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의 배신, 라테의 위로
2023년 2월 15일.
나는 오스트리아의 Klagenfurt라는 작은 시골 도시의 교환학생으로 선발되어, 인생 처음으로 유럽 땅을 밟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 교환학생 경험은 단순히 유럽에 간다는 것보다 '인생 첫 홀로서기'라는 의미가 더 크게 다가왔다.
13시간의 비행 끝에 오후 8시, 드디어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빈)에 도착했다. 입국심사에서 약간의 불편한 경험이 있었지만, 다른 직원의 도움으로 무사히 통과했다.
‘아, 정말 유럽에 와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문제는 곧 찾아왔다. 오스트리아에서의 첫 혼자 여정인데 어딘지도 모를 Wien Mitte 역에 내려버린 것이다. 내가 내려야 할 곳은 빈 중앙역(Wien Hauptbahnhof)이었는데. 어설프게 독일어를 안다고 나섰던 내 잘못이었다.
독일어도 부족했고, 영어로 내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도 서툴러 결국 사람들과 소통에 실패했다.
1시간 넘게 역 근처를 헤매며 막막한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려 애썼고
“환영한다”, “길 조심해라”라는 따뜻한 말도 건네주었다. 지금도 그 얼굴들이 잊히지 않는다.
결국 겨우 2정거장 먼저 내렸던 것이었지만 무려 1시간 30분 만에 중앙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는 역에서 멀지 않아 바로 체크인을 했지만, 이미 밤 10시. 그대로 잠들기엔 억울했다.
첫 홀로서기의 첫날인데, 배고픔을 안고 자버린다면 너무 허무할 것 같았달까나? 유럽의 식음료를 한 끼라도 더 맛보고 싶었기도했구.
그래서 다시 중앙역으로 향했다.
수많은 사람들과 기차들이 오가는 빈 중앙역.
하지만 늦은 밤까지 열려 있는 곳이라곤 버거킹, 샌드위치 가게, 그리고 ANKER라는 이름의 카페뿐이었다.
13시간이나 날아와 겨우 버거킹으로 때우기엔 아쉬웠다. 차라리 실패를 하더라도,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 결국 샌드위치 가게에서 새우와 계란이 들어간 바게트 샌드위치 하나와 따뜻한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보기엔 너무 맛있어 보였는데, 한 입 먹는 순간 충격이 왔다.
*그냥 딱딱한 바게트 속에 차가운 칵테일새우와 차가운 삶은 계란, 치커리 한 장이 전부였다. 사실 나는 바게트라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할 거라 기대했는데, 차갑고 퍽퍽하기만 했다.* 심지어 소스도 없어서 기대와는 다르게 차갑고 퍽퍽한게, 마치 기대를 한 가득 안고 왔지만 뜻대로 모든게 풀리지 않아 당황스러웠던 그날의 내 모습과 겹쳐보였다.
(실제로 그날 받은 충격이 커서, 나중에 Klagenfurt에서 똑같은 샌드위치 가게를 봤을 때도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다고한다.)
속으로 외쳤다. 첫 끼니도 망쳤고 하루도 망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종차별, 길 잃음, 그리고 맛없는 샌드위치. 첫날부터 기대와는 전혀 다른 연속이었다. 순간 “내가 여기 와서 잘 살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몰려왔다.
‘에효…. 힘들다…’
한숨을 내쉬며 첫 모금을 들이켰는데, 그 순간 정말 놀랐다. 스팀한 우유 폼이 가득하지만 무겁지 않고, 커피와 우유가 부드럽게 어우러졌다. 풍미가 깊으면서도 느끼하지 않은 맛.
그렇게 기대하지 않은 그 라테 한 잔이 내 피로를 모두 녹여냈다.
어쩌면 생각보다 이곳에서의 삶이 괜찮을지도 몰라.
오스트리아에서의 첫날은 샌드위치의 배신으로 끝났지만, 라테 한 잔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덮어주었다.
덕분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채, 숙소로 돌아가 편히 잠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직도 그날의 라테 맛을 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