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에서의 기억. 그리고 나의 첫 보금자리

내 마음이 쉬어가던 작은 공간을 떠올리며.

by 민써니

제발 1인실 비면 알려주세요... 제발요.


교환학생 가기 직전까지, 내가 기숙사 측에 제일 많이 보냈던 메일이었다.

난 평소 사람들을 좋아하고, 적응도 빠르고, 낯선 환경에서도 잘 지내는 편이라 “너는 외딴섬에 떨어져도 네 부족 만들어서 잘 살 것 같아”라는 말을 자주 듣고는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내가 1인실을 원했다는 말에 적잖이 놀란 듯 해보였다.


하지만 유학생으로 타지에 와본사람들은 알겠지만 매 순간이 작은 긴장의 연속이 펼쳐진다.언어, 문화, 정서 — 모든 게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물론 감사하고, 행복했지만 동시에 힘든 것도 사실이다.

마치 평생 바라던 회사에 입사했지만, 막상 매일이 전쟁처럼 느껴지는 사회초년생의 마음처럼, 감사함과 버거움은 공존한다. 행복하다고 해서, 안 힘든 건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나만의 공간’을 간절히 원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마음이 무너져도 괜찮은 곳.

유럽에서의 교환학생 생활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한 학점, 어학, 봉사, 대외활동, 인턴십 등으로 심한 번아웃에 시달리던 나에겐 그런 장소가 있어야만 비로소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1인실을 얻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건강상의 이유가 아니면, 한 건물당 두세 개밖에 없는 귀한 자리였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같이 메일함을 확인하고, 2~3일마다 “혹시 1인실 생기면 꼭 알려주세요!”라는 메일을 보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조금은 간절하고, 또 귀엽기도 한 집착이었다.

그렇게 한 달 넘게 기다린 끝에, 마침내 답장이 왔다.


“1인실이 하나 비었습니다. 원하신다면 계약 변경 가능합니다.”

그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물론 문제는 그 뒤에도 많았다.

분명 2월 15일 입실 계약서를 썼는데, 개강 이후인 3월에 들어오라는 메일이 오기도 했고…
하지만 수십 통의 이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나는 결국 내 보금자리를 얻었다.

방충망은 없지만 큰 창문, 작은 책상과 딱딱한 의자, 그리고 그 앞에 놓인 작은 1인용 소파.
여자 한 명 간신히 누울만한 침대와 옷장까지.


그 방은 작지만, 누구보다도 ‘나답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방은 내 교환학생 생활의 모든 기억을 품은 상징 같은 공간이었다.
타지에서 처음으로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웃고 울고, 스스로를 다독였던 시간들.


아마 그래서일 거다.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를 떠올리면 아름다운 호수보다, 맛있던 카푸치노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바로 그 방이다. 그 작은 방 안에서, 나는 ‘홀로서기’라는 걸 처음으로 배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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