼼하게 챙기고는 하셨다. Zoom으로 매주 회의하고 함께 사진 찍으며 웃던 NGO의 ‘프리한 상사’와는 달리, 이곳에서의 직장생활은 메일 하나를 보낼 때도, 보고서를 쓸 때도 표현 하나 하나를 신경써야했고 때로는 그것 때문에 나 조차도 예민해지는 날도 있었다. 그간의 여유로운 분위기에 익숙해진 탓일까? 아님 호텔에서 일할 때는 '그래도 내가 여기 최고 스펙!' 이라는 부심이 있었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아서 일까. 실원분들의 한 마디, 행동 하나에 갑작스런 긴장감이 들어 마음이 철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차츰 알게 된 것은, 그 꼼꼼함 속에 나를 향한 기대와 배려가 담겨 있다는 점이었다.


첫 출장보고서 작성 대참사

인턴십 시작 약 2달차. 코이카에서 첫 출장을 3건이나 다녀오게 되었고 출장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노트북 앞에 앉았지만, 경험 부족은 곧바로 실력 부족으로 드러났다. NGO 시절 익숙해진 편한 말투가 그대로 나왔고, 형식적이고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점을 간과했다. 예를 들어 서두에 “이번 출장에서는 현지 00대학교의 00교수님과 ~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눔. 더 많은 사람을 들이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함.”과 같은 비형식적인 표현들이 그대로 쓰여 있었고, 보고서의 전형적인 틀도 지키지 못했다.

나름대로 이틀에 걸쳐서 쓴 보고서를 자랑스럽게 들고 대리님의 메일로 전달드렸다.

그리고 곧 메세지 플랫폼에 뜨는 메세지는

" 내 자리로 와봐요. 이게 뭔 소리예요?"

그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얼굴이 화끈거리며 땀이 났지만, 그대로 고치지 않으면 이 상황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일주일간의 수정 작업: 두려움 속에서 배우다

그날부터 나는 계속해서 보고서를 수정했다. 대리님은 모든 문장, 문단에 직접 메모 주석을 달아가서 고칠 부분에 대해 하나 하나 알려주셨다.

처음엔 "이러한 경우 구조가 어떻게 되어야한다.", "소제목은 이렇게 쓰면 안된다. 보다 직관적으로 쓰기 위한 방안에는 ~이 있으니 고쳐보아라.", "주석은 이렇게 달면 안된다" 등의 피드백이 쏟아져나왔다.

내가 쓴 문장 하나하나 옆에 붉은 줄이 그어진 것을 보며 수정할 때마다 가슴은 조마조마했다.

"이제야 나아졌네!" 라는 감탄사를 기대하며 글을 고쳤지만 반복되는 "이거 아닌데...."와 같은 피드백은 나에 대한 비판이 아님에도 가슴 한 구석이 저려올 정도로 낯설고 어려운 감정이었다.

그래도 한 문장, 한 문장을 바꿔쓸 때 마다 조금씩 내 마음도 고쳐지는 문장처럼 진지해지고 견고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서울 정도로 꼼꼼한 대리님을 떠올리다보면 손이 떨리기도 했지만, 그 긴장감 속에서 나는 조금씩 성장하는걸 느꼈다.


두려움을 넘어 성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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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저는 그 호랑이 같은 눈빛의 꼼꼼한 대리님이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일을 잘 몰라서 실수를 할 때마다 심장이 철렁했지만, 그때마다 대리님은 내 작은 실수까지도 꼼꼼히 캐치해주시고, 차근차근 방법을 알려주셨다. 오히려 그래서 뒤늦게 깨달았다. 대리님이 바라던 것은 내 발전이었구나, 하고. 매번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문장력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고, 업무 흐름을 구조적으로 정리하는 능력이 높아졌다. 문제를 대할 때도 예전보다 더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엄격한 지적에 마음이 무거울 때도 있었지만, 덕분에 내가 한 단계 성장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예전에 두려움에 떨던 내가 지금은 보고서를 한 결 수월하게 수정하고 당당하게 보고서를 제출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그 모든 고된 과정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성장의 과정

이렇게 스타트업에서는 자유로움을, 공공기관에서는 엄격함을 배웠다.

한편으론 너무 편안해서 길을 잃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론 긴장해서 지친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경험이 모여 미래의 나를 만들어줄 것 같다.

완벽보다 값진 것은 성장하는 과정 자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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