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아니라 삶이었다, 눈물 나게 아름다웠던 뵈르테제 산책.
오스트리아에 온 후 늘 혼자 분주하게 움직이다가, 오랜만에 평온한 아침을 맞았다. 일요일이지만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해가 뜨는 모습을 보고, 운동도 하고, 가족들과 영상통화도 하며 하루를 열었다.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이었다. 첫날 사귄 친구 Mia와 약속을 잡고, 기숙사에서 걸어 5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뵈르테제(Wörthersee)를 함께 산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클라겐푸르트의 상징 같은 호수라 들었는데, 그 거대한 풍경을 직접 마주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었다.
물론 아침부터 작은 해프닝도 있었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며 인생 첫 요리에 도전했는데, 반숙을 원했던 계란은 완숙이 되어 있었고, 알감자는 설익었으며, 그나마 건진 건 버섯뿐이었다.
전날 인종차별을 견디며 사온 버터밀크는 낯선 맛이라 금방 손을 놔버렸다. 유럽에서 ‘야매 한식 요리사’가 되겠다는 나의 야심은 그렇게 첫날부터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마음만은 단단히 챙겨서, Mia와 함께 호수로 향했다. 걷는 내내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다. 러시아에서 온 그녀는 로봇학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원래는 나처럼 영어를 전공했다가 다시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고 했다. NGO 활동 경험도 있어서, 뜻밖에도 공적 개발 원조라는 공통 관심사까지 있었다. 살아온 환경은 달랐지만, 여행을 좋아하고 자유를 추구하며 새로운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점이 닮아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호수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그러다 마주한 뵈르테제는 정말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푸른 물결 위로 햇살이 반짝였고, 그 위를 하얀 백조가 미끄러지듯 떠다니고 있었다. 책이나 그림 속에서만 보던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자,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혔다. 내 앞에 있는 건 그냥 호수일 뿐인데, 어쩐지 눈물이 차오를 만큼 아름다웠다.
“It’s so beautiful! I can’t help loving this moment, I am falling in love with Austria.
I am so happy to be with you. Thank you, Mia.”
나는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하지만 정말 진심이었다.
Mia는 이런 내 모습이 재밌는 듯 웃었는데, 우연히 첫날 사귄 친구와 이렇게 여유로운 산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또 고마웠다. 혼자였다면 그냥 스쳐갔을 순간들을, 함께였기 때문에 오래 기억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울다 웃다 하며 걷다가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일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근처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아침에 실패한 나의 요리와는 달리, 따뜻한 카푸치노는 진하게 올라온 우유 거품과 부드러운 커피 향으로 몸과 마음을 단번에 풀어주었다.
괜히 웃음이 나왔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5성급 호텔 식음팀에서 단기 인턴을 하며 커피를 직접 내려볼 기회가 있었는데, 아무리 좋은 머신으로 만들어도 그때 느꼈던 분위기와 따뜻한 맛은 재현되지 않았다. 아마 그날의 공기와 풍경, 그리고 곁에 있던 사람이 더해져서 완성된 맛이었을 것이다.
일몰 시간이 다가오자 우리는 다시 호수로 향했다. 아직도 도시 곳곳에는 녹지 않은 눈이 남아 있었는데, 오히려 그 풍경이 더 고요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Hello guys, where’re you going?”
뒤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 클라겐푸르트에 도착한 첫날 함께 Irish Pub에 갔던 기숙사 친구들이었다. 오늘 날씨가 좋아서 석양을 보러 가는 길이라며, 아름다운 스팟을 함께 가자고 친근하게 말을 건네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정말 영화에서 보던 장면 같았다.
나무로 만든 작은 부둣가에 앉아 바라본 호수는 마치 하늘과 맞닿은 바다 같았다.
누군가 작은 스피커로 잔잔한 팝송을 틀었는데, 아무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자체가 낭만이었다.
그 후 Mia와 나는 각자의 숙소 사이에 있는 작은 이탈리아 식당 Uni Pizzaria에 들렀다.
주인장부터 셰프까지 모두 이탈리아인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파스타를 시켜 먹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한국식이 더 그리웠다. 그래도 이탈리아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고 싶어 함께 카푸치노를 또 시켜 보았다. 평소 바닐라 라테나 카라멜 마끼아또만 마시던 나에겐 아직 많이 쓴 맛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엔 충분히 좋았다.
따뜻한 사람과 나누는 한 끼, 그리고 눈물 나게 아름다웠던 풍경.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내 마음은 채워졌다.